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13th Donggang International Photo Festival

한국 사진축제의 가능성과 미래

산과 산 사이를 휘돌아 굽이쳐 흐르는 동강이 품은 작은 고장 영월에서 열리는 <동강국제사진제>가 13회를 맞았다. <동강사진상 수상자-구본창전>, <특별기획전-에피소드:호주 현대사진전>, <강원도사진가전-강원도에 투영된 사진예술의 진실전>을 비롯해 <포트폴리오 리뷰 수상자-김전기전>과 워크숍, 공개강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7월 18일부터 9월 21일까지 동강사진박물관과 영월군 일대에서 펼쳐진다.
작은 마을, 큰 축제의 성공적 사례로 손꼽히는 <동강국제사진전>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최연하  전시기획, 사진비평

해마다 7월 셋째 주 금요일이면 <동강국제사진제> 개막식이 강원도 영월군 동강사진박물관 앞마당에서 열린다. 영월군은 21세기가 시작된 첫해인 2001년 ‘동강사진마을’을 선포했다. 이를 계기로 2002년 <제1회 동강국제사진제>가 시작된 이래 현재에 이른다. 이처럼 <동강국제사진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축제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이 작은 마을의 사진축제는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회’와 ‘영월군’이 주체가 되어 사진예술과 지역축제의 이상적인 만남이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치 않고 해를 거듭할수록 본래 취지가 희미해지기 쉬운 상황에서 행사를 치르는 것 자체가 지난한 일이었을 텐데, <동강국제사진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지역을 넘어 한국 사진축제의 새로운 가능성과 활로를 보여주었다. 축제를 만들어내는 기획력은 보다 탄탄해졌고, 행사의 형식적인 완성도도 높아졌다. 이처럼 <동강국제사진제>가 확장된 사진미디엄을 수용하고 매체의 물질적 특성을 견고하게 구축해 내기까지 기획자들의 노력을 높이 사야겠다.
올해 동강사진축제는 주 사진가 12명의 작품을 선보인 <호주현대사진전, Episodes: Australian Photography Now>(이하 <에피소드전>)과 <강원도사진가전>, <거리설치전>, <보도사진가전>, <동강사진박물관 소장품전>, <영월군사진가전>, <평생교육원 사진전>, <포트폴리오 리뷰 수상자전>(이하 <보이지 않는 풍경Ⅱ>) 등 지역의 서사성과 한국사진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전시 테마를 설정하여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사진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주었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 받은 전시는 국제전으로 기획된 <에피소드전>과 작가 김전기의 작업으로 이뤄진 <보이지 않는 풍경Ⅱ>를 꼽을 수 있다. 이 두 전시에 반영된 역사인식은 참신했다. 실증적인 역사주의를 벗어나 현재주의적인 역사관을 미적 상상력으로 도약시켜 유쾌하나 가볍지 않고, 진지하나 과격하지 않게 형식과 사유의 변증법적 역동성이 특별했다. 리얼리즘을 근간으로 하는 사진매체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와해될 수 있을지, 이 두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밀도 높은 철학적・미학적 고뇌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에피소드전>에 참여한 호주 작가들은 거의 모든 사진적 수단을 빌려 그들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거나 상징적, 우의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호주 원주민(Aborigine)인 트레이시 모팻(Tracey Moffatt), 마이클 쿡(Michael Cook), 크리스천 톰슨(Christian Thompson), 데스티니 디콘(Destiny Deacon) 등 네 명의 ‘에피소드’는 모든 대립적 가치가 프레임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주제를 향한 높은 환기력을 보이고 있다. 영국계가 주류이지만 다양한 민족이 존재하는 호주에는 예전부터 거주하던 원주민이 있었다. 하지만 호주 정부의 원주민 탄압정책으로 애보리진들은 자신의 영토를 빼앗긴 채 강제수용당하거나 호주 내의 디아스포라가 된다. 자신들의 과거를 호주정부에 의해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 또는 ‘도둑맞은 아이들(Stolen Children)’이라고 부를 만큼 트라우마로 얼룩진 애보리진의 후예들의 작품은 이제는 희미해진 고향의 삶과 언어를 회복하려는 자의식과의 싸움처럼 보인다. 자신의 몸을 지나간 체험이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섞어내며 작업하는 것은 하나의 불가피함이다. 그러자면 지배적인 기억(dominant memory)으로부터 대항기억(counter memory)을 곧추세워 자신을 통제하고 강요해왔던 지배이데올로기를 해체해야 한다. 기억의 제도화와 다름없는 ‘역사’는 역사적 책무를 회피하려는 지배자의 담론일 뿐이다. 