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東西古今을 아우르는 미술의 가치

어김없이 방학시즌이 다시 왔다. 이때쯤이면 전국에 내로라하는 대형 전시장에선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가 우후죽순처럼 열린다. 올 여름 서울만 하더라도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호안 미로>(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특별전>(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등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상주의를 비롯해 서양 유명화가의 이름을 내세운 이런 전시를 바라보는 평가는 엇갈린다.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해외 유명작품을 가까이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긍정적 반응도 있지만, 지나치게 서양미술에 편중됐다거나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그에 못지않다. 아니나 다를까 주요 관람객 타깃이 학생인 이런 전시 입장료는 만만치 않게 비싸다. 특히 초등학생은 부모나 가족과 함께 관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입장료만으로도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게 된다. 사정이 이러니 본의 아니게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미술은 원래 ‘비싼 것’이구나!”라고. 이런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하지만 미술이 반드시 ‘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더불어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8월 28일까지 열리는 <조선시대의 궁중화·민화 걸작전 – 문자도(文子圖)ㆍ책거리(冊巨里)>를 추천한다. 아쉽게도 이 전시 역시 입장료가 싸지는 않다. 어른 8천원, 학생 5천원. 그럼에도 출품된 책거리와 문자도는 그 값어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연 설명하지 않겠다. 전시장을 직접 찾아 수준 높은 민화의 진면목을 확인하시라.
이 전시는 미국 미술관에서 순회전시를 할 계획이다. 《월간미술》은 이 전시 기사에 영문(英文)을 덧붙였다. 외국어를 모국어로 바꾸거나 반대로 모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윤난지 교수가 최근에 엮어서 낸 책 《공공미술》 (눈빛) 머리글에서 밝힌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 우리는 이제 번역 작업을 집필 작업으로 옮기고자 한다. 남의 글을 옮기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쓸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서다. 우리의 다음 계획은 동시대 한국미술에 대한 책을 엮는 일이다. 남의 나라에서 생산된 미술이 아닌 우리 미술과, 그것도 현재 당면한 미술로 눈을 돌리고자 한다. …” 지난 20여 년간 후학들과 함께 해온 번역 작업을 일단락 지은 윤 교수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한편 이번호 특집은 ‘한-불 수교 130주년’이 테마다. 한국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캐슬린 킴 변호사의 연재가 새로 시작된다. ‘예술법’ 이야기의 첫 주제는 ‘위작 논란’. 최근 이슈꺼리인 위작시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어느덧 8번째를 맞은 이태호 교수의 ‘진경산수화 톺아보기’에 적잖은 열성 팬이 형성된 걸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그 가운데 한사람이다. 가끔은 척박하고 팍팍한 현실을 잊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태호 교수의 글을 길라잡이 삼아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서울을 여행을 한다.
어찌어찌하여, 어떤 청년 미술인에게 편지를 받았다. 아직 답장을 쓰지는 않았다. 그의 바람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고민과 행보에 좀 더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볼 요량이다. 청년미술을 항변하는 그나 기성세대로 낙인찍힌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십세기 인간’이다. 따라서 최근 미술계 일각에서 벌어진 (일부)60~70년대 생과 80~90년대 생 사이 세대갈등은 도토리 키 재기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21세기’의 서막은 새로운 밀레니엄 이후 출생한 세대로부터 열린다. 그러니 불과 십여 년 후, 지금의 중고딩이 청년세대가 됐을 때, 우리는 그들로부터 싸잡아 미개한 ‘이십세기 꼰대’로 취급당할지도 모른다.
P.S 이슬비 기자가 출산 및 육아 휴직에 들어갔다. We are Waiting for You!!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SIGHT & ISSUE 주명덕 개인전〈蓮 PADMA〉

그렇게 시간이 모인다

‘연(蓮)’만큼 그 의미가 고정적인 상징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 연을 불교와 연결지어서 생각하니 말이다. 진흙에 뿌리박고 서서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에서도 찬란한 꽃을 피우는 연은 그래서 흔히 몸은 세속에 있으나 더렵혀지지 않는 영혼을 지향하는 불교의 교리와 맞닿아 있다. 한미사진미술관(4.23~6.18)에서 열린 주명덕의 개인전은 바로 그 <연 PADMA>로 명명된 바, 일견 종교적 색채가 짙은 전시인가 했다. 그러나 웬걸. 정작 그는 특정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PADMA’는 산스크리트어로 연을 뜻하는데, 작가는 “소재가 지니는 불교적인 느낌”을 지우고 작업했노라 고백했다.
전시장은 그가 사계절 흑백으로 촬영한 연으로 채워졌다. 반사되는 수면 위 연엽은 물론, 화려하게 개화한 모습부터 그것이 소멸하는 모습까지 과정이 마치 시간의 순서로 배치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바, 그에게 연은 그 자체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서 태어나 다시 물로 돌아가는 연은 자연의 섭리를 보여준다. 주명덕의 연은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과도한 개입 없이 담담하게 보여주기에 그 공명이 크다. 그래서 전시장에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부터 마지막 작업을 볼 때까지 사진 각각이 가지는 의미보다 전시 전체의 맥락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특정한 사건에 기대어 전개되는 단막극이 아닌, 면면히 흐르는 감정 기복을 품은 한 편의 장편 서사시(敍事詩)를 보는 듯하다. 생명의 생성과 소멸 과정에 만개한 꽃이 주는 감흥에 비견되는 아름다운 시절도 있다. 그러나 그 꽃의 만개는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적절한 양분이 공급되어야 하고, 또한 온도와 일조량도 뒷받침 되어야 이뤄지는 실로 오묘한 조화의 결과다. 게다가 개화는 곧 다음 생의 잉태와 생산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낙화(洛花)로서만 가능하다. 주명덕의 이번 전시는 느리지만 분명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작가의 지난한 관찰과 기다림, 변화의 예리한 포착, 그리고 수십 년 카메라와 함께 한 작가의 생의 태도 등이 합작한 결과다. 그러니 이 또한 생명의 생성과 소멸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왜 연을 대상으로 선택했는지 이유가 이해가 갈 듯하다. 한국 근현대사진의 살아있는 역사로서 작가는 자신이 직접 드러나거나, 의도하는 바를 극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담으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한 작업이 모여 그 자체로 역사가 되었듯, 찰나가 모여 연속된 시간이 된다. 연은 바로 그 편린과 같은 시간의 부분이요, 그것의 생장과 소멸은 역사가 된다.
황석권 수석기자

