[뉴 페이스 2014] 정지현 – 도시의 기억상실증에 대한 보고서

도시의 기억상실증에 대한 보고서

지금도 대한민국 국토 곳곳에서는 도시 재생이라는 명목으로 개발이 범람하고 있다. 한국은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으로 명명되지 않던가? 정지현의 사진작업은 재개발에 감상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철거가 진행되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그는 “재개발지역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철거민을 바라보는 연민 어린 시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피해자와 수혜자의 입장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재개발의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던 사람도 보상을 많이 받으면 어느새 승자가 되어버린다.
서울 토박이인 정지현은 아파트촌인 잠실에서 자랐다. 그는 잠실 일대가 아파트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면서 20년 넘게 살던 곳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주위 친구들조차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공간에 대해 어떤 얘기도 없이 그저 우리 동네가 좋아진다, 땅값이 오른다는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그때부터 정지현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속에서 일상의 공간이 얼마나 힘없이 부서져버리는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작업도 2005년 당시 철거를 눈앞에 둔 1세대 아파트들을 기록한 것이다. “저는 사진가이지만 사진이라는 매체를 쓰는 데 분명한 당위성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사라지는 것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것이 사진만이 할 수 있는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3월 1일부터 31일까지 KT&G 상상마당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데몰리션 사이트>에 선보인 작업은 2011년부터 인천 루원시티와 안양 덕천지구의 변모상을 담은 것이다. 그는 한밤중에 감시망을 피해 곧 철거될 건물에 잠입해 내부 방 하나를 온통 빨갛게 칠했다. 이 같은 퍼포먼스는 철거로 처참하게 무너진 누군가의 삶의 공간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그리고 철거가 진행되면 그는 매일 현장을 찾아가 빨간 방이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했다. 빨간 방이 해체된 광경은 마치 건물의 으스러진 심장 혹은 건물이 흘린 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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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의 사진은 종종 ‘도시화’, ‘재개발’이라는 키워드로 읽히지만 무엇보다 그의 관심은 파편화된 도시 공간에 있다. 집 옆 공터도 접근 불가능하게 철판으로 가려놓으면 그곳은 어느새 없는 공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의 삶이 녹아있는 공간과 도시의 재개발 사이의 단절을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관해 집중한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재개발 현장에 주목하는 작업 방향에 대해 고민이 많다. “도시에는 분명 다양한 문제들이 있는데 제가 재개발이란 이슈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답답함이 있습니다.”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는 3년 전부터 강원도 태백의 지역성에 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슬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