그러니 기억 속에서 사라진 망각의 역사, 즉 공식적이고 지배적인 기억이 아닌 대항기억의 부활에 사진은 생생한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한 번도 애보리진 역사에 대해 배운 적 없고, 오직 유럽인의 호주 정착에 대해서만 배웠다”는 마이클 쿡의 에피소드와 정부와 선교사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지식과 역사, 문화에 박식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데스티니 디콘은 ‘생김새가 다르다고 주변에서 침을 뱉고, 돌을 던졌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기억해낸다. 호주땅에 처음부터(ab origine) 있었지만 자신의 땅에서 분리(ab-)된 애보리진 작가들에게 ‘수년 전에 몇몇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작업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정신을 다시 대지로 돌려놓는 것, 예술이 그러한 이동을 가능하게 할 운송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크리스천 톰슨)은 흘러가버리고 기록된 연대기의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역사의 공간에 작가를 합류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무력화 시킨 사진의 힘
<에피소드전>의 전시장은 중심 스토리가 아닌 주변의 에피소드들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오래된 무덤에서 출토된 미이라가 묘한 영적 아우라와 함께 현재를 바라보거나(폴리제니 파파페트로), 익명의 군중은 거리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트렌트 파크). 진정한 소통이란 불가능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역설의 아포리아를 보여주는 작업(폴 나이트), 슬픔과 광기로 빚은 에로틱한 초상(폴리 볼란드), 앵글로-오스트레일리아 문화권에서 태어난 중국인으로, 이성애자들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동성애자인 윌리엄 양의 작업에서는 밝고 쓸쓸한 바람이 스친다. 중심이 아닌 주변,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의 이야기로 즐비한 것이다. 에피소드 중 압권은 트레이시 모팻과 개리 힐버그(Gary  Hillberg)가 함께 작업한 영상작품 <다른 것(Other)>이다. 영화와 텔레비전 장면들을 몽타주한 이 영상은 침략자와 원주민, 보안관과 인디언,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주인과 노예로 이분화된 대립각에서 전자의 도덕적, 지적, 문화적 우월성을 전복시키며 동일자의 표상체계 밖에 있는 타자, 상징계 너머에 있는 ‘인식’이나 ‘표상’의 대상이 아닌 ‘다른 것’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공동체 바깥에 있는 타자, 이방인으로 내몰린 호주 애보리진들은 실상 공동체의 구조에 속하면서 어떠한 타자성도 지니지 않는, 즉 공동체의 동일성을 위해 요구되는 원주민이 아니었을까.
전시장을 나와서도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김전기의 <보이지 않는 풍경Ⅱ>에서 만난 주문진의 밤바다 사진이다. 해질 녘에 촬영한 후, 똑같은 자리에서 해 진 후 다시 이중촬영한 철책너머 보이는 동해의 풍경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겨울 폭풍 후의 강릉 해안선, 실외 사격장 등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삼척까지 동해안 7번 국도의 해안선을 따라 철책선과 군사시설물을 촬영한 이 사진들에서 분단 이후, 해독되지 않는 ‘틈’으로 남아있는 권태로운 동해안을 본다. 대형카메라와 네거티브필름으로 촬영한 이 사진들의 색감은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현실의 네크워크를 해체하며 은밀한 균형상태를 보여준다. 분단 이데올로기가 사진으로 표상될 때, 그 명료한 주제의식 때문에 범상한 소재주의로 빠질 수도 있을 터인데, 김전기의 사진에서 두 개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뇌와 성찰을 포착할 수 있었다. 김전기의 가능성은 여전히 38선 이남에 머무르면서 보이지 않는 지정학적 경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
‘지금・여기’의 동시대 작가들은 사진이라는 그릇에 역사와 현실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올해 동강사진축제의 작품들을 보며 더욱 골똘하게 생각한다. 호주 작가들의 서술적이고, 자전적이고, 장식적이고 제의적인 에피소드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골짜기, 강원도의 작은 마을에서 잔잔한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 삶의 복잡성과 다층성, 문화의 다원적인 가치들 속에서 주체(중심)가 타자(주변)를 배제 않고 배려하는 흥미로운 토대를 생각해본다. 국가 간, 지역 간 문화교류 및 기획에서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지는 그윽한 차원을 그려보며, 국제전시의 타이틀이었던 ‘에피소드’ (해양과학용어 사전에 따르면 이 말은 ‘지질시대를 통하여 독특하고 뚜렷한 사건(들)을 시간의 함의 없이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가 사뭇 발본적이었음을 알아챈다. ●