HOT PEOPLE | 이 명 옥

열정으로 달려온 사비나의 20년

1996년 3월 사비나갤러리로 시작해 한국의 대표적인 사립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20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그간의 여정을 들어보기 위해 6월 10일 미술관을 찾았다. 먼저 20년을 맞은 소감을 묻자 그는 “20년 세월이 나 또한 놀랍다”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개인이 설립한 비영리 미술공간이 20년을 버티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답한다. 미술관을 운영하며 절망한 적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이 관장은 작가와 관객에게 한 약속을 떠올렸다고. 미술관 운영을 중도 포기하는 일은 그에게 작가의 전시경력을 없애고 사비나미술관을 찾은 관객의 기대와 애정을 저버리는 행동이었다. 이는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이 관장의 소신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결국엔 ‘책임감’이다.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비나미술관의 전신인 사비나갤러리는 처음부터 여타 상업 화랑과 차별화된 정체성을 내세웠다. 그것은 바로 차별화된 기획력으로 승부를 거는 이른바 ‘기획 전문’ 갤러리였다. 당시 우리나라 미술계를 떠올려보면 이 관장의 운영 방침은 시대를 앞서가는 행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밤의 풍경〉(1996), 〈교과서 미술〉(1997), 〈그림으로 보는 우리 세시풍속〉(2000) 등 주제 중심의 전시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이 관장의 차별화 전략은 전례 없는 모델을 만들어내
신생 갤러리였음에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특색 있는 전시공간이란 이미지가 확고하게 형성되고 미술관으로 전환할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한 이 관장은 2002년 7월 사비나미술관으로 등록을 마쳤다. 이후 다른 분야와의 융복합 전시와 역량 있는 작가의 개인전을
각 2회씩 개최하는 등 신선한 기획과 주제로 관객을 찾아가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 미술품
컬렉터의 데이터베이스인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와 AMMA(Art Market Monitor of Artron)가 공동 조사한 ‘사립미술관보고서’에서 국내 우수 미술관 3개 기관에 이름을 올린 것도 이러한 노력이 일궈낸 성과였다.
대중과 소통하려는 이 관장의 열의는 오래전부터 해온 강연과 칼럼 및 저술활동에서도 읽힌다. 관장이란 이름표를 떼고 미술을 사랑하는 미술인으로서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낯가리는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알기 쉬운 대중적 언어로 글을 쓴다”는 그는 이미 서른 권이 넘는 미술 관련 서적을 출간한 베테랑 작가이자 미술과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운영자금이 안정적으로 지원되는 공립미술관과 개성 있고 유연하게 미술관 색깔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립미술관이 결합된 형태의 미술관”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이 관장. 언제나 초심을 되새기며 일한다는 그가 머지않아 또 한 번 전례 없는 형태의 새로운 미술관을 구현할 것이라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곽세원 기자

이 명 옥 Savina Lee
홍익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 석사를 졸업했다. 사비나미술관 관장이자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 한국미술관협회장(2011~),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 (2008~)를 겸하고 있다.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도서부문(2006),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식 국무총리 표창(2009)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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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60sec ART전〉(5.21~7.10) 전시광경

HOT ART SPACE

아트페스타 이화
5.24~29 이화여자대학교 교정/52번가

이화여대 창립 130주년을 기념하는 〈아트페스타 이화〉가 5월 24일부터 29일까지 6일간 녹음(綠陰)이 우거진 이화여대 교정 곳곳에서 진행됐다. 여성 인재 교육기관으로서 이화가 130년간 축적한 창조적 역량을 보여준 이번 행사는 ‘S.O.S(Save Our Souls)’라는 제목으로 국내외 작가 130여 명이 참여한 〈제9회 이화미디어아트국제전·이마프〉를 비롯해 가로·세로를 각각 13인치로 제작한 작품 2600여 점을 전시·판매하는 〈이카프·ECAF(Ewha Craft&Art Fair)〉, 〈디자인 52〉, 〈팝업 컨테이너 프로젝트·PCP(Pop-up Container Project)〉, 〈공공예술 프로젝트·PAP(Public Art Project)〉 등으로 구성돼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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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각주
6.16~7.5 금천예술공장

2015년도에 활동한 〈제 6기 입주작가전〉으로 김해주가 기획하고 김기라 박광수 여다함 옥정호 등 1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작품에 대한 간단한 정보만을 전달하는 캡션이 아니라 문서, 소리, 영상 등의 입체적 각주를 제공해 현대미술을 설명하려 했다. 한편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제7기 입주작가의 활동을 공개하는 오픈스튜디오 〈해시태그〉도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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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개인전
6.9~8.6 페리지갤러리

작은 인물조각을 통해 우리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가 이동욱이 시각을 넓혀 생명체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한 작업을 선보인다. 〈모두 다 흥미로운〉이란 제목의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서로 다른 색과 무늬를 가진 돌을 모아 배열하고 그 사이에 이전 작업에서 사용한 오브제를 위치시켜 작업에 대한 추상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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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6.10~19 울산시 중구 태화강대공원

올해로 10회를 맞은 울산 지역 최대 규모의 미술행사다. 올해는 ‘사이의 형식’이란 주제하에 국내외 작가 29명이 참여했다. 고충환 운영 위원장은 “예년에 비해 전시 규모가 커지고, 참여 작가의 작업 수준도 향상되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앞으로 국제적인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도록 작품을 공원에 존치하거나 외국인 작가 비율을 높이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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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물길 따라 서울의 아름다움을 보다

《월간미술》에 ‘진경산수화 톺아보기’를 연재하고 있는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6월 22일 한강 유람선을 타고 〈옛 그림과 함께 보는 한강의 동호〉를 주제로 우리 옛 그림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는 강의를 했다. 이 날 강의는 ‘양화진 근대사 탐방 ‘돛을 달다’’의 특별프로그램으로 지난 5월 18일 ‘서호’(양화진 ~ 행호)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것이다. 이 날 선상 강연은 약 50명의 인원이 참가해 오후 6시부터 8시 40분까지 진행됐으며, 잠두봉 선착장에서 시작해 잠실까지 한강 물길을 따라 서울의 모습을 살펴본 후, 옛 그림에 묘사된 같은 지역의 모습과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프로그램은 〈2016 문화재 생생사업〉으로 마포구가 주최하고 문화재청이 후원했으며 (주)컬쳐앤로드 문화유산활용연구소가 주관했다.

ARTIST REVIEW 김형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형대 회고전〉 전시광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형대 회고전〉 전시광경

회화와 판화를 50여 년간 탐구해 온 작가 김형대의 화업을 총망라한 전시가 4월 8일부터 7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다. 다색 목판화와 채색 부조 회화로 나뉘는 그의 작품은 크게 물성(物性)과 환원(還元)이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 미술이 걸어온 역사 한편에 현재까지도 활발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김형대의 작품세계를 면밀히 들여다 본다.

