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Curator’s Voice & Critique

《그린다는 건 말야: 장-마리 해슬리》
《이희경: Desir Angin 바람의 속삭임》
《일렉트릭 쇼크》
《니키타 게일 : 99개의 꿈》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

유진상·이문정·김소정·정소영·노재민

Curator’s Voice & Critique

《그린다는 건 말야: 장-마리 해슬리》
성곡미술관 2025.12.16~1.18
유진상 계원예대 교수

《그린다는 건 말야: 장-마리 해슬리》성곡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장-마리 해슬리: 작품의 몸

장-마리 해슬리는 1939년 프랑스 알자스의 광산 지역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미술을 배운 뒤 경력의 대부분을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쌓고 활동한 화가다. 이 화가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성곡미술관에서 열렸다. 2024년에 85세로 작고한 해슬리의 작품들은 미니멀리즘에서 팝아트, 추상표현주의에서 개념미술, 설치미술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르들을 섭렵하고 있으며, 특히 그가 작품을 봤거나 교유했던 많은 현대 회화의 영향과 흔적을 담고 있다. 이 독특한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의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로 읽힐까? 무엇보다도 회화를 감상하는 관객과 젊은 작가들에게 해슬리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읽힐까 하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우선 필자에게는 이 전시가 세 가지 방향으로 읽힌다. 첫 번째는 20세기 회화가 급진적인 변화를 보이던 전후 현대미술, 즉 1950년대 이후 반세기의 역사를 파리와 뉴욕이라는 주요 무대에서 살았던 한 화가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 전시가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고뇌하고, 자신의 열정을 투사하고,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는 그 전 과정을 마치 주마등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특기해야 할 점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세 번째 관전 포인트가 핵심이 된다는 사실이다. 장-마리 해슬리는 한 작가에게 있어 작품세계, 즉 예술적 세계관과 그 몸체(body)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예시를 제공한다.

장-마리 해슬리의 삶을 살펴보면, 그가 자수성가형 인간일 뿐 아니라 소설로 다루어도 될 만큼 예외적인 운명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살부터 탄광에서 일해야 했던 그는 그로 인해 18세에 신장질환을 얻어 일 년간 병상에서 지낼 정도로 고된 초년을 보냈다. 이때 형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 『반 고흐의 생애』(1957)를 읽고 화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19세에 광산 일을 면제받고 대신 광산용 기계 제도 견습공이 된 그는 다시 20세에 군에 징집되어 알제리로 보내진다. 이 시기에 그는 어떤 연유로 뮌헨에 갈 기회가 있었고 거기서 반 고흐를 위시한 많은 작가들의 그림 원화들을 보게 된다. 25세인 1964년에 비로소 파리로 가서 화가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초기에 아카데미 그랑쇼미에르(l’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와 에콜데보자르(l’Ecole des Beaux-arts) 등에서 드로잉 수업에 참가하게 된다. 이렇게 초년의 삶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가 얼마나 힘든 배경에서 출발하여 화가의 꿈을 키운 인물인지를 아는 것이 그가 평생 동안 부딪힐 현대 회화의 놀랍고도 지난했을 미술사적 여정을 짐작게 하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장 뒤뷔페와 자코메티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이때부터 추상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염소자리 I〉캔버스에 유채 194.5×235.3cm 1984~1988
제공:성곡미술관

27세에 만난 뉴욕 출신의 루시엔 와인버거와 이듬해 결혼한 그는 곧 부인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한다. 뉴욕의 건축사무실, 방송국, 신문사 등에서 설계, 삽화, 포스터 등을 제작하면서 그는 밥 딜런과 같은 연예인들과 일하거나 베르나르 브네와 같은 작가들과 교유하기 시작했다. 29세에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연 해슬리의 삶은 이때부터 수많은 여행과 소호에서의 창작과 전시로 이어진다. 그는 유명작가들을 이웃으로 두었으며 칼 앙드레, 한스 하케, 도날드 저드, 백남준, 아르망, 장-미셸 바스키아, 루이즈 부르주아 등과 친분을 쌓았다. 1978년에는 〈Rain Forest〉라는 설치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해슬리는 1950년대의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1960년대 뉴욕의 팝아트와 옵티컬 아트, 1970년대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1980년대 신표현주의와 트랜스 아방가르드의 회화적 광풍을 거쳐 1990년대 회화의 몰락과 2000년대 이후의 새로운 회화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숱한 회화사적 격변들을 한복판에서 목격한다.