강원도 출신 사진작가로 기획된  전시광경

강원도 출신 사진작가로 기획된 <강원도사진가전-강원도에 투영된 사진예술의 진실> 전시광경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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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전 <호주 현대사진-에피소드전> 공동기획자 나탈리 킹(Natale King)

“호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준다”

_MG_1809이번 <동강국제사진제>에 대한 인상은?
개막식 행사에서 누군가 말한 ‘작은 마을의 큰 축제’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일주일 정도 영월에 머물며 영월이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여름축제 가운데 <동강국제사진제>가 가장 핵심적인 행사임을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주 현대사진의 현주소를 보여주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동안 <동강국제사진제>는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사진가를 초대했는데, 이번에 호주의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12명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게 된 것에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전시 외에도 워크숍, 강의, 특별전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다는 점도 돋보였다.
주제로 내세운 ‘에피소드(episode)’는 어떤 의미인가?
영어 단어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심리적인 변화를 느낄 때의 분위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영화나 TV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순간의 장면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의 다양한 표현방식과 영역에서의 한 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나와 공동 큐레이팅을 맡은 박영미(박건희문화재단 학예실장, 사진 오른쪽)는 호주의 ‘사진/영화/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키워드로 ‘에피소드’라는 단어를 내세웠다. 이는 과거와 현재 또는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의 역사와 모호한 정치성이 공존하는 호주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다.
이번에 출품된 호주 작가의 작품은 문화적인 정체성의 혼란을 표현한 것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우 적절한 지적이다. 호주 예술가 대부분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들은 유럽인에 의해 점령되고 식민지화되고 문명화된 호주라는 특수한 장소성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그 안에 내재된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 톰슨(Christian Thompson)은 영국 옥스퍼드대에 입학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애보리진 예술가이자 사진가다. 그는 호주 원주민과 유럽인을 상징하는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한 자화상 작업을 선보인다. 이밖에도 그리스계인 폴리제니 파파페트로(Polixeni Papapetrou)는 자신의 아들에게 갈기갈기 찢어진 전투복을 입혀 호주의 풍경을 배경으로 촬영한다. 이 전투복은 원래 사냥꾼이나 군인이 위장하기 위해 입던 것인데, 이처럼 평화로운 풍경과 이질적인 캐릭터의 조합은 배경과 인물의 긴장을 부각시키며, 유럽인과 원주민이라는 이질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호주 현대사진의 특성은 무엇인가?
호주의 많은 사진가 역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사진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영역은 기술적인 창의성뿐만 아니라 인물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전통적인 사진부터 이미지 연출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내용적으로는 앞서도 말했듯이 호주라는 특수한 다문화 상황과 과거 식민지 역사의 배경과 그 영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적인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 있다고 생각된다.
인상적인 한국 사진작가의 작품은?
올해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선정된 구본창의 작품이 특히 좋았다. 풍경, 가면, 백자 시리즈 모두 매우 섬세하고 감각적이며 시적(詩的)이다. 그리고 백승우의 작품도 흥미롭다. 서울 도심과 황폐한 장소의 이미지를 표현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영월=이준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