김형대의 ‘환원 B’, 정박되지 않은 한국 모더니즘의 기표

김미정 | 미술사

김형대의 50년 화업을 결산하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미술사 정립을 위해 한국 현대미술가들을 조명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전시는 ‘격정과 도전의 시기’, ‘탐구와 체화의 시기’, ‘후광 그리고 새로운 시작’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앵포르멜 시기의 〈환원 B〉부터 2012년 제작한 대작 아크릴 부조 회화 〈후광 12-303〉까지 일람할 기회였다.
1936년생인 김형대는 소위 ‘단색화’ 세대의 화가이다. 그러나 회고전에서 살펴본 김형대의 작품세계는 앵포르멜 세대의 집단 미술운동과는 얼마간 거리가 있었다. 1960년대의 <씨족>과 <생성시대>, 다색 목판화와 <후광> 연작에서 보듯이 작가는 1960년대 말부터 한국 화단에 몰아친 이우환식 모노하 설치나 퍼포먼스를 시도하지 않았다. 〈에꼴 드 서울전〉과 같은 단체전에 초대는 되었지만, 김형대의 활동은 1970~1980년대 단색 모노크롬 평면화의 대열에서도 반 발자국 정도 빠져나와 있는 듯하다.
김형대의 회화는 본질적으로 개념이기보다 표상이다. “수행과 행위”보다는 “소재”로서의 한국적 미술을 추구한 것인데, 그래서인지 김형대의 그림에서는 모티프와 장식, 색채와 같은 조형 요소들이 중요하다. 전시장에서 영상으로 제공되는 작가의 말에서, 혹은 회고담에서 거듭 드러나듯이 김형대는 자신의 추상화 기원이 사적인 추억과 주변의 자연물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되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통학 길에 보았던 여의도 샛강 여울의 소용돌이, 조계사의 목조장식과 불상, 나무의 나이테 등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들이다. ‘생성’ 연작의 유기체적인 프랙탈 구조는 쉼 없이 역류하는 물의 이미지였다. 화사한 채색은 그가 진솔하게 털어놓듯이 동대문에서 포목점을 운영했던 어머니의 추억에서 비롯하였다. 차곡차곡 쌓여 정리되어 있다가 좍 펼쳐지는 옷감들의 휘황함에 자극받은 유년기의 미적 체험은 화가 미의식의 원형이었던 셈이다. 사실 이러한 낭만적 회고담은 전위미술의 대열에 섰던 동년배 한국 미술가로서는 다소 특이한 고백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1960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과 연이은 국전 서양화부 최고상으로 출발한 김형대 미술의 범주는 제도권에서 장려(?)한 한국적 추상화라고 할 수 있다. 단색화 시대로 기억되는 한국적 모더니즘 양상은 저마다 몸담고 있는 단체나 주력하는 전시에 따라, 지역과 연배에 따라 기법, 형식, 주제가 다양하게 갈라져 있는데, 김형대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화사한 색채와 민예적 소재는 1970년대 국전 비구상 부문 수상작들, 예를 들면 이준(1919~), 유희영(1940~) 박길웅(1941~1977) 등의 작품과 유사한 장르적 특징이었다.
<국전>과 김형대의 화업은 그 시작부터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아니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김형대의 미술은 1961년 수상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 이라는 이름에 결박되어 있는 듯하다. 이 수상이 명예로운 이력인지, 올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김형대의 미술이 이후 회화에서 판화, 아크릴 부조로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이었음에도 이 한 줄의 이력은 화인(火印)처럼 화가를 따라다녔다. 이 이력은 ‘지글지글 끓고 있는’ 현대미술 전위로서의 면모를 상쇄시키며, 김형대가 1960년 10월에 덕수궁 담에서 동료들과 감행했던 <벽전>과도 논리적으로 충돌하였다. 무엇보다 이 상의 낯설고 긴 명칭은 어쩔 수 없이 1961년의 역사적 상황을 상기시킨다.
1960년과 1961년에 연이어 발발한 4·19와 5·16 두 사건에 대한 해석이 곧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사관(史觀)을 형성하듯, 미학적 전위와 관전 진입이 동시에 가능했던 당시의 미술계 상황은 전후 한국 모더니즘에 대한 어떤 비평적, 혹은 미술사적 해석보다 상징적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연구하는 필자에게 김형대의 〈환원 B〉가 전후 한국 모더니즘의 ‘증후’ 적 작품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필자는 이 작품과 사건을 증거 삼아, 앵포르멜 세대의 전위에서 주류로의 전환이 군정(軍政)기에 이루어졌음을 논증하며 한국적 모더니즘에 관한 정치·사회적 해석을 시도한 바가 있다. 그러나 미술사가 정치·사회사의 결과물이 아니라 결국은 미술가들의 실천의 역사라는 사실에 더 큰 방점을 두는 지금, 중요한 것은 <국전> 최고상 이력이 김형대의 이후 50여 년 예술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김형대의 미술은 단색화의 수행적 담론이나 이우환(1936~)의 신체와 장소성과 같은 현학적 수사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두고 진행되었다. 물론 장인적 노력과 다색 채색판화를 통해 관전 추상화라는 좁은 장르적 울타리도 뚫고 나왔다. 기성세대로 몰릴 위험에도 불구하고 감상적인 회상을 늘어놓는 김형대의 미학적 취향은 윤명로(1936~), 김봉태(1937~) 등 동료 세대의 단체인 ‘60년 미술가협회’의 논조보다 오히려 김환기(1913~1974)나 유영국(1916~2002)과 같은 근대기 모더니스트의 서정주의와 유사하다. 1960년대 실존주의 미학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가 느긋하게 감상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첫 번째 빛나는 이력,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이 허용한 미학적 자유의 결과였을지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김형대가 회화의 물성에 몰두하게 된 것은 다색 목판화 제작의 여파였다. 1960년대 김형대의 색채에 대한 탐닉은 다색 목판화 시대로 이어졌다. 그가 다색 목판화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은 주목되어야 한다. 사실 다색 목판화는 한국 현대판화에서는 희귀한 것으로 유강렬(1920~1976), 정규(1923~1971)의 초기 판화는 물론이고, 1960년대 이후 많은 미술가가 조형실험으로 혹은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목판화를 제작했으나 주로 단색의 민예적인 투박함을 선호하였다. 그가 판본을 여러 개 만들어 색채를 거듭 찍고 종이에 색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게 했던 것은 판화에 섬세한 회화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었다. 요지는 기름기를 빼서 담백한 느낌을 주는 잉크 제조, 원하는 배색을 위한 종이의 선택이 까다롭게 이루어지면서 화가는 자연스럽게 질료의 문제에 집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포괄적으로 보자면 김형대의 색채와 빛에 대한 집착도 사실은 서구의 물질성에 대한 저항이었다. 결국, 담론의 구조는 ‘무위(無爲)’의 수행으로 서구의 물질성을 상쇄하려 했던 한국 단색화 미술가들의 논법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김형대 회화가 단색화의 울타리 바깥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단색화 미술운동과 교집합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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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 〈후광 85〉 캔버스에 아크릴 100×155cm 1985 왼쪽에서 두 번째 〈후광 84-6〉 캔버스에 아크릴 96.5×124.5cm 1984

