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금민정 격.벽.
갤러리 세줄 2014.12.11~26
2층 전시장에서 상영되는 5편의 영상 속에는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여러 개의 격벽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무용수와 움직이는 격벽이 담겨 있다. <역사가 된 세트장을 위한 연출_격벽장>이 전체 구조가 부채꼴임을 알게 해주는 조감도라면, 나머지 4편의 영상은 다양한 시점에서 포착한 모습을 상하 또는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2채널로 보여준다. 영상 속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은 동이 트고 해가 지는 과정으로 보이고 이것은 작품의 제목처럼 삶과 죽음의 오래된 비유임이 짐작되며, 무용수의 안무와 따로 또 같이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벽은 삽입된 숨소리 덕분에 공간이 호흡하는 환영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명쾌한데, 왜 가슴 한 켠이 먹먹하고 찌릿해오는가. 도대체 무엇이 작품 앞에서 한참을 응시하고 머무르게 만드는가.
이 작업의 공간적 배경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복원된 격벽장이다. 이곳에서는 수감자들을 단체로 운동시키되, 상호 간에 대화를 방지하고 용이하게 감시하기위해 여러 개의 두꺼운 벽을 치고 벽 사이의 좁은 칸에 수감자들을 분리 수용했다고 한다. 사상범들의 신체를 구속할 목적으로 세워진 감옥에서 신체의 건강 유지나 증진을 목적으로 운동을 시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다는 연옥처럼 삶과 죽음의 격벽 그 사이 공간에서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경험했을, 갇혀 있고 감시 받지만 자신의 몸을 움직여 신체의 건강을 도모하는 인간의 심리적인 혼돈을 무용수의 몸짓과 견고하고 단단한 건축적 요소들의 물리적 움직임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은 더더욱 아이러니다. 그런데 바로 이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금민정의 작업을 보다 중층적이고 깊게 한다.
금민정 작가는 그동안 작품이 될 장소를 찾고, 그 장소를 소재로 영상작품을 만든 후 이를 다시 그 장소에 설치하는 장소특정적인 작업을 해왔다. 주로 무형무취의 물리적인 공간 자체를 움직이는 환영으로서의 숨에 천착했다면, 지난해 문화역서울 284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보여준 <숨쉬는 벽>을 시작으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이 보다 깊고 풍부하고 다층적인 숨을 쉬게 한다. 그 숨은 인간의 본질과 가치를 대신하는 상징이자 감정의 주체이며, 영상 속 빛은 정신적인 영의 움직임이다. 무용수가 다가오는 죽음과 갇혀 있음의 공포, 슬픔과 애통의 감정을 몸을 움직여 표현하면, 금민정은 영상 속 공간에 혼을 담는 것이다.
2층의 전시장에서 안무가, 사운드아티스트와 함께 진행한 협업의 결과물을 비디오 설치로 보여준다면, 3층의 전시장에는 10여 점의 비디오-조각을 보여준다.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부침을 겪은 대만 무역항구 탐수이(Tamsui) 지역의 역사적 장소들을 소재로 한 2~3점의 작업과 함께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를 기록한 역사책들을 서대문형무소의 벽, 계단, 문의 비디오 이미지와 조형적으로 연결시키고, 모니터 2~3대를 결합해 여옥사의 건축물과 공간을 확장했으며, 사형장 앞에 서서 한맺힌 인간사를 목도했을 <통곡의 미루나무>를 설치했다. 이 작업들을 보노라니 작가가 조각과 출신임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주객의 구분 없는 매체의 융합이 중요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비디오는 단지 시간성을 갖는 움직이는 영상이 아니라 흙이나 돌과 같은 전통적인 조각의 질료과 다를 바 없다. 질료 자체에 혼이 스며 작가는 적합한 형상을 찾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미켈란젤로처럼 말이다.
윤형주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위 금민정 <시나리오_삶과 죽음의 미네르바>(오른쪽) 비디오 설치 가변크기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