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차승언 아그네스와 승환스

살롱드에이치 2014.11.27~2014.12.23

줄 매기의 달인 차승언이 작정하고 직조기에 앉았다. 대학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통해 회화와 설치작업으로 변화를 시도한 차승언은 귀국 이후 2011년 첫 개인전에서 설치와 퍼포먼스, 비디오 등의 작업을 선보였다. 이때 작업의 주제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살아가는 태도 등에 대한 성찰을 투명 줄이나 검은 실 등으로 가시화하는 것이었다. 이후 2012년 무렵부터 장르적으로는 복고적이며, 양식적으로는 과거 회귀적인 직조 작업을 다시 시도하고 있다.
섬유미술 전공자로서 늦깎이 미국 유학을 통해 애써 섬유공예의 장르에서 벗어났다면,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섬유예술의 작업 방식 중 하나인 직조기를 다시 등장시킨 차승언은 어쩌면 스스로 벗어나고자 했던 것, 스스로 거부하고자 했던 것을 다시 돌이켜 보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더욱이 이번 개인전에는 희미한 미색 실을 베틀에 걸어 몇 가지 패턴으로 직조해낸 천을 규격 캔버스 틀에 메운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는데,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20세기 추상회화의 전형적인 외형을 닮았기에, 그의 의도가 20세기 미술사의 주요 전제였던 회화와 공예, 공예와 회화의 구분을 되새기는 데 집중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직조기로 짜낸 작품은 전체적으로 회화의 지지체 그 자체를 상기시키는 백색 캔버스를 닮았으며, 직조 과정에 사용된 짙은 톤의 염색사는 캔버스 틀을 거울처럼 반사함으로써 직조로 반추한 회화의 의미, 패턴으로 되새긴 평면의 의미를 거듭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캔버스 틀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형태로 직조된 캔버스 천은 어느 순간 날실만 남기고 배경의 틀을 드러내기도 하고, 이면의 뼈대를 드러낸 날실은 서로 엇갈려 꼬이기도, 연속된 캔버스 사이에 포물선을 그리며 드리워지기도 한다. 또한 직조된 천 위에 기하학적 형태를 채색으로 부과하는 방법으로 차승언은 회화와 섬유공예, 시각적 이미지와 촉각적 실체, 그리기와 짜기, 이미지와 패턴, 칠하기와 염색하기, 이념과 물질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반추하고 있다.
상반되지만 함께 하는 의미는 전시 제목에도 드러난다. ‘아그네스와 승환스’에서 ‘아그네스’는 차승언이 그렇게 불러내어 되새기는 추상미술의 정점, 즉 미니멀리즘 시기 미국의 여성 추상미술가 아그네스 마틴에 대한 오마주이며, ‘승환스’는 작가의 주변 사람들, 즉 ‘승언’이 삶을 이어가고 관계를 형성하는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의미하는데, 이는 다시 말하여 차승언의 삶을 구성하는 작업과 생활, 예술과 신앙의 문제를 대유법적으로 지칭한 것이다.
서구에서 발원한 모더니즘의 시대에 추상은 새로운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혁신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러한 신화를 믿지 못하는 21세기에 추상은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폐기된 추상의 미학을 반복적인 직조기법으로 되뇌는 차승언은 아무런 혁신도 미래도 논할 수 없는 상실의 시대에 비록 불발에 그쳐버렸을지라도 과거의 이상을 다시 불러내야 하지 않냐고 묻는 것 같다. 순수 미학이 애써 떨쳐버리려 했던 장식과 공예의 기법으로 완고하게 소환해낸 추상의 미학은 다시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 무엇인가를 지향해야 하지 않냐고 묻는다. 차분하지만 단호한 직조의 방법으로 부활한 캔버스 평면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추상의 미학을 다시 생각한다.
권영진 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