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황규태
사진작가 황규태는 전통적인 사진어법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지난 40여 년 동안 추구해 온 전위적인 작업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7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황규태 개인전-사진 이후의 사진(Photography after Photography)>이 바로 그것. 이 전시에는 196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대표작이 총망라되어 출품됐다.
탐미적 아방가르드 작가
박상우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지난 40여 년 동안 제작된 황규태 사진 아카이브는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그의 수많은 이질적 사진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인습(因習)과 현재의 안주(安住)를 넘어서려는 끈질긴 ‘아방가르드(avant-garde)’ 정신이다. 아방가르드는 사상, 예술, 과학, 기술 분야에서 과거의 인습과 단절하고 혁신 혹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이다. ‘혁신’ 혹은 ‘넘어섬’은 그가 스스로 고백하듯이 1960년대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사진예술에서 줄기차게 추구해온 문제의식이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어느 범위를 넘으면 사진이 아니라고 할까. 사진은 사진이어야만 되는 것일까. 그 시절의 의문들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DNA 분자들이다.”1
황규태도 1960년대에는 다른 사진가들처럼 스트레이트 사진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스타일을 채택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사진 스타일의 ‘한계’를 스스로에게 질문했으며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 ‘넘어서고자’ 했다. 그에게 기존 사진의 근본적 한계는 사진의 존재론적 특성(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그것이 존재했음’) 자체에서 비롯된다. 사진은 회화 및 언어와 달리 기호가 가리키는 대상(지시체)이 촬영순간에 임의적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카메라 앞에 존재해야 한다.2 사진의 이 같은 피할 수 없는 속성 때문에 사진가는 문학가나 화가와는 다른 예술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사진가는 카메라 앞에 있는 대상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한다. 사진은 실재(피사체)에 종속된 매우 독특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황규태는 사진의 이 같은 본질적 속성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거부한다. ‘그것이 존재했음’이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펼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매체를 사용하지만 사진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이 때문에 그는 사진의 근본적 속성을 벗어난 사진, 즉 시공간이 다른 곳에 위치했던 두 피사체를 한 장의 사진에 합성한 몽타주 사진 등 다양한 실험사진 혹은 메이킹(making) 포토를 시작했다: “메이킹 포토는 찍힐 대상이 있어야 하는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3 황규태에게 예술은 결국 실재의 ‘복제’가 아니라 실재의 ‘변형’인 셈이다. 황규태의 예술론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 응축되어 있다: “사실과 실체를 훼손해놓고, 그것을 예술이라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전시 제목인 <사진이후의 사진>은 작가가 기존의 사진 경향(‘앞의’ 사진)과 구별하여 자신의 사진(‘뒤의’ 사진)에 부여한 정체성 혹은 이름이다.
황규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서양미술사에서 시각언어가 가장 풍요롭게 탄생한 1920~3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 미술(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구축주의)의 정신을 직접 이어받았다. 그 정신이란 기존 전통예술의 극복, 전위적 예술 추구,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 허물기, 예술과 삶의 일치 등이다. 그는 더 직접적으로 당시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이 새로운 미술언어를 창조하기 위해 실험했던 다양한 사진기법 – 포토몽타주, 이중노출, 필름 태우기(버닝), 차용, 왜곡, 과학사진(현미경사진, 천체사진, 항공사진, 엑스레이사진) 등 – 을 자신의 사진에 도입했다.
컴퓨터 모니터, TV 화면에 사진을 띄워놓고 확대 촬영한 황규태의 ‘픽셀 시리즈’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이 경탄했던 현미경사진의 일종이다. 무한히 작은 것(혹은 무한히 큰 것)에 다가가려는 황규태의 욕망은 인간 눈의 지각능력을 넘어선다. 따라서 그는 다양한 확대 도구(접사렌즈, 포토샵 등)를 이용하여 생리학적 시각도구로는 다다를 수 없는 미시세계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무한히 작은 세계가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차원의 미적 세계(색, 형태, 패턴)의 비밀을 드러낸다. 황규태의 픽셀 사진은 심오한 철학 얘기 – 사진의 본질은 점 혹은 픽셀이라는 존재론적 담론 – 를 담고 있지 않다. 그는 대신 확대의 즐거움, 즉 가벼운 마음으로 무심코 무언가를 확대했을 때 그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작은’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것은 작가의 표현대로 그냥 ‘비트 놀이’ 혹은 ‘장난’이다. 문방구에서 구입한 점(點) 스티커를 크게 확대한 이미지가 모니터의 픽셀과 유사한 패턴을 보일 때 그는 거기에서 발견의 기쁨을 느낀다. 관객은 자신 앞에 걸려있는 질서정연하고 품격 있는 커다란 추상화가 사실은 작고 하찮은 스티커를 확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작은 충격을 받는다. ‘그냥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지식의 개입)’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가 주는 매력이 황규태가 노리는 점이다.