그는 각각의 시기마다 자신의 회화에 대해 회의하고 의심했으며, 새로운 흐름과 영향을 수용했다. 2022년 전북도립미술관에서의 전시에 이어 이번 서울 전시에서도 그가 얼마나 다양한 회화적 관점들을 거쳐 왔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회화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950년대 말 초기에 반 고흐의 스타일을 따라 하면서 회화를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뒤뷔페를 떠올리는 〈우상 II〉나 〈새벽달〉과 같은 작품들과 좀 더 추상표현주의적인 ‘변주’ 연작과 같은 작품들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를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고민했는지를 알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직선을 중심으로 화면을 분할하거나 변형 캔버스를 사용하는 기하학적이고 정적인 ‘선’ 연작들이 나타난다.

1980년대에 이르면, 격정적인 제스추얼 페인팅으로 변화하면서 붓과 물감의 물성이 강조된 전형적인 추상표현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1990년대인데, 이전의 모든 회화적 장치들 대신 그는 지그마르 폴케를 연상시키는 19세기 이전의 판화적 모티프들을 인용하면서 적극적으로 인체와 서사가 강조된 팝아트 스타일이 묻어나는 연작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이르면, 그는 다시 추상표현주의로 완전히 돌아온다. 실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이 시기의 그림들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여명의 숲〉, 〈폭풍 전야〉와 같은 작품들이 보여주는 회화적 완성도는 뛰어나다. 주로 풍경을 다루고 있는 이 시기의 작품에서도 물감과 붓질이 강조된 그림들과 그보다 질감을 강조하는 〈들판〉과 같은 그림들 혹은 ‘그랑 블루’ 연작과 같은 그림들이 혼재되어 있다. 말년에 그는 다시 입자화된 터치들로 화면을 채운 회화들과 넓은 색채의 얼룩들로 덮여있는 작품들을 동시에 그려나갔다.

전시는 이 노화가의 평생의 작업을 세 부분으로 나눠서 보여준다. 1부 ‘삶을 건너 예술’에서는 청년 시절의 해슬리가 반 고흐에게서 영향을 받아 화가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광산 장비 설계 도제 훈련을 받은 것이 그에게 커다란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부분도 강조하고 있다. 2부 ‘별들의 전령’에서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뒤뷔페, 자코메티, 코브라 그룹 등에서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회화적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우주’ 연작을 통해 본격적으로 회화적 질감과 붓질을 강조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3부 ‘다시, 인간’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1990년대의 소위 ‘알파벳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연작을 선보인다. 그러고는 2000년대에 이르러 다시 추상표현주의적 회화로 회귀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전시에는 85세에 작고한 한 작가의 평생의 작업을 다루기에는 다소 압축된 전시임에도 비교적 주요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작품의 제목처럼 이 전시는 한 화가의 회화적 여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이희경: Desir Angin 바람의 속삭임》
아트센터예술의시간 2025.11.29~1.10
이문정 기자

〈세상의 물(Air Dunia)〉(사진 왼쪽) 인화 사진, 흙, 향신료, 액추에이터, 가판대 가변 크기 2025
〈국제주의자의 열쇠〉(사진 오른쪽) 2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36분 17초 2025

