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백현진 들과 새와 개와 재능

PKM갤러리 1.27~2.27

진휘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자유분방한 표현, 활달하고 거침없는 터치, 다양한 이미지의 조합, 강렬하고 경쾌한 색감 등으로 설명되는 백현진은 인디밴드를 이끌었던 대표적 홍대키드이다. 조소과에 입학했으나 대학교육 대신 주변의 젊은 문화에 관심을 가진 그는 실험성이 강한 어어부 프로젝트를 결성하면서 음악과 미술을 넘나드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최근 회화작품 위주로 활발하게 전시를 이어가는 백현진은 여전히 영화 음악가이자 작곡가, 연주자로 활동한다. 이런 이력은 그를 동시대 대중문화의 이단아, 융합・통합적 문화제작자의 표상이자 예술의 미래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이해하게 만든다.
이번 PKM갤러리 개인전에서 그는 회화를 20여 점을 보여주는데, 대부분 앞서 서술된 보편적인 평가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모든 사물과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듯 보이는 무심함과 동시에 내면을 관찰하는 감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성향이 잘 배합된 작품들은 다소 현란한 제목과 함께 전시되었다. SNS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그의 작품은 ‘회화로 그려낸’ 일상이자 수다의 소재들로, 심각하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내용들이다.
이런 동시대성을 갖는 그의 회화 안에는 의외로 20세기의 미술 사조들이 숨어있다.
초현실주의 작가로 미국에 이주, 추상표현주의를 태동시킨 아쉴 고르키가 보여준 유기체의 생명감이 부각되기도 하고, 활달한 브러시 워크와 대담한 구성은 추상표현주의의 액션페인팅과 색면추상의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 추상적이거나 초현실주의적인 스타일 위에 일상에서 만나는 이미지들과 글자, 기호로 치환된 실루엣의 오브제가 섞여서 그의 작품은 팝아트 이후 익숙해진 대중적인 회화의 범주도 만족시킨다. 한마디로 백현진의 작품은 초현실-추상-팝(sur-abstract-pop)이 융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완성한 후 붙인다는 긴 구절의 제목들은 작가의 심리적 상황을 따라가면서 작품을 개인적인 기록으로 제시하려는 의도를 반영하는데, 상황을 재치 있게 풀어낸 표현과 다소 긴 구절들은 인터넷 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백현진 작품은 이런 다면적인 형식과 전통적인 미술의 역사를 개인적이고도 기록적인 대상으로 치환하고 오늘날의 친근한 어법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동시대 문화 전반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혼성모방과 다양한 레퍼런스 안에서 편집자로서의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현대 예술인에게 가장 익숙한 선택 방식이다. 단일한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기 어려운 복합성과 이질성의 공존은 그가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도 추구하는 개별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성격과도 관계있다.
동시에 그를 둘러싼 환경에 존재하는 소비적인 소통방식, 첨단 기술과 욕망 안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불편함, 또는 슬픔과 어두움에 대한 명상이 투영된다는 점에서도 형식과 내용, 제목의 결합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그의 개성 있는 활달한 터치, 산만하게 느껴질 정도의 스펙트럼 넓은 색의 사용, 소소한 디테일이 이번 전시에서는 밀도 높게 구현되지는 못한 듯 보인다. 구도의 무게와 구성의 전형성에 갇힌 그림은 자유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 주저하는 듯하고, 화면 안에서 중심과 주변 간의 조화와 균형에 의존함으로써 소통을 유발하는 무수한 촉수를 잃은 듯한 모습도 보였다. 전달력을 잃지 않기 위한 자기경계의 확장이나 해체가 다시 한 번 진행될 수 있을지 주목해본다.

위 백현진 <어떤 동물에게 도구로 인식되기 이전의 물질>(가운데) 캔버스에 유채, 그래피티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