필름을 태워 만든 버노그래피(burnography)는 황규태가 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의 슬라이드 현상소에서 일할 때부터 지금까지 해온 실험사진의 하나이다. 이 기법은 미술사에서 1930년대 초현실주의 화가인 라울 위박(Raoul Ubac)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위박에 따르면 필름에 열을 가하면 필름이 변형되는데 이 변형은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에 최종이미지는 초현실주의가 선호하는 우연의 미(위박의 표현대로 ‘신의 우연’)를 달성할 수 있다. 황규태는 위박의 존재를 몰랐다고 필자에게 말했다.4 자신 앞에 누가 있는 줄 모르고 새로운 사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우연히도 미술사, 사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아방가르드 실험사진의 한 기법을 발견했다. 그는 필름 태우기 기법을 초현실주의 맥락과 완전히 다르게 우주적인 묵시록(녹아 흘러내리는 태양), 인류의 재앙과 종말(지진, 원자탄 투하, 비행기 추락) 등 자신의 방식대로 다소 우울한 시선에 연결시킨다.
두 장 이상의 사진에서 필요한 부분을 오려 한 장의 사진에 붙이거나(포토몽타주), 두 장 이상의 필름을 겹쳐서 인화하는 방법(이중인화, 다중노출)은 황규태 사진에 가장 많이 나타난 기법이다. 이것의 기원 역시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사조에서 비롯되었다. 포토몽타주5 기법은 각 아방가르드 사조의 미학적 의도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사용되었다. 다다이즘은 포토몽타주를 기존 예술가치의 비판/전복의 도구로, 구축주의는 건설과 생산의 도구로,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의 표현적 도구로 사용했다. 황규태의 포토몽타주는 전반적으로 초현실주의적 경향에 가장 가깝다. 1660년대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특히 제리 율스만)에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황규태의 초기 몽타주를 보면 초현실주의 사진과 초현실주의 회화(르네 마그리트)의 특성이 뚜렷이 나타난다. 예컨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의 병치(마천루와 인간의 눈, 자동차 안의 두 눈, 대도시와 호모 에렉투스), 사물들의 크기의 역전(마천루보다 더 큰 인간의 눈, 해변에 떠 있는 거대한 입술)은 정확히 1930년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즐겨 쓰던 기법들이다.
‘사진 이후 사진’의 증거
황규태는 사진을 직접 촬영하지만 타인의 사진을 차용한 경우도 많다. 만 레이의 키키 사진(예술사진), 마더 테레사의 임종 사진(보도사진), 태아 사진(과학사진), 바닷속 태아 사진(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사진) 등, 그는 소위 예술/비예술 분야에서 나온 모든 영역의 사진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한다. 차용, 인용, 모방, 패러디 전략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기법들은 20세기 초 다다이즘의 전형적인 예술 전략이고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이 다시 사용한 것이다. 예컨대 1919년 이미 존재한 사진(모나리자 엽서사진)을 그대로 가져다 쓴 뒤샹의 전략은 차용 기법의 본보기이다. 황규태는 “나의 인용, 레디메이드 기법은 뒤샹에게서 직접 영향을 받았다”며 다다이즘에 빚지고 있음을 필자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 이처럼 아방가르드 사조에 발을 굳게 디디고 있는 그는 “[남의 사진의] 카피와 [내가 직접] 찍음의 차이를 구분함이 무의미하다”6며 자신의 ‘카피’ 전략에 대해 명확히 밝혔다.
황규태의 아방가르드 정신은 이처럼 그가 전위적인 실험기법을 채택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미술사에서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사회, 시대, 삶과 유리되지 않고 그것에 대해 항상 발언을 해왔다. 황규태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제기하고 이를 사진 이미지로 시각화했다. 환경 문제(달과 물고기 뼈, 성조기 위의 플라스틱 폐기물), 핵문제(원자탄이 떨어진 도시), 생명공학 문제(공장에서 대량 복제된 아이와 여자, 눈 코 입을 바꿀 수 있는 성형기술, 어둠 속에서 부유하는 유전자, 염기서열, 변이생명체) 등 그는 우리 시대의 키워드에 대해 줄곧 작품으로 응답해왔다.