“가봐야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 알게 돼”1

이희경의 개인전 《Desir Angin 바람의 속삭임》(2025)은 명확한 메시지를 제시한다고 읽히는 첫인상과 달리, 끝없이 분절되고 확장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서사를 전한다. 작가는 여성 그리고 인간, 권력과 이데올로기, 제국주의, 국제주의, 자본주의, 노동, 이주, 민족성, 스테레오 타입 등 첨예하고 묵직한 주제들을 가로지르며 관계를 엮어낸다. 잘 알려졌지만 가려진, 익숙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리서치와 현장 답사, 작가적 상상력이 필요했다. 역사적 사건들과 전승되어 온 설화, 실재하는 현재와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허구적 미래의 이야기는 서로를 지탱하며 다층적 의미를 생성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2채널 비디오 작품 〈국제주의자의 열쇠〉(2025)는 선형적이면서도 비선형적인 서사로 관객을 맞이한다. 백인 남성 ‘미스터 코스모폴리탄(Mr. Cosmopolitan)’은 인도네시아 구눙파당 요새(Pilboks gunung padang) 앞에서 만난, 음료를 파는 인도네시아 여성 ‘A’에게 물값 대신 국제주의자의 열쇠에 관해 말해준다. 그는 역사 속에서 권력을 쥔 채 평화를 위한 희생을 논한다. 하지만 예상대로 미스터 코스모폴리탄은 숭고한 희생의 주체가 아니다. 한편, 용기를 내 동굴을 통과하는 A는 큰 뱀과 영웅의 이야기인 제주 김녕사굴 설화를 들려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희생이 아니라 “영웅이 될 생각에 취해” 무고한 뱀을 죽이고 관계를 허물어버린, 규칙을 어겨 자신도 허무하게 죽어버린 영웅이다. 뱀처럼 희생당한 여성들을 기억하며 A는 이동한다. 그리고 읊조린다. “용기를 내보자. 가봐야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 알게 돼. 살아보는 게 내가 책임지는 방식이야.”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미스터 코스모폴리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만든 지하군사시설인 인도네시아 부키팅기 동굴(Lobang Jepang) 앞에서 다시 만난 A에게 열쇠 이야기를 한 번 더 꺼낸다.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을 설파하는 그는 마치 망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에 A는 자신이 한국(제주)에서 그 열쇠를 사용한 뒤 그곳에 놓고 왔다고 답한다. 그녀에게 열쇠는 영웅만의 소유물이 아니며 집착의 대상도 아니다. 이제 여성은 자기의 경험과 생각을 말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그녀의 경험은 과잉의 감정을 생산하지 않으며 신화적 장치 없이 전파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면서 세상을 지키는 선한 영웅은 존재할 수 없다. A는 폭력의 역사가 일어났던 장소를 점유했고, 열쇠를 소유했지만 독점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언제든 떠날 수 있다. 그렇게 약탈과 은폐의 장소였던 동굴(터널)은 생존과 성장을 위한 통로이자 서로 다른 시공간을 이어주는 장치로 전환된다. 전시장의 벽면은 동굴 주변을 촬영한 사진, 동굴 지층의 표면과 동굴에 자생하는 식물을 탁본해 인쇄한 결과물 등으로 채워져 있어, 공간을 하나의 동굴 혹은 통로로 느껴지게 하고 서사의 몰입도를 높인다. –〈밤이 걸어간다.〉(2025)와 〈밤이 걸어간다. 2〉(2025)–

이희경은 A의 목소리를 빌려 여성의 역사를 되새긴다. 여성들과 세상의 이야기, 지혜를 나누었던 김녕사굴 설화 속 뱀은 여성을 잡아먹는 괴물로, 여성들과 모여 공부하고 노래를 부른 A의 할머니는 마녀로 왜곡되었다. 그러나 동굴은 죽음뿐 아니라 재생의 공간이다. 대지의 어머니, 여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우로보로스(Uroborus)를 비롯한 뱀은 죄의 상징이기에 앞서 지상과 지하를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 삶과 죽음의 영역을 오가는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또한 재생, 부활의 의미를 전해 왔다. 뱀이 죽고 여성들이 떠난 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동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A는 동굴 안에서 잊혔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간다. 그녀의 음성은 복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이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동굴을 통과한 A는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통과제의를 거친, 반응하고 변화하는 과정 중의 주체다. 빛이 사라진 어둠 속, 혹은 사회적 통념과 위계가 사라진 공간에서 성장의 시간을 견딘 존재이기도 하다

〈밤이 걸어간다.〉(사진 뒤) 유포지, PVC, UV 프린트, 사운드 가변 크기 2025
《이희경: Desir Angin 바람의 속삭임》아트센터예술의시간 전시 전경 2025
사진: 송호철 제공: 이희경

한편 〈세상의 물(Air Dunia)〉(2025)은 영상에 등장하는 A가 떼 보똘(Teh Botol)2을 판매하던 가판대를 옮겨놓은 것으로 작가가 작업을 위해 답사하며 촬영했던 사진들, 각종 차, 작은 돌과 식물, 열매, 캄보자(Kamboja) 꽃 등이 정돈되어 있다. 그 옆에는 흙더미와 미스터 코스모폴리탄에게서 건네받은 지도가 있는데 이는 A가 이동한 땅들과 연결된다. 나란히 놓인 액추에이터의 가느다란 풀은 이주 여성들의 반복적인 노동처럼 되풀이되는 움직임을 수행한다.3 〈세상의 물〉은 자본주의 논리에서도 지속되는 대상화와 위계를 드러낸다.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가려진 과거의 이데올로기들은 여전히 작동한다. 가판대와 흙더미를 마주한 순간, 역사가 상품화된 상황과 여전히 존재하는 타자, 이동하며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여성이 겹쳐 보인다. 그러고 보니 흙더미는 진보라는 명목하에 구획되고 파헤쳐진 타자의 영역 같다. 그러나 정반대로 지치지 않는 움직임은 생과 숨의 기운을 전한다.