‘환원(還元)’ 정박되지 않은 한국 모더니즘의 기표
김형대의 미술은 근대 주정주의와 현대 물질주의 미학의 접경지대에 있을 뿐 아니라 국전 추상화라는 ‘장르’ 미술과 ‘단색화’ 미술 그 중간에 걸쳐 있다. 이를 절충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혹은 경계의 확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미학적 자기 완결, 평면의 매체 담론으로 “환원” 하고자 했던 1970년대 동시대 모더니즘의 다른 영토에도 많은 한국의 미술가가 군집하고 있었으며, 김형대는 그중에서 확연한 성취를 이룬 미술가라는 사실이다.
논박할 여지없이 앵포르멜 추상미술의 제도적 승인의 징표가 된 <환원 B>는 한국 현대미술사 전후 추상미술의 챕터에서는 빠지지 않는 대표작이다. 한국적 모더니즘 시대를 동고동락했던 비평가 이일(1932~1997)의 유명한 평문 “환원과 확산”에서 거듭 반복되고 있듯이 환원은 클레멘트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의 용어이다. 그러나 오래전 국전 출품작 〈환원〉의 의미를 궁금해 하는 필자의 전화 인터뷰에 화가가 돌려준 대답은, 기억하건대 미니멀리즘의 미학적 근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화가가 설명하는 ‘환원’은 추억으로의 회귀라는 대단히 낭만적 시어였다. 기대했던 “표면으로의 환원”이라거나 “매제의 물성”이라는 형식주의 이론과 상관도 없는 이야기라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생각해보면 김형대의 〈환원 B〉의 붉은 색조는 미묘하고, 수평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요철은 ‘켜켜이 쌓여 있는 옷감’ 같이 섬세하다. 당시 앵포르멜 작가들의 미학적 퍼포먼스가 부조리극에 가까웠다면 김형대의 지향은 대상에서 환기되는 시적 정서였다. 그래서인지 1960년 ‘벽동인’과 같은 전위 미술가로서의 분명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김형대의 미술은 이후 한국 현대미술사 서술에서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것은 어쩌면 미술을 전위와 보수의 역학적 좌표로만 파악하려는 미술사가의 성긴 그물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서구적 모더니즘 담론으로 무장했던 현대 비평가들의 맹점(盲點)에 그의 작업이 포섭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형대의 이번 회고전은 그가 서정주의와 물질성이라는 근대와 현대미술의 두 논제를 규합하려 분투해왔음을 증명한다. 그의 목판화는 국전 추상화 장르의 진부함을 깨고, 조선시대 회화의 은은한 배채법(背彩法)과 다색 목판화 기법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이었다. 화가는 지금도 어엿한 현역 작가로서 다색 목판화와 채색 부조 회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기억은 반복적 해석의 행위라 했다. 김형대의 긴 화업의 첫 줄에 선명한 화인을 남긴 ‘환원’이 정박되지 않은 기표인 것처럼 말이다. ●

김 형 대 Kim Hyungdae
1936년 태어났다.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7년부터 2002년까지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를 지냈다. 1965년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0여 회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1982년 제2회 공간국제판화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기도 안성에서 작업한다.

ARTIST REVIEW 이숙자

 순지에 암채130.3×162cm 2010

<푸른 보리밭 – 황소> 순지에 암채130.3×162cm 2010

작가 이숙자는 채색화의 뿌리가 우리의 전통에 있음을 확신한다. 그는 채색화의 정통성에 대한 강한 신념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채색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숙자의 작품에 드러나는 화려한 색채와 선명한 주제는 한국적 정서와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양식의 상징으로 굳건한 생명력을 내뿜는다. 채색화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요기로운 초록빛 환영과 자아

류철하 |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초록빛 환영_이숙자전>(3.25~7.17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3전시실)은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한국화부문 세 번째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사 정립을 위해 진행하는 중장기 프로젝트이다. 작가 이숙자는 수묵화 중심의 한국화단에서 전통 채색화의 명맥을 유지해온 독보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숙자의 회화적 연혁을 약술하면, 홍익대 동양화과에서 천경자(千鏡子, 1924~2015), 박생광(朴生光, 1904~1985)과 김기창(金基昶, 1923~2001) 같은 근대기 한국 채색화의 맥을 이은 대표적인 스승들에게 지도를 받았고, 196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을 통해 데뷔한 이후 1980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에서 동시에 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바 있다.
이숙자는 전통채색화에 대한 탄탄한 기초와 현대화에 대한 다양한 시도, 지속적인 전시를 통해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정작 이숙자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은 <보리밭과 이브>다. 이 작품을 통해 강렬한 대비를 통한 인상이 대중에게 오래 깊이 각인되었다. 보리를 통한 추억과 향수, 보리 잎이 주는 꺼칠꺼칠함, 일렁이는 눈부신 푸른빛과 추수기의 황금빛 등은 전쟁과 재건, 경제개발 시기를 살아온 세대에게는 하나의 기호가 되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이숙자의 ‘보리밭과 이브’는 화면 전면을 가득 채운 보리밭과 함께 누드의 이브라는 강렬한 파격과 도발을 동반한 것이었다.
수직으로 상승하는 푸르고 거친 보리의 생동하는 색과 압도적인 군집의 힘, 낱알과 수염의 세밀한 묘사라는 공력(功力) 위에 체모를 과감히 드러낸 채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용감히 누운 근육질의 육체미 여인은 <이브의 보리밭> 시리즈로 탄생했다. 꽃과 나비, 고독과 환상의 누드 여인상은 <이브의 보리밭>에 와서 ‘생명에 대한 직설적 예찬’과 숙명을 거부한 당당한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여인의 자화상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작가는 ‘벌거벗은 이브’에 대해 “살아오면서 갈등했던 여성의 굴레와 인습에 대한 저항의식이 형상화된 나의 내면”이라고 하였다. 보리밭과 여체라는 두 자연의 아름다움은 신의 창조물로서 여인의 몸이라는 찬미와 함께 낙원 추방과 원죄의식이라는 태곳적 풍경을 자극한다.
이숙자가 구성한 보리밭과 이브는 한국적 정서와 미의식이라는 자연의 재현적 풍경(보리)과 함께 강렬한 누드상을 통한 초현실의 감정(이브)을 자극함으로써 현대, 여성, 전통, 채색이라는 미술적 시각 틀을 깨뜨려 나간다. 이숙자는 풍부한 자의식과 강렬한 주관, 깊고 다양한 색감으로 구성된 화면으로 대상을 끌어들여 간략하고 요체화된 풍경(보리밭과 이브)으로 완성시켜 나간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 있는 조형성과 색감을 지닌 감각적이고 사실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초록빛 환영_이숙자전>은 한국화와 채색화가로서 작가의 도정, 한국화의 정체성 확립과 한국미술사에서의 채색화의 정통성 수립이라는 과제를 풀기 위해 작가가 도전했던 과제들을 요약적으로 제시한다. 이숙자는 첫 개인전인 1973년 <이숙자 한국화전>에서부터 한국화라는 명확한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전통과 우리 정서의 추구에 집중하였다.