황규태 사진은 이처럼 아방가르드적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태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아방가르드는 원래 전통적인 미학범주(아름다움, 조화, 질서, 균형)를 전복하고자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반(反)미학적이다. 하지만 황규태 사진은 철저히 ‘탐미적’이다. 그는 다른 아방가르드 작가들처럼 새로운 형식의 사진을 끊임없이 실험해왔지만 그가 진정으로 주목한 것은 사진의 실험보다도 사진이 제공하는 시각적 ‘즐거움’이다. 한 장의 사진이 내용의 관점에서 아무리 새롭고 흥미로울지라도 시각적으로 ‘와 닿지’ 않으면 그에게 큰 의미가 없다. 예컨대 과학사진/현미경사진의 코드를 이용한 그의 픽셀사진에서 핵심은 미시세계의 들춰냄(이것은 과학자의 욕망)이 아니라 미시세계의 아름다움, 그의 표현대로 ‘컬러의 하모니’7 혹은 ‘컬러의 놀이’이다. 그는 또한 루페(확대경)로 들여다 본 TV 화면에 나타난 픽셀의 현란한 색의 잔치에 감탄하기도 한다.8 세계 만국기 200여장을 섞어 놓은 <멀팅 팟>에서도 작가는 지구촌, 다문화 현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그가 더 관심을 둔 것은 만국기를 섞어놓았을 때 “예상 못했던 현란한 색들의 파편[의] 난무”9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철저한 ‘탐미적 아방가르드’ 작가라 할 수 있다.
환경문제, 인류의 종말, 우주의 묵시록 등 어두운 주제를 다룬 작품들에서도 사진 이미지 자체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이다. 단순한 형태와 두세 가지 색만을 사용한 미니멀리즘적인 경향(검정색 바탕에 녹아내리는 빨간 태양)은 우주의 종말이라는 암울한 내용과 상관없이 보는 이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이 같은 탐미적 경향은 한강을 초망원렌즈로 촬영한 다음 수많은 조각사진으로 몽타주한 <한강컬렉션>, 그리고 꽃들의 잔치를 펼쳐놓은 <꽃 시리즈>에서 더욱 강화된다. 이 작품들은 인류의 재앙을 다뤘던 동일한 작가가 제작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전위적인 동시에 탐미적인 황규태 사진은 더 나아가 ‘감성적’이기도 하다. 해변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키스하는 역광 사진에서 그는 “[당시] 나는 역광사진에 매료되었다. 개념이나 이론보다는 감성에 빠져있었다”10며 사진에 대한 자신의 정서적 태도를 밝힌다. 작가는 또한 자신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떠오르거나 지는 거대한 붉은 태양을 마주하면 걷잡을 수 없이 흥분되거나 가슴이 벅차올라 거의 카타르시스 상태에 빠진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심지어 환경유해물 생산 공장과 같은 ‘차가운’ 소재를 마주할 때도 지성보다는 감성으로 접근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생 전체가 ‘안타까움 자체’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황규태 사진에 숨어있는 복잡한 의미의 지층들을 드러내려는 작업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그의 사진들 안에는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이질적 범주들 – 과학기술, 실험정신, 미래, 전위, 암울함, 시각적 즐거움, 놀이, 장난, 그리고 감상적 태도 – 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황규태의 정체성을 규정하자면 ‘탐미적 아방가르드 작가’ 혹은 ‘유쾌한 아방가르드 작가’이지 않을까. 왜냐면 그의 사진은 언제나 즐거움, 미, 실험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주
1 황규태, 《황규태》, 열화당, 2005, p. 18
2 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 : Note sur la photographie, Gallimard, Seuil, 1980, p. 120
3 황규태, 앞의 책
4 황규태는 자신의 이 독특한 기법이 사진 역사에서 “내가 처음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규태, 앞의 책, p. 30
5 이중인화, 다중노출도 넓은 의미에서 포토몽타주에 속한다
6 황규태, 앞의 책, p. 134
7 <비트 놀이>(1999)에 대한 작가의 작품 해설
8 “나는 궁금증이 많다. 필름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는 루페로 TV화면을 들여다보니 픽셀이 질서정연한 원자 알갱이처럼 현란한 색을 이루고 있다.” <티 비 픽셀 오-화이트>(2010) 작품 해설
9 <픽셀 픽시>(2010) 작품 해설
10 황규태, 앞의 책, p. 70
황규태는 1938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사진기자(1963~1965), 미주동아일보 대표(1984~1992)를 역임했다. 1973년 프레스센터에서 첫 개인전 이후 15회 개인전을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한국민속촌미술관, 워커힐미술관, 아트선재아트센터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