이주하는 여성들의 상황이 안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희경은 상흔이 쌓인 동굴을 기회로 삼아서 나아가는 여성들처럼, 생계를 위해 자본의 경로를 따라 이주하는 여성들도 삶의 영역을 재점유하고 의미를 생성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4 이동하는 주체(nomad)는 고착된 질서와 규범에서 벗어나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다. 생각과 경험, 지식 그리고 관계를 추구하는 이 주체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한 과정에서 끝없이 항로를 변경하는 자유를 가진다. 타인을 환대하지만, 삶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고난을 극복한다. 이들은 관계를 중요시하고 함께 나누는 존재이다.5 “숨겨진 불씨”는 “작은 바람에도 다시” 타오른다. A를 비롯한 이주-이동하는 그녀들은 용기를 내어 “동굴의 끝에서 다른 동굴의 시작으로”, “낯선 미래를 향해” 걸어간다.

1 이희경의 〈국제주의자의 열쇠〉(2025)에 등장하는 대사
2 인도네시아국민이즐겨마시는재스민차.편집자주
3 작가와의인터뷰(2026.1.9)
4 위의인터뷰
5 자크아탈리지음편혜원,정혜원옮김『21세기사전』 중앙M&B1999pp.231~23


《일렉트릭 쇼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5.12.4~3.22
김소정 기자

〈롤라 롤즈〉(사진 가운데)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0분 2초 2024,
〈svg.vj〉 바이닐 필름, 3채널 영상, 컬러, 무음 가변 크기 반복재생
2025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전도신체(傳導身體)

밤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어둡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깜깜하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21세기에 누군가 깜깜한 밤을 경험한다면, 이는 그의 일상에 물리적·심리적 오류가 생겼거나 변수가 가해진 경우일 공산이 크다. 인간이 1800년대 초 처음으로 ‘인공 불’을 지핀 이래, 전기 에너지는 어둠을 밝히고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가사를 분담하며 편리함을 위시해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어느새 일몰 무렵 가로등이 켜지듯 혹은 빨간색 신호등이 으레 녹색으로 바뀌듯 현대 사회의 질서를 가동하고 가시화하는 삶의 필요조건이 되었다.

《일렉트릭 쇼크》는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기의 중요성이 가속의 힘을 받다가 급기야 경제가 되고, 무기가 되고, 패권이 되는 시대. 이 전시는 상황극을 연출하듯 전기 공급이 중단된 사건의 전후 상황을 가정하여 관람자의 상상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세상에서 전기가 없어진다면?”과 같은 가정이 아니라, 전기의 확산만큼이나 빠르게 먼 길을 달려온 기술 문명의 실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자는 제안이며 포스트휴먼의 조건을 드러내는 시도에 가깝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세 대의 침대 옆으로 원탁과 VR 헤드셋이 각각 놓여있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금발의 가발이 부착된 헤드셋을 끼면 교각들의 〈밤보다 무서운 밤〉(2025)이 시작된다. 금발 머리에 흰 원피스를 입은 미소녀 캐릭터 ‘티(TEE)’들이 잠옷 파티를 하는 밤이다. 그는 관람자에게 자신이 방전되지 않도록 충전하는 법을 알려준 후 즐겁게 춤을 추는데, 가끔 전력량의 부족으로 세상이 어두워질 때마다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보는 이에게 ‘무서운 밤’을 선사한다. 이때 헤드셋을 낀 채로 손가락을 들어 이 가상의 캐릭터를 쿡쿡 찔러야만 전류가 흐르고 충전이 되어 파티가 계속된다. 현실의 제스처가 가상의 스토리를 작동시키는 이 심란한 MR(mixed reality)은 결국 복수의 ‘티’가 붉은 가상공간에 갇힌 뒤 영원한 잠에 빠지는 것으로 종결된다. 작품이 기이한 이유는 바로 캐릭터가 우리를 닮아서인데, 내가 앉아있는 침대 시트를 장식한 흰 레이스가 티의 흰 원피스 레이스 장식과 같다거나, 그와 내가 둘 다 풍성한 금발 머리를 하고 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소문만 무성한 밤”이자 “소문이 다인 밤”이라고 외치는 캐릭터의 음산한 기계음이 내게는 다음과 같이 들렸기 때문이다. “전기가 부족하다는 소문을 들었어? 전기가 사라지면 네 세상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야.”