3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3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광경

3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3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초록빛 환영 _ 이숙자전> 전시광경

한국 채색화의 정통성
이숙자의 초기작엔 색지함, 목안(기러기), 태극선, 족두리, 댕기, 십장생도, 고가구 등 전통 민예품들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민속적 소재의 독특한 색채감각은 규방과 여인의 다감한 정서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달래색, 배추색, 옥색, 자주색 등 깊게 가라앉은 애환의 색감들은 조선시대 여인의 시름과 한숨, 애환 어린 정서를 상기하게 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애환 어린 정서가 이후 보리밭 작품을 하면서도 이어졌다고 말한다.
이숙자는 원색의 오방색이라는 민속적 기물에서 꽃으로 소재와 관심이 추이되면서 간결하고 극명한 묘사와 환상적인 톤의 색채가 많아졌고, 색감이 풍부하고 다양한 꽃은 색채의 발견이라는 문맥 속에 더없는 소재가 되어 주었다. 한국미의 정체성을 색채 속에서 찾고자 하는 이숙자에게 꽃과 여인이라는 소재는 최상의 것이었다.
이후 이숙자는 1980년대를 통과하면서 보리밭이라는 주제를 택해 집중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민속품을 통해 한국미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작가가 추구한 한국적 정서와 미의식은 보리밭에 이르러서 비로소 완성된다. 이숙자에게 있어 보리밭으로 상징되는 초록빛 색채에 대한 경험, 보리밭에서 만난 초록빛 환영의 경험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한 것이었다.
이숙자는 “포천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나지막한 언덕 등성이에 넓게 펼쳐진 보리밭을 보고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보리수염은 초록빛 안개처럼 자욱하게 느껴졌다. 밝은 회청색의 보릿대와 연둣빛 보리이삭 그리고 옆으로 힘차게 뻗은 잎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전생에서나 들어본 듯 느껴지는 뻐꾹새와 종달새 소리가 환상적이었다. … 잠시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음향도 바람도 정지된 한 폭의 짙은 녹색 보리밭은 요기스러운 초록의 공기로 싸여 있는 것 같았다. 검은 제비나비가 펄럭펄럭 그 초록빛 대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가슴속에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가 한여름철 소나기로 씻긴 것 같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고 밝히며 “보리밭이 슬픈 빛 정서를 띠면서도 기氣가 살아 요요한 초록빛을 띠는 것은 그러한(민중의 양식이 여물어가는) 희망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보리밭을 만나면서 민족적이고 민중적 양식의 상징, 고난과 좌절을 넘어선 굳건한 생명력의 발아와 힘을 발견한다. 그리고 보리밭과 함께 여자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인습과 문명에 도전하는 여인의 모습을 상징화했다.
하나의 전형과 양식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공력을 고스란히 담을 대상이 필요하고 강인한 탐구욕과 견고한 자기세계 그리고 의지가 요구된다. 이숙자에게 있어 보리밭과 이브는 한국적 정서와 함께 열정과 공력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대상이 되었고 이브는 강렬한 주체의 상징이 되었다. 채색에 대한 온갖 왜곡을 딛고 석채를 통한 채색의 고유한 색감과 깊이, 그리고 자기세계의 전개는 ‘다이내믹’한 현대사 속에 또 다른 정체성이 되어 새로운 공감을 제시하고 있다. ●

이 숙 자 Lee Sookja
1942년 태어났다. 홍익대학교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교수로 재직(1993~2007)하다 정년퇴임했다. 1973년 신세계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6회 개인전을 열었다. 제5회 석주미술상(1994), 제5회 대한민국미술인상 – 여성작가상(2011), 제13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 미술진흥부문(2013) 등을 수상했다.

EXHIBITION TO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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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병호 〈 Taxidummian 〉(가운데) 우레탄, 나무, 철 가변크기 2016 아래 김인배 < Rising Fastbal l> 합성수지, 철 70×150×242cm 2010~2011

BODY MATTERS

2016년의 ‘몸’은 어떤 형태로 독해할 수 있을까? 6월 10일부터 8월 28일까지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그다음 몸: 담론, 실천, 재현으로서의 예술〉은 신체의 형상이 드러나거나 신체에 직접 개입하는 작업을 주로 등장시키면서 ‘매개로서의 몸’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몸, 현재의 갈등 속에 포개진 몸, 결박되어 있거나 벗어나려는 몸 등 그간 미술에서 다뤄진 ‘몸’의 이야기를 재소환해 현재의 유의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각 작업 간 앙상블로 풀어낸 몸의 합주가 들려주는 “담론, 실천, 재현으로서의 예술”에 귀 기울여 보자.

몸의 위치에 던지는 질문

현시원 | 독립큐레이터

오늘날 우리는 쉴 새 없이 인터넷 패스워드와 아이디로 다른 세계에 진입한다. 업로드한 사각형 이미지 파일을 통해 하루에도 수십 번의 순간을 저장하고 오판한다. 그때마다 각자는 다른 몸이 되거나 몸 없이 움직이기를 표방한다. 음식 포르노 사진의 윤기, 한 여배우와 영화감독에 관한 기사를 카카오톡 대화창 형태로 배치한 노란 대화창 등은 모두 몸통 없이 떠도는 가상의 몸들이다. 몸 없는 말들이자 안개같이 뿌옇게 증식하는 소문들이다.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다음 몸〉(정현 기획)은 몸이 위치하는 여러 개의 자리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그다음 몸〉의 전시장에서 보이는 것은 눈·코·입과 팔·다리의 형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몸과 미래의 몸, 부식될 위험이 있는 수많은 갈등 관계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현재의 몸이 포개져 있다. 결박되는 몸을 인식하거나 벗어나고자 하는 ‘정체성’의 문제는 이제 다 극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시점에 다시 불려나온 2016년의 몸은, 그러나 이 전시의 선언 같은 영문 제목(BODY MATTERS)처럼 언제나 문제가 된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유목연의 〈당신의 어깨 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냥 웃어요〉가 몸 없이는 전시장에 들어올 수 없는 관람객에게 살짝, 깨어있기를 제안하는 퍼포먼스라면 김월식의 박스로 만들어진, 무속인들이 모시는 신의 형상을 재현한 〈지동신〉은 몸들이 부대낀 이후의 장면을 시각화한다. 서로 얽힌 몇 개의 몸은 동물의 것이지만 인간의 눈과 인습을 통해 생성된 몸/조각으로, 마치 몸의 현재적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듯하다. 김혜순의 시 〈돼지〉의 한 문장 “우리는 발끝으로 걸어야 하죠/ 벽 너머 8년째 무언 수행 중인 스님/ 스님 밥 드나드는 문 열릴 때 섬광처럼 끼쳐오는 요란한 냄새”가 묘사하는 찰나와 같이 〈그다음 몸〉에서 관람객을 초청하는 순간은 움직이는 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림 안에서 멈춘 채로 움직이고 있거나 아니면 땀 냄새를 풍기며 활발하게 움직이던 몸, 살아 있는 이 순간을 작동시키는 인간의 도구이자 존재 증명으로서 호흡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인 몸 말이다. 멈춰 있지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은 무엇보다 이우성의 그림들이다. 개인전을 비롯한 다른 전시장에서 젊은 세대의 태도 또는 그림 방법론에 대한 작업으로 독해되곤 했던 작가의 그림은 〈그다음 몸〉에 있는 다른 몸들과 결부되며 신체의 꼬불꼬불한 내장, 얼굴 피부를 표현하는 방식과 살갗 그러니까 바깥에 있는 사물처럼 보이는 몸의 내부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새롭게 독해된다.(〈끝〉, 2013) 이우성의 그림과 한 공간에 놓인 박진아의 그림 또한 다르게 보는 관람객의 시각을 누린다. 박진아의 그림에는 절단된 신체가 아니라 몸의 전체가 드러나는 사람들의 동작들이 드러나는데, 〈2011년 후쿠시마〉에서 푸른색 천과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몸은 올록볼록한 입체감을 보여주지만 그 어떤 서사도 표현도 직접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이 그림들 사이에서 이병호가 만든 인체 형상은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의 몸들을 관측한다. 피에타적이지만 더 위태롭고, 황금비율의 몸으로 이상화하기에는 기계부품의 연결체처럼 보이는 오늘의 몸을 재현하는 작업이다.
결정적 사건의 이전과 이후, 또는 중심이 되는 사건의 주변부를 구성한 듯한 화면에서 사람의 몸은 다른 몸들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누군가 묻는다면, 〈그다음 몸〉에 있는 각각의 작업들이 서로의 보다 세밀한 질문이 되어주거나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답변이 되어준다. 기획전에서 큐레이터가 각 방에 배치한 몇 개의 몸은 해당 작가의 세계관에서 아예 떨어져 나올 수는 없지만 큐레이터의 기획과 한 공간을 점거한 다른 작업들로 인해 작가론, 작품론의 형태에 종속되지 않은 다른 문맥들에 위치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니키리의 잘 알려진 사진 연작이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수행의 과정을 통해, 여러 집단의 문화적 양태들을 인물화한다면 김옥선의 커플 사진은 화면이 가진 다큐멘터리 속성으로 인해 주석이나 레퍼런스가 아닌 자신의 몸으로 직접 쓰는 적확한 1인칭 시점을 보여준다. 안은미의 3부작 〈조상에게 바치는 땐스〉(2011),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2013), 〈사심없는 땐스〉(2012)의 영상 부분인 세 개의 화면에서 각자의 춤 동작을 경연하고 있는 것은 조용하지만 무척이나 빽빽하고 결연한 몸들의 합주다.

