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6 송수영
손으로 보고 눈으로 만지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 혹은 동/식물에게 작가 송수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것 같다.
“너는 어디서 왔니?”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어디서’다. 작가의 작업은 비닐봉지, 면봉, 이쑤시개 등 집 안 어딘가에 꼭 있을 법한 물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물이 기억하는 과거와 대면하여 불현듯 스치는 또 하나의 사물을 소환하고 병치시킨다. 〈향-나무〉, 〈면봉-꽃〉, 〈비닐봉지-고양이〉 등 하이픈(-)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두 사물의 관계가 다소 의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앞서 언급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연결된 것이다. 작가가 생각한 두 사물의 유사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가 평소 시를 즐겨 읽고 한때는 시인을 꿈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그는 ‘은유적 관계’, 다시 말해 논리적으론 설명할 수 없지만 서로를 환기시키는 관계에 주목한다.
재료에 대한 관심은 학부 때부터 있던 습성이었다. “석조 시간에 두상을 열심히 깎고 있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저는 나무의 결이나 벌레 먹어 생겨난 자국 등에 눈길이 갔어요. 그래서 그걸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두상을 재료에 맞춰 깎았어요.” 그렇다고 작가가 재료의 물성(物性)에 집착한 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재료가 머금은 과거의 흔적에 주의를 기울였다. 또 두 개를 연결하는 그의 행위가 단순히 직관과 상상력에 따른 것이라고 여겨서도 안 된다. 여기엔 그가 이전부터 꾸준히 천착해온 문제의식이 배어 있다. “인간이 동물에 가하는 폭력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 같아요.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지금은 유해동물로 취급받고 있어요. 사실은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비둘기를 수입해서 불러온 결과인 데 말이죠.” 현재 셔틀콕과 새의 깃털로 하고 있는 작업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출발한다. 평범한 사물에 미세한 변화를 주어 인간의 폭력성을 환기시켰다. 이는 작가가 너무도 익숙한 일상의 물건을 주재료로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목으로 규격화된 나무, 의류로 제작된 모피, 식용을 위해 도축된 가축 등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 외의 것에 폭력을 가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물질, 색채, 형태로 환원되는 과정”이며 “너무 시각적”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차가운 감각이다. 시각의 이러한 면을 드러내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바로 ‘재폭력, 낯선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얗게 표백된 모피를 다시 한 번 비닐봉지 안에 넣어 밀봉하거나 셔틀콕을 마트 상품처럼 패킹하는 식이다. 즉 익숙한 폭력으로 살해된 생명을 낯선 방법으로 ‘다시’ 살해함으로써 폭력성을 강조한다.
이렇듯 인간과 사물, 인간과 주변의 관계를 다루는 그의 작업을 통해 잠시나마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잊을 수 있는 틈을 발견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직면하 인간과의 관계에서 숨 돌릴 그 ‘틈’ 말이다. 문득 사람하고도 잘 지낸다고 말하는 그의 장난어린 농담이 떠오른다.
곽세원 기자
송수영
1984년 태어났다.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2011년 신한갤러리 광화문에서 열린 〈○-△전〉을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을 가졌다. 2015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9기 입주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