그렇지만 기술시대에 실제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전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문명의 기초를 다진 언어의 종류로, 그중에서도 소수 언어의 멸종 현상은 세계 패권 다툼에 진입하지 못한 작은 불이 어떻게 사그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척도 중 하나다. 김우진은 〈유령과 바다, 그리고 뫼비우스〉(2022)에서 이를 “불이 꺼진 세계”라고 표현하며 “불을 켜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현대 기술의 편향성을 지적한다. 작품 속에서 유령은 언어가 사라진 한 마을의 폐가를 배회하며 탄식과 경고 사이를 오가는 내러티브를 구상한다. 전력의 안정적 공급으로 이룩된 디지털 세계는 흔히 자원이 풍성한 바다에 비유되곤 하는데, 영상 속에서 유연히 흐르고, 잠기고, 떠다니는 유령의 움직임은 데이터의 무질서한 항해를 연상케 하는 동시에 언어가 사라져버림으로써 방향감각을 함께 상실한 그의 막막함을 전한다. 이렇듯 기술은 선진, 진보, 효율의 논리를 구축하기 위해 획일성의 경제학을 제시해 왔는데, 송예환은 〈전기의 소수자들〉(2025)을 통해 그러한 획일성마저도 공정하게 향유되지 않는 현실적 문제를 폭로한다. 작가는 직렬식 조명과 충전식 전지를 함께 배치하여 전력 공급망의 취약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모두 공짜라고 여기는 인터넷은 자유롭게, 그리고 값싸게 전기를 쓸 수 있을 때만 유효하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그는 태양전지를 부착한 옷을 착용하고 거리를 배회함으로써 이 ‘공평’한 자원을 끌어오고자 애쓰지만,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량은 작가의 퍼포먼스 영상을 재생하기에도 부족하다. 그의 퍼포먼스뿐만이 아니라 미디어아트라는 특정 예술 매체의 불/가능한 생존은 전기라는 단 하나의 자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전시를 기획하며 참여 작가를 미디어 아티스트로만 구성한 배경에는 이러한 재난적 상황을 가능성의 시험대로 타진하려는 기획자의 의도가 깔려있다.

약 9m 높이의 전시장 한 벽을 온전히 채운 박예나의 〈오시아 오르간〉(2025)은 그 규모에서나 작동 원리에서 그와 같은 의도 혹은 욕망의 발현이다. 파이프, 환기구 등의 건축 구조물을 외벽에 노출시킨 듯한 모양의 장치는 인간의 움직임을 통해 작동하는 “종말 이후의” 기계다. 전기가 사라진 세계에서 유일한 에너지원이 되는 인간은 움직임과 열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하고 이것이 어떤 데이터를 축적해 나간다는 시나리오에 기반한 것이다. 실제 작품 주변으로 센서가 설치되어 있어 관객이 특정 구역을 지나가거나 특정 부위에 손을 접촉하는 물리적 행위로 작품의 데이터 수집 기능이 개시된다.