노승복〈 1366 Project 〉피그먼트 프린트 100×900cm 2016

노승복〈 1366 Project 〉피그먼트 프린트 100×900cm 2016

몸의 노동
〈그다음 몸〉에서 문제되는 몸은 2016년의 여러 문제적 지표들과 경쟁하는 몸이다. 하지만 이 경쟁은 그 무엇을 이기기 위한 속도전이 아니라 신체의 동작을 느리게 보는 것에 가깝다. 폭력과 혐오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쟁의 룰을 다시 보게 하는 몸들을 등장시킨다. 오석근의 사진작업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스테레오타입 이미지를 거리 바깥으로 또 바깥으로 보낸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전적 캐릭터였던 철수와 영희 가면을 쓴 몸들이 위치하는 곳은 어디인가? 또 그가 불려온 근대 엽서 속 인물을 코스프레한 남자의 관상은 어떠한가? 박보나의 작업 〈쉽게 끝나지 않는 순간〉에서 작가가 탐구하는 것은 누하목재 김만호 님의 손, 이미지원 액자 장성민 님의 손 동작과 이미지이다. 한편 이들의 전문기술과 손에 의한 노동은 작가의 작업에 일부 동원돼 이 전시장 안에서 세속적인 삶에 위치하는 몸의 노동을 재건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저서 〈해방된 관객〉에서 ‘치안’을 공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배 속에서 신체를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놓는 논리라고 하며, 집단적 언표행위의 방안을 발명함으로써 이 치안 질서와 단절하는 실천을 ‘정치’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1848년 프랑스혁명 때 한 노동자 신문에서 어느 소목장이 노동자의 일과를 묘사한 텍스트를 소개한다. “자신이 마루판을 깔고 있는 방의 작업을 끝마치기 전까지 그는 여기가 자기 집이라고 하면서 그 방의 매치를 마음에 들어한다.(중략) 일순간 팔을 멈추고 널찍한 전망을 향해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 전망을 만끽한다.” 랑시에르는 이 텍스트에 덧붙여 “다른 것에 열중하는 신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소목장에게 중요했으며 그것은 “신체를 재량껏 사용하는 가운데 이 정념, 동요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선의 형태”라고 적었다. 팔의 노동에 순종하는 자들과 시선의 자유를 소유한 자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신체의 노동 사이사이의 비움을 채우는 시선과 거리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다음 몸〉 전시장에는 몇 개의 짧은 텍스트가 전시공간을 인도한다. 예를 들어 “실천으로서의 몸, 쓰기를 통한 읽기” 와 같은 문장이 흰 벽면에 자리한다. 길지 않은 문장들에서 전시에 관한 설명이 아닌 안내, 오늘날 몸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편견과 여성혐오라는 이슈들을 어떻게 다른 차원으로 타개해나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을 본다. 소마미술관 전시장은 〈그다음 몸〉의 흥미로운 관람을 도출한다. 전시를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동작을 수행해야 하고 바로 앞에 위치한 녹색 잔디 위에서 개인, 가족, 친구, 관람자와 행인이 동시에 몸을 각각 움직이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인다. ●

WORLD TOPIC | BOSTON

Super‑Natural Han Seok Hyun (South Korean, born in 1975) 	2011 	Mass produced products 	*Courtesy Hanseok Hyun/ Park Myung Rae  	*Photograph © Museum of Fine Arts, Boston

위 최정화 패브릭, 송풍기, 모터 8m(높이) 2014 보스턴미술관으로부터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Market Place Center에 설치됐다 아래 한석현 < Super-Natural > 생활용품 가변설치 2011 Courtesy of the artist

Megacities Asia

아시아에 대한 동시대의 평가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한 도시문화 발달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주목받는 아시아의 도시라면 서울, 베이징, 상하이, 뭄바이 등이 있는 바, 이 도시에 기거하는 작가가 미국 보스턴에 모였다. 보스턴뮤지엄(Museum of Fine Arts Boston)에서 열린 (4.3~7.17)이 바로 그것. 해당 도시의 급격한 성장을 체험하며 성장한 작가들이 각자의 도시를 어떻게 미술을 매개로 풀어내는지 살펴보자.

