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박상우 뉴모노크롬: 회화에서 사진으로
2.9~3.5 갤러리 룩스
이필 |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사진이 애초에 모노크롬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았을 때 작가의 전시제목이 〈회화에서 사진으로〉 가는 뉴모노크롬이라는 점은 흥미와 의문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갤러리 룩스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작품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림이 아닌 사진이 다양한 모노크롬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는 미술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말레비치, 아그네스 마틴, 이브 클랭, 앨런 매컬럼, 박서보, 이우환을 연상할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려있다.
다수의 작품이 주로 사각형과 원의 형상을 띠고 있고 그 제목도 〈추락하는 검은 원〉 혹은 〈검은 사각형의 비밀〉 등이다. 이러한 유형과 함께 붓이 휙휙 지나간 이미지로 구성된 〈터치〉, 전면 모노크롬 작품 〈모노 골드〉 등은 사진을 이용한 서구의 절대 추상, 추상표현주의, 모노크롬의 패러디로 보인다. 〈디지털 묘법〉이나 〈선으로부터〉는 박서보와 이우환의 회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박상우는 “회화는 오브제를 버림으로써 모노크롬을 실현”하지만 사진은 “반대로 오브제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모노크롬의 놀라운 우주를 발견”한다고 하면서 오브제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추상의 세계를 추구한다.
박상우의 모노크롬 사진은 보는 재미보다 미술사와 사진의 주요 개념 및 담론들을 환기시킨다. 내러티브가 제거된 추상 사진이 인간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지는 언제나 논쟁거리였다. 카핀이나 하트만 같은 모더니즘 사진 비평가들이 픽토리얼리즘을 버리면서 순수하고 꾸미지 않은 사진적인 수단으로 승부할 것을 주장했고, 모더니즘 사진에서 그것은 근접촬영을 통한 추상으로 시도되었다.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옹호자 그린버그는 회화와 사진을 엄격히 구별하여 추상을 추구하는 사진을 경계했다. 박상우의 사진은 단순히 추상을 흉내 낸 모더니즘 사진은 아니다. 패러디와 역설의 전략이 개입되면서, 그의 사진은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주장한 포스트모던적 원본 없는 카피들로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사진 이미지는 반드시 무언가의 이미지라는 인덱스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크라우스의 인덱스 개념이 모더니즘 추상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의 추상 사진은 또 다른 역설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추상이 비대상성을 추구한다고 할 때 박상우의 이미지는 추상을 가장한 대상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브제의 표면을 확대 촬영하여 모노크롬 회화의 형태로 제시한 “추상이면서도 현실인” 역설의 이미지들을 통해 가장 기계적이고 가장 물질적인 것으로 깊이와 인간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과연 이것은 가능한 일일까. 작가가 강조하는 오브제의 물성은 사진의 표면이라는 투명 유리에 갇힌 것일 뿐이다. 회화에서 사진으로의 전이는 작품 표면의 다양한 물성과 텍스처가 프린트라는 단일한 물성의 표면에 갇힌 채 시각적 일루전의 유희를 제공할 뿐이다. 동전의 표면이건 깨진 휴대전화 액정을 찍건, 사진의 표면 물성은 늘 동일하다. 사진의 표면성은 언제나 사진 해석의 한계가 되었다. 그러나 박상우는 사진의 표면을 통해 과학적 무의식의 세계, 비물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마저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의 모노크롬 사진의 표면은 우리가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것은 회화의 모노크롬이 물질과 더불어 추구했던 세계이기도 하였으니 박상우의 〈회화에서 사진으로〉는 한편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박상우 〈디지털 검은 사각형〉(오른쪽)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