교각들 〈밤보다 무서운 밤〉인터렉티브 MR, 싱글 플레이 가변 설치 2025 서울시립미술관 제작 지원
《일렉트릭 쇼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홍철기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한편 인간을 기계화하는 물리적 변모 과정을 보여주는 업체의 〈롤라 롤즈〉(2024)는 〈오시아 오르간〉이 제공하는 인간적인 차원을 처음부터 배제한 접근을 보여준다. 영상의 배경은 동일하게 에너지가 고갈된 어느 미래인데, 여기서의 인류는 스스로 기계가 되고자 결심한 것이 다르다. 이들이 처음부터 이토록 급진적인 방법을 채택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인간 몸에 기계를 접목한 ‘롤라(ROLA)’라는 신인류를 만들어냈고, 그 성능과 효능이 우수해지자 ‘그렇다면 왜 인간으로 남아야 하는가?’의 고민이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작가는 검은색을 칠한 외벽의 위아래 틈새로 현란한 조명이 흘러나오도록 연출한〈svg.vj〉(2025)를 함께 설치하여 ‘저 안에서 불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조성했는데, 실제로 영상을 감상하기 위해 들어간 방에서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롤라가 인간을 자기처럼 만들고 있는 끔찍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니 롤라는 어떤 면에서 이미 인간을 훨씬 앞선 존재였다. 그는 신체가 개조되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는 ‘R’을 달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며 앞으로 그가 경험하게 될 일들을 알려줬고, 그들의 대화를 들은 나는 ‘R’의 미래가 마치 깜깜한 밤, 21세기에 경험하기 드물다는 그 어두운 밤 속에 놓이게 됐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어쩌면 인류는 스스로 전기기반 생명체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야 할 기로에 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일렉트릭 쇼크》는 “‘전기’에 관한 보고서”라기보다, 전기가 없을 때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질문지에 근접한 전시다. 끊임없이 전기를 충전해주어야만 ‘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인간은 기계와 무엇이 다른가? 전기를 먹고 자란 인류는 결국 무엇이 되어 있을까? 전시가 던진 질문들은 기술 문명의 가치를 되물으며 영원히 유보될 문제를 길어 올린다.


《니키타 게일 : 99개의 꿈》
바라캇 컨템포러리 2025.11.5~1.25
정소영 기자

 〈99개의 꿈〉찻주전자, 쑥, 전기 주전자, 핫플레이트, 전원 및 LED 조명시스템 가변 크기 가변 시간 2025
조명 디자인: 조세핀 왕

부재가 남긴 흔적들

니키타 게일(Nikita Gale)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부재’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부재는 ‘없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선택된 침묵이며 가시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의 규범적 틀에 대한 윤리적 거부로 해석된다.

필자가 게일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때는 2023년 타이베이비엔날레에서다. 출품작 〈Private Dancer〉(2020)는 대중문화와 권력 구조가 신체를 어떻게 규정하고 통제하는지, 금속 바리케이드와 조명 트러스 같은 강고한 소재를 통해 ‘제도적 인프라’를 표현했다. 2024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 그에게 벅스바움상(Bucksbaum Award)을 안겨준 〈Tempo Rubato (Stolen Time)〉(2024)는 연주자 없는 피아노의 기계 소음을 통해 노동과 소유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이번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는 국내 첫 개인전 《99개의 꿈》에서 게일은 외부의 사회적 구조에서 인간의 가장 내밀한 심연인 ‘꿈’과 ‘무의식’의 영역으로 시선을 넓혔다.

99개의 꿈
이번 전시는 작가가 수년간 기록해 온 ‘드림 저널’에서 추출한 99개의 문장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꿈의 비전을 물리적 공간에 물질화한 시도다. 여기서 숫자 ‘99’는 완결성과 질서의 상징인 ‘100’에서 하나가 모자란 상태, 즉 체계에 포섭되지 않은 열린 틈이자 무의식의 지점을 상징한다.

전시는 지상층의 포토그램 시리즈 〈꿈 5〉(2025), 〈꿈 7〉(2025)으로 시작된다. 카메라 없이 빛과 사물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만들어진 포토그램은 매체의 경계를 흐리며 무의식의 파편이 시각화되는 찰나를 포착한다. 인류학을 전공한 작가의 배경에서 유추하듯, 사물의 배치는 고고학적 유물과 같이 흔적으로 증언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포토그램 속 찻주전자는 일상의 도구라기보다 뒤틀린 기억과 노동, 도피와 회복의 은유로 작동하며 관객을 지하의 현장으로 유인하는 지표가 된다.