시적 도시, 메가 시티

최다영 | 독립큐레이터

‘메가 시티(Mega City).’ 우리는 이 단어를 단순히 거대 도시 혹은 대도시, 인구 천만이 넘는 도시로 번역한다. 2009년 도시의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반을 넘어서는 ‘사건’이 기록되었고, 인구 천만을 넘어서는 초거대 도시도 점차 증가하고 있음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행정적 구분을 넘어 국가 경제력으로까지 해석되는 거대 도시라는 뜻을 지닌 메가 시티. 2015년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상위 10개 메가 시티 중 8개가 아시아 국가의 수도로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1위는 도쿄로 3,800만 명, 2위는 상하이로 3,500만 명이다. 서울은 2,500만 명으로 세계 4위다. 인구 밀집도뿐만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만들어낸 아시아 국가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역사와 특징은 이 한 문장에 함축돼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올림픽 이후에 눈부신 발전과 변화에 따른 경제적인 풍요의 혜택을 받은 곳이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 성장 이면에는 소외와 빈부격차 같은 사회의 모순이 심화하고 있었고 최근 그 동안의 결계가 무너지며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문제의 현장을 우리는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작가들은 거대하게 팽창해 나가는 도시에서 어떤 단면을 포착하고 있을까? 메가 시티로 특정지워진 아시아 몇몇 도시의 동시대 미술 현장을 조명하는 전시를 위해 각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들이 미국에서 가장 유서깊은 도시 보스턴에 초대되었다. 전시 기획자들은 아시아 메가 시티의 이야기와 그곳에서 도시의 팽창을 겪으며 성장한 작가들에 의해 발화된 형상들이 어떻게 조우하는지 관찰하고자 했다.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 보스턴(Museum of Fine Art, Boston, 이하 ‘보스턴 뮤지엄’)에서 한국, 중국, 인도 작가들을 초대한 <메가 시티즈 아시아(Megacities Asia)> 기획전이 4월 3일부터 7월 17일까지 열린다. 제목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급속도의 성장을 일궈낸 거대 도시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에는 서울, 베이징, 상하이, 뭄바이, 델리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 19점이 출품되었다. 보스턴 뮤지엄의 알 마이너(Al Miner) 와 로라 바인스타인(Laura Weinstein)이 대표적인 아시아 메가 시티를 일일이 방문한 뒤 총 11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한국에서 전용석(플라잉시티), 최정화, 한석현이, 중국에서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쑹둥(Song Dong), 후샹청(Hu Xiangcheng), 인슈전(Yin Xiuzhen), 인도에는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앗디티 조쉬(Aaditi Joshi), 헤마 우파디야(Hema Upadhyay), 아씸 와키프(Asim Waqif)가 참여하였다. 이들의 작품은 보스턴 뮤지엄 지하에 위치한 기획전시실 외 미술관 곳곳에 설치되어 유물들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로 평가받는 보스턴 뮤지엄은 서립된 지 100년이 넘었으며 수준 높은 전시로 명성이 높다. 특히 1854년 일본이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이후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미술품이 총 10만 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994년 이후 19년간 재임한 말콤 로저스(Malcolm Rogers) 관장이 물러나고 대신해 2015년 취임한 매튜 테이텔바움(Matthew Teitelbaum)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야심차게 마련한 기획전이다. 참여한 작가들이 포착한 지역을 거점으로 예술의 동시대성을 다양한 층위에서 섬세하게 다루어냈다기보다는 ‘메가 시티 아시아’라는 다소 직설적인 전시 명칭에 걸맞게 아시아 미술 현장을 평면적으로 재단하고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발화 형식과 구성 방식을 집중 조명한다.
서울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전용석(플라잉시티), 최정화, 한석현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로라 바인스타인은 특히 최정화의 작품세계가 ‘메가 시티’를 주제로 기획하는 데 있어 모티프가 됐다고 전시 오프닝 당시 짧게 언급한 바 있다. 전시 기획 서문에서도 ‘중첩’적이라는 표현을 일종의 키워드로 삼았는데, 이번 전시에서 최정화 외에도 많은 작가에게서 발견되는 특기할 만한 부분은 작품의 구성과 조형 언어에 있다. 다수의 작품에서 보이는 ‘누적’ 혹은 ‘축적’의 표현 방식 때문이다. 이 구성은 최정화의 대표작인 플라스틱 바구니 작업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데, 이번 보스턴 전시에서는 많은 관람객이 드나드는 중앙 계단 로비 쪽에 층층이 쌓여 일종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는 시내 99센트 마켓에서 찾은 듯 보이는 바구니와 플라스틱 장식품들을 화려하면서도 위태롭게 쌓아 올린 작품으로 그 모습은 마치 메가 시티들이 단시간에 만들어낸 도시의 형국과도 유사하다.

헤마 우파디야  알루미늄, 차에서 수집한 철, 에나멜페인트, 플라스틱, 레진 366×243×243cm 2009 ( Kiran Nadar Museum of Art, New Delhi )

헤마 우파디야 <8×12> 알루미늄, 차에서 수집한 철, 에나멜페인트, 플라스틱, 레진 366×243×243cm 2009 ( Kiran Nadar Museum of Art, New Delhi )

아시아의 도시, 내부의 직설적 제시
이러한 표현 방식은 베이징을 대표하는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에서도 드러나는데, 이 작품 또한 미술관 로비 중앙에 설치되어 메가 시티즈 아시아가 바로 이러한 축적의 이미지와 관계 있음을 전달하는 데 이번 전시 기획 의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시 출품작 (2003)는 베이징 도시 생활자에게 자전거가 주는 의미를 통해 도시 사회사를 기리고 있다. 자전거로만 조립되어 그 형태를 유지하는 이 작품은 로비에 많은 사람 사이에 위태롭게 버티고 서있으며, 첩첩이 쌓여있는 구성은 언제든지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함을 드러낸다.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작품은 작가 쑹둥의 (2005~2006)이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자신의 개인적인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세계로 잘 알려진 그는 이번 전시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발표해온 연작 중 대표 작품을 선보인다. 베이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가족들이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한 이 작품은 천장에 비둘기집을 만들고 아래는 오래된 후통(골목)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짝과 기왓장들을 블록쌓기 하듯 쌓아 올려 간신히 한 칸 정도의 집 형태를 갖춘 공간 설치작업이다.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전통적인 베이징 노동자 계급의 집의 형태를 설명한다. 지금의 베이징에 수도 없이 세워지는 화려한 고층 아파트의 형세와 사뭇 다르나, 오랜 세월을 견뎌낸 문짝이 서로 기대고 기대어 구축된 좁디좁은 공간에선 아늑한 온기가 느껴진다.
뭄바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헤마 우파디야 역시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이다. 그는 불행히도 지난 해(당시 43세) 전시 준비 기간 중에 살해되어 전시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뭄바이의 오래된 슬럼가인 다라비(Dharavi)의 모습을 기록한 설치작품 <8’×12’>(2009)와 수십 개의 장난감 새로 구성한 (2011)가 이번 전시에 초대되었다. <8’×12’>(2009)는 너무나 촘촘히 들어서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도 슬럼가의 집들이 마치 인형 집처럼 마구잡이로 엉켜있는 형상이다. 이 구역 내에서 과연 인간적인 삶이 가능할까하는 의문까지 들게 하는 이 작업은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안쪽에 붙어 대도시가 번영해가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의 두 번째 작업은 장난감 새 수십 마리가 한 줄의 글귀가 적힌 종이를 물고 한 줄로 나란히 앉아있는 형태다. 이 새들은 클레이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모두 인도 토종이 아닌 외래종 새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뭄바이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을 상징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뭄바이의 생활자들 속에서 소외받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이 외 한창의 개발 논리에 따라 공사 현장이 도시를 뒤덮었을 때 일각에서 웰빙 문화를 주장하며 내놓았던 초록 플라스틱 병들과 제조된 도구들을 쌓아 설치한 한석현의 (2011) 현대 서울의 도시문화와 공간을 연구하고 비평을 목표로 작업하는 플라잉시티 전용석의 작품, 격변하는 인도 도시의 사회 문제를 일상의 오브제를 이용해 꼬집어 드러내는 수보드 굽타의 작품 등 한국, 인도,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묶은 <메가 시티즈 아시아>는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거대 도시가 된 생활권 내 예술가들이 어떠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급속도로 거대해진 아시아의 도시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그 속 도시 생활자이자 동시대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조형적 언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 속의 문화와 사회의 현상을 ‘중첩’, ‘반복’을 키워드로 삼아 압축적으로 설명하면서, 중첩의 언어를 운율로, 반복의 위태로움을 역설적으로 시적으로 환원하려는 기획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본 전시는 표면의 일부만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방식과 더불어 다양한 층위의 동시대 거대 도시 미술 현장의 모습을 드러내는 점에서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 동안 동시대 현대미술의 현장과는 동떨어진 기획 전시로 주목받지 못했던 보스턴 뮤지엄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추후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길 기대해 본다. ●

