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4] 정효영
기억은 움직이는 거야
최근 설치작가 정효영의 작업은 변모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거실 한가운데는 한창 제작 중인 신작이 놓여 있었다. 아직 구체적인 스케줄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다음 전시에 선보일 예정이라며 작가는 작품이 앞으로 더 커지고 풍성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 노암갤러리에서 2번째 개인전을 열기까지 정효영은 설치작업에만 매달렸다. “어느 순간 방에서 바느질하고 있었다”고 말할 만큼 그녀는 작업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삶과 작업이 너무나도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의 기억과 경험이 투영된 그녀의 작업은 피부 톤의 인조가죽으로 감싼 형태들이 타이머에 맞춰 움직이는 조각으로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기도 한다.
정효영은 “그동안 작업이 너무 내 얘기만 한 것 같다”며 요즘은 좀 더 보편성을 갖기 위해 물리학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제작하고 있는 작업은 기억에 대한 기존의 맥락을 유지하면서 지하실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물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낼 예정이란다. “예전 작품이 사물을 온통 가죽으로 싸서 못 알아보게끔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집 같기도 하고. 벗겨낼 건 자연스럽게 놓아두고자 한다.” 그녀의 작업에서 사물과 사물이 엮이는 방식이 변화하면서 바느질의 스타일이나 의미적인 측면도 변했다. 그녀에게 바느질은 기억을 엮어나가는 수단이자 삶의 일부다.
실제로 설치작업 전체가 손바느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작업량이 상당하고 제작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리고 정효영은 작품을 움직이게 하는 기계장치도 직접 제작하고 구동시킨다. 그녀의 작업에서 움직임은 매우 중요하다. “조각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스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움직일 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다 들어 있다. 기억도 구조적으로 한 부분만 움직이는 것이 맞닿은 주변이 함께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모든 것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순환과정을 그림자로 표현하고 싶다. 기억은 실체가 사라지면 한 순간 함께 사라져버리는 그림자와 비슷하다. 그림자를 통해 기억 속 요소들이 증식되고 사라지면서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 있다.”
정효영은 개인작업뿐 아니라 문학을 전공한 언니 정무진, 사진을 전공한 동생 정영돈과 함께 ‘무진형제’ 라는 이름으로 영상작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언니는 시나리오, 정효영은 미술관련 소도구와 설치물 제작, 남동생은 촬영으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지만 모든 것을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한 편의 작업으로 완성시킨다. “개인 작업이 자꾸 나의 내부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공동작업은 나를 부단히 깨는 과정이며 자꾸 바깥으로 빼내는 계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큰 도움을 받는다.” 무진형제는 11월부터 12월까지 경기문화재단 지원으로 파주에서 공공미술을 선보인다. 결과물은 파주 논밭예술학교에서 기존의 영상작업과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이슬비 기자
정효영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1년 신한갤러리에서 열린 <Encore! mist age>를 시작으로 2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 평창비엔날레 국민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