게일은 이전 전시 《Blur Ballad》(2023)에서 자신의 난시 경험을 시각 교정 규범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한 바 있다. 이번 전시의 포토그램 역시 명료한 재현보다는 빛에 의한 ‘흔적’에 집중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고정된 관찰자가 아닌 감각을 따라가는 고고학적 탐험가가 될 것을 요청한다.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관객은 99개의 찻주전자가 조명과 결합된 거대한 몰입형 무대를 마주하게 된다. 이번 한국 전시에서 게일은 ‘쑥’이라는 동양적인 향과 재료를 도입해 공간을 재구성한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퍼포머의 육체가 아닌 쑥을 끓이는 찻주전자에서의 내뿜는 수증기와 물 끓는 소리 그리고 이를 투과하는 붉은 조명이다. 쑥 내음이 섞인 증기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시네마틱한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서사나 퍼포머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은 채 빛과 시간의 흐름만으로 장면을 구성한다. 이때 무대의 중심이 되어야 할 주체는 사라지고 무엇이 예술로 인식되고 어떤 조건이 가치의 기준으로 작동하는지를 묻는 구조만이 전면에 남는다. 이러한 방식은 게일이 첫 라이브 퍼포먼스 〈Other Seasons〉(2023)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기후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세계의 은유로 재해석하며 연주자보다 대기와 환경 자체를 조각적 요소로 다뤘던 시도와 맥락을 같이한다. 〈99개의 꿈〉에서 수증기는 고정된 형태를 거부하는 추상적 매질로서 응시와 권력의 구조에 균열을 낸다. 그는 “가시성의 부재는 때로 존재보다 더 위협적이고 흥미로운 입장”1 이라고 말한다. 99개의 주전자 중 실제로 증기를 내뿜는 것은 단 3개뿐이며 나머지 96개의 주전자는 쑥을 품은 채 침묵한다. 이 불균형한 배치는 퍼포먼스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와 노동의 구조를 폭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스펙터클한 무대의 소비자가 아닌 권력 구조의 직면자가 되게 한다.

왼쪽〈꿈 7〉(사진 왼쪽) 컬러 포토그램 40×50cm 2025, 〈꿈 5〉 (사진 오른쪽) 컬러 포토그램 40×50cm 2025
오른쪽 《니키타 게일: 99개의 꿈》 바라캇 컨템포러리 전시 전경 2025
사진: 전병철 제공: 바라캇 컨템포러리

가시성 너머의 리듬
니키타 게일의 《99개의 꿈》은 찻주전자라는 레디메이드 오브제와 수증기라는 일시적 매질을 통해 어쩌면 가장 물리적인 방식으로 ‘꿈’이라는 비물질적 환상을 구현해낸다. 전시는 조명을 통해 사라지려는 수증기를 잠시 붙들지만 그것은 끝내 증발과 해체를 향해 나아간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일관되게 던지는 “누가 무대 위에 서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무대 자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으로 나아간다. 완결되지 않은 99개의 꿈은 무엇이 예술로 규정되고 무엇이 배제되는지, 무엇이 규범이자 통제이며, 무엇이 정답으로 승인되는지를 가르는 기준 자체를 흔든다. 관객은 이 예측 불가능한 리듬 속에서 작품을 ‘해석’하기보다 자신의 신체와 감각으로 그 경계를 더듬으며 고정된 판단과 위계로 조직된 가시성의 질서 바깥에서 사유하는 새로운 경험의 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1 바라캇 컨팀포러리 《99개의 꿈》 보도자료 중 작가의 말 인용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5.10.2~3.8
노재민 기자

3부《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전시 전경 2025

느슨한 연대의 초상: 모던아트협회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은 한국 현대미술이 독자적 모더니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됐던 모던아트협회를 다시 현재로 불러낸다. 1957년 정부 주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이른바 국전의 보수적인 성향에 문제의식을 느낀 중견 작가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이 단체는 박고석 유영국 이규상 한묵 황염수를 주축으로 김경 문신 임완규 정규 정점식 천경자가 더해지며 총 11인의 작가가 여섯 차례의 회원전을 이어갔다. 이들은 특정한 사조를 내세우기보다는 현대회화의 문제를 각자의 언어로 실험했다.