NEW FACE 2016 김선영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집중해 관찰하지 않아도 익숙한 주변 풍경이 ‘문득 발견’ 될 때가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일상에 무심해지지만 때론 어쩌다 발견하는 변화에 유난을 떨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유난스러움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으로 돌아가버린다.
여기 김선영의 회화가 있다. 거기에는 그녀가 늦은 밤 귀가를 위해 걷는 길, 서너 정거장 남짓의 거리를 일부러 걸으며 발견한 풍경이 담겨있다. 특별히 별스러운 대상도 아니다. 공터에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토사, 폐수영장, 빛이 바랜 회색 벽, 넝쿨 등이 보인다. 평소에는 그 존재조차 의식되지 않을 그것들이 작가의 관찰과 붓질을 거치자 이상하리만큼 큰 불안감을 표출한다. 불안을 야기하는 대상이 아닌데도 편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김선영 작업의 특징인듯 하다. “불안과 불안정함은 누구나 감추려고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단념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나는 미완의 땅에서, 개척의 변두리에서, 현재로 가는 길목에서 나를 닮은 풍경을 만난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나의 감정, 나의 역할, 나의 자리를 낯선 땅으로부터 느낀다.”(작가노트 중)
작가와의 대화 중 가장 확신에 찬 말은 “저는 어떤 상황, 대상에 제 감정을 잘 이입시켜요”였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의 내면은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일 수도 있겠고, 어두운 밤일 수도 있겠다. 모두 그 세부가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가득한 대상이다. 그 불완전하고 어두운 공간의 작업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신에게서 측은함을 느꼈다는 작가다. “완전한 객관화는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것은 또 다른 주관의 생성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김 작가는 스스로 더 강해지거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객관화하여 혹독하게 다그치기보다는 자기연민의 제스처를 취한 것이 아닐까? 집단에 의해 버려진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추스르고 싶은 것은 아닐까?
“몇 번의 휴학을 거치면서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석사 청구전을 앞두고 고민이 극에 달했죠. 그 당시 6개월이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그 직전 시기에 작가는 사실 사진을 긁어 표현한 작업을 선보였다. 다만 그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일었다. 이는 지금의 작업으로 회귀하는 계기가 됐다. 어떤 포기는 다른 선택을 의미한다. 작가는 그러한 전환에 결코 긴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 김선영은 파주 헤이리로 작업실을 옮겼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레지던시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는 그곳에서 부유하는 자신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떤 지향점과 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그저 괜찮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릴지도 모르겠다. “고민이 없어지는 것이 고민”이라는 작가의 고백을 들어보니 꼭 그랬으면 좋겠다.
황석권 수석기자

김선영
1984년 태어났다. 성신여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총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과 광주, 부산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제7회 겸재 내일의 작가 대상’(겸재정선미술관, 2016)을 수상했다. 현재 파주 헤이리에서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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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리> 종이에 채색 162×130cm 2013

 

NEW FACE 2016 김이박

물끄러미 식물을 바라본다

김이박(본명 김현영)은 작가보다 소장으로 불릴 때가 잦다. 그는 미술과 생업의 영역이 뒤엉킨 작업을 진행하며, ‘작가’의 경계를 허문다. 그의 활동 영역을 잇는 매개는 단 하나. ‘식물’이다. 스스로를 ‘식덕후’라 칭할 만큼 작가의 식물 사랑은 유별나다. 식물은 그의 작업을 구성하는 주요 소재이자 본인을 투영하는 대상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코스모스다. 그는 식물을 통해 각박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일종의 생존 매뉴얼을 만들면서 사회적 관계 형성에 미학적으로 접근한다.
2015년부터 계속되온 프로젝트 〈이사하는 정원〉은 작가이자 활동가로서 그의 창작물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김이박은 의뢰인으로부터 시름시름 앓는 식물을 위탁받아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보살핀다. 그의 작업실은 식물이 치료받고 안정을 취하는 일종의 식물병원이자 요양원이다. 일련의 과정은 화훼디자인을 전공하고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쌓인 식물에 대한 전문지식이 수반되었기에 가능했다. 이 프로젝트는 식물에게서 느낀 동병상련에서 시작했다. 도시에서 키우는 대부분의 반려식물은 ‘화분’이라는 부자연스러운 거처에서 인공적으로 생활한다. 화분 속 식물은 분갈이 혹은 주인의 이사에 따라 함께 터를 잡지 못하고 이주한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수없이 이사를 다닌 김이박의 모습과 닮았다. 자신을 투영한 그의 시선은 차츰 약하고 여린 식물을 바라보는 보호자이자 관찰자로 이동한다. ‘식물을 기른다,’ ‘키운다’는 표현에서 나타나듯 식물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위치는 상대적 우위에 있다. 말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을 연약한 보호 대상으로 설정하고 보살피려 한다.
한편 작가의 관찰자적 시선은 감시카메라를 활용한 작업 〈정원 cctv〉에 잘 드러난다. 작가는 어느 날 자신의 정원이 훼손되자 이를 보호하기 위해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처음 의도와 달리 촬영된 영상을 관찰하며 작가의 시선은 식물의 신변보호에서 점차 식물을 둘러싼 사람들의 행태로 번져갔다. 그러나 식물을 둘러싼 그의 작업이 관음증적이거나 판옵티콘의 권위적 시선과 구별되는 점은 상호적 관계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관계성’은 김이박의 모든 작업의 기초가 된다. 〈이사하는 정원〉에서 식물의 병증을 치료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의뢰자의 태도 변화다. 그는 의뢰자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뢰자의 환경과 상태를 이해하고 식물과 의뢰자를 함께 바라본다. 이를 통해 의뢰자-식물-작가의 정서적 유대를 도출한다. 또 다른 작업 〈사물의 정원〉도 마찬가지다. 이 작업은 관객이 지닌, 사물과 그에 얽힌 간단한 사연을 작가가 준비한 화분과 교환하는 방식이다. 끊임없는 관계맺기는 정서적 거리감을 줄인다. 한편 모든 관계의 설정은 작가의 설계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그 속에는 타자적 시선도 있다.
식물의 이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조건은 ‘사람’이다. 작가의 작업에는 늘 식물과 사람이 공존한다. 김이박의 상호 관계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따뜻한 보호자의 감성과 차가운 관찰자의 시선이 겹치며 오묘한 감성적 변이를 일으킨다. 모든 생물은 참 복잡한 존재다.
임승현 기자

김이박
1982년 태어났다. 계원조형예술대 화훼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서울 성균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Twists and Turn〉을 시작으로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6월 17일부터 8월 28일까지 헬로우뮤지움 동네미술관에서 열리는 〈김데몬전〉(6.17~8.28)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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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정원〉 혼합재료, 관객의 물건 가변설치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