전시는 그들의 연대를 모던아트협회 이전, 활동기, 이후라는 세 개의 시간대로 나누어 조망한다. 이는 단체의 결성 이전부터 해산 이후까지를 연속선상에서 조망하려는 방식으로, 협회를 하나의 사건으로 고립시키기보다는 작가 개개인의 삶과 작업 속에 위치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1부 ‘살며, 그리며 모던아트협회 이전’은 전쟁 직후 부산 피란 시절을 포함한 전후의 삶과 초기 작업을 소개하는데, 훗날 모던아트협회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될 연대가 어떤 현실적 기반 위에서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2부 ‘열린 연대-모던아트협회 1957–1960’은 협회 활동 시기의 작품과 아카이브가 배치되며, 당시 신문 비평과
전시 도판을 바탕으로 출품작을 재구성한 조사 과정이 제시된다. 황염수의 〈나무〉(1950년대)가 유족 소장 자료사진을 통해 《제5회 모던아트협회전》 출품작으로 확인된 사례는, 이번 전시가 단순한 회고를 넘어 연구와 복원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3부 ‘서로의 길-모던아트협회 1957-1960’은 단체 해산 이후 각자의 노선으로 흩어진 작가들의 행보를 드러낸다. 유영국의 〈새벽〉(1966), 박고석의 〈도봉산〉(1977), 정규의 〈북한산〉(1969) 등이 이어지고, 천경자의 〈환(歡)〉(1962)과 모던아트협회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동아일보 회고문이 같이 제시되는데, 가난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과 낭만을 놓지 않았던 그 시절의 정서를 전한다.

이러한 구성은 자연스럽게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모던아트협회는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혹은 ‘그 영향은 실제로 존재했는가?’와 같은 물음이다.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들 사이의 영향 관계가 명확한 계보로 드러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기획의 한계라기보다는 모던아트협회 자체의 성격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강한 선언이나 통일된 양식을 공유한 집단이 아니었다. 국전의 아카데미즘이나 앵포르멜의 급진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지만, 이를 하나의 대안적 양식으로 정식화하지는 않았다.

왼쪽 전시 도입부는 아카이브 사진을 기반으로 AI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김시헌의 영상 작업〈전위의 온기〉로 시작한다
오른쪽 모던아트협회 전시 포스터 및 리플릿을 포함한 아카이브

오히려 현대회화의 문제를 각자의 언어로 고민하는 느슨한 연대 자체에 의의를 두었다. 구상과 추상, 표현과 구조, 서정과 실험이 혼재된 상태로 공존하는 화면들은 그 개방성을 증명하는 동시에,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당대의 비판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2017년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은 전시 《모던아트협회: 아방가르드를 꽃피우다!》를 개최하며, “새로움으로 가득한 오늘의 미술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으로 본 ‘모던아트협회’ 회원들의 작품들은 더 이상 전위적이지 않을 것이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유효한 지적에도 미술관은 왜 다시 모던아트협회를 소환하는가.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은 모던아트협회를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후 단색화와 민중미술로 이어지는 흐름의 전사(前史)로 위치시키지만, 이러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전시가 설득력을 획득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전시 제목인 ‘조우(遭遇)’는 이들의 거대한 미학적 합의나 선언이 아니라, 전후의 궁핍한 현실 속에서 작가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마주쳤던 순간을 가리킨다. 실제로 전시를 관람한 후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개별 양식의 새로움보다 작가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구축했던 포용성과 개방성이다. 부산 피란지에서 시작된 교류가 서울 정릉의 살롱으로 이어지고, 대구의 정점식과 마산의 문신이 합류하며 지역을 가로지르는 결속이 형성됐다는 사실은, 모던아트협회가 단지 미학적 실험 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네트워크였음을 보여준다. 전시장에 부착된 천경자의 회고1 는 이러한 따뜻한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작업을 이어갔던 동료애는 오늘의 관람객에게 예술을 둘러싼 우리의 태도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효진 학예연구사는 모던아트협회의 특징을 “포용성과 개방성”으로 규정하며, “특정한 양식을 강제하지 않고 구상과 추상, 표현주의와 절대 추상을 모두 아우르는 스펙트럼을 허용했기에, 결과적으로 각 작가의 개성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토양이 마련됐다”고 설명한다. 전시는 모던아트협회를 하나의 정리된 역사로 닫기보다 전후의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발견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실험을 지속했던 작가들의 관계를 드러낸다. 오늘 우리가 다시 이들을 호명하는 이유는 그 지점에 있지 않을까?

1 모두가 진정 마음의 사치를 누릴줄 아는 멋쟁이였고 수수한 사람들이었다. 그룹전이라면 더러는 전시장에서 서로 좋은 자리에 자기 그림을 걸려고 전전긍긍하는 바보들의 행진같은 야박스러운 일이 있을수도 있지만 한국 최초로 결성된 그룹 모던아트 동인들은 모두가 초연한 자세여서 그런 부끄러운 일이 추호도 없었다. 천경자 「모던아트의 멋장이 동인들-가난해도 순수했던 예술에의 열정」 『동아일보』 1984.4.6

2026년 2월호 (VOL.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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