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보이지 않는 가족
4.5 ~ 5.29 서울시립미술관, 일우스페이스
이필 | 홍익대 교수
<보이지 않는 가족전>은 ‘인간가족,’ 혹은 ‘인간의 위대한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롤랑 바르트의 비판에 착안하여 기획되었다. 1955년 미국의 MoMA에서 열린 <인간가족 전>의 프랑스 순회전이 ‘인간의 위대한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열렸고, (후기)구조주의자이자 기호학자인 바르트는 이 전시가 “가족 개념을 타락시켜 하나의 보편적인 신화”로 만들어버렸다며 통렬하게 비판하는 리뷰를 《신화》(1957)에 수록했다. ‘보이지 않는 자들의 가족’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마갈리 네처겔, 파스칼 보스, 클레어 자케가 공동 기획했으며 네처겔에 의하면 바르트의 텍스트를 해석하여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주의적이고, 열려있고 다양하며, 함께 나누고 끌어안는, 국적이나 민족, 계급을 따지지 않는, 말하자면 ‘인간의’ 가족이 아닌 그저 인간적인 가족”을 제시하고자 했다.
<인간가족 전> 자체는 전시회의 신화라고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MoMA의 사진분과 큐레이터가 되면서 대중적 관심을 끌기 위해 기획한 전시로 버몬트 뉴홀 시기 MoMA가 강조한 ‘예술로서의 사진’ 개념으로부터 급선회하여 사진이미지의 생생한 전달력을 이용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 절박해진 평화와 인류의 형제애에 호소하는 휴머니즘을 내세워 미국의 대중뿐 아니라 세계 관객을 향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미술관 정책의 일환이었다. 전시의 성공적 개최 후 다섯 개의 버전으로 변형되어 8년간 세계 38개국을 순회하며 그 당시 역대 전시사상 최다 관객인 약 900만 명을 동원했다. 한국에서도 1957년 경복궁에서 열려 30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2003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스타이켄의 모국 룩셈부르크에 영구 설치되어 지금도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2013년 한국의 코아스페이스에서 다시 열렸으며, MoMA에서는 2015년 60주년을 기념하여 전시도록을 재발간했다. ‘인간가족’ 이라는 보편적 신화는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
바르트는 ‘인간가족’이라는 개념을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극대화한 신화의 예로 보았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동성애자였던 바르트에게 가부장적 신화가 덧입혀진 인간 공동체는 근대적 휴머니즘이 양산한 신화이다. 물론 <인간가족 전>은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삶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다원주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그 시각적 다양성은 단지 외형일 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인간의 생로병사라는 공통성을 강조함으로써 이 자연적 현상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했다고 본다. 신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인간이 가족의 울타리에서 자라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일하고 희로애락을 겪다 죽는다는 공통성을 확립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동일성을 강조함으로써 그 범주를 벗어나는 ‘다름’을 부정적으로 상정하는 것이고 그 수많은 ‘다른 자들’을 소수자이자 불합리한 존재로 몰고 간다. 포스트모던 비평가인 크리스토퍼 필립스 역시 이 전시가 ‘인간의 가족이라는 유토피아를 보여줌으로써, 지구화한 가부장적 가족 개념’을 내세워 전쟁의 악몽을 대체했다고 평했다. 바르트는 출생과 죽음은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그것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찬양할 것이 아니며 인간에게는 풍요로운 삶을 위한 노동만이 주어지는 것도 아님을 환기시킨다. 세상에는 축복받지 못한 탄생, 비극적이고 불행한 죽음, 억압하에 행해지는 착취적 노동 또한 많다. 바르트는 <인간가족 전>이 제시하는 인간의 ‘동일성의 표면’은 인간 행위의 저변에 있는 역사의 영역을 볼 수 없게 하며, 조금의 차이로 ‘불합리한 자들’로 분류된 이들은 이러한 ‘신화’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다고 본 것이다.
바르트의 저술들에 표명된 그의 비판적 이론과 사진에 대한 성찰에 의거하여 기획자들은 이번 전시를 ‘신화를 해체하기,’ ‘중립 안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 ‘자아의 허구,’ ‘에필로그’로 구성했다. 일우스페이스에 꾸며진 ‘에필로그’전은 MoMA에서 열린 <인간가족 전>과 유사한 패턴을 제시함으로써, 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본 관객들이 바르트가 비판한 스타이켄 식의 전시 구성이 얼마나 가족이라는 개념을 협소화하고 전형화했는지 느끼게 한다. 또한 단아한 흰 벽에 한 줄로 전시한 디스플레이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스타이켄의 전시가 당시 유럽의 급진적 전시 형태를 도입하여 사진에 가차 없이 가위질을 해댄 획기적인 디스플레이로 ‘악명’ 높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개념 혹은 그와 함께 누리는 행복의 신화는 오늘날 한국인의 삶에서도 깨지고 있다. 한국 사회도 공동체의 신화가 중심이 아닌 개인주의 시대, 개별성의 시대, 개인의 신화의 시대에 진입하였다. 만약 바르트가 말한 푼크툼을 비디오 설치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전시에서 나에게 푼크툼의 경험을 준 작품은 낸 골딘의 <자매와 성인 그리고 무녀>이다. 그녀의 남달랐던 언니를 14세에 수용시설에 보내고 18세에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가부장제적 가족이라는 신화였다. 그녀는 언니의 비극적 죽음이 가족이라는 신화를 맹신하고 인간의 개별성을 묵살한 부모의 수정주의, 그에 따른 ‘다름’의 은폐와 고립 때문이었음을 가족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낸 골딘은 자신을 수정하고 싶지 않았다. 고립을 거부했고 자신과 같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알고 싶었다. 14세에 집을 나온 그녀는 개별성을 인정하되 그러한 개별자가 많다는 사실을 서로 인식하며 공존하는 세계에서 살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의 모습을 투명하고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녀는 자신이 ‘소외된 (marginalized)’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고 한다. 왜냐하면 다수인 ‘우리들’은 주변부의 사람들이 아니며 ‘우리들이 바로 세상이기 때문’이다. 골딘에 의하면 우리는 ‘소외된 자’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거나 수정해야 하는 시대에 사는지도 모른다. 이제 소외는 현상 자체라기보다 그 현상을 감추려고 하는 은폐의 산물인 것이다. 골딘에게 사진은 그러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exactly)’ 보여줌으로써 다수의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진지함으로 다양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다. 골딘에게도 바르트에게도 사진은 신화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정직성 (complete honesty)을 구현한다.
이번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바르트이다.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열린 이 전시가 전적으로 프랑스 측에 의해서 기획되었다는 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 작가들의 작품이 대다수를 이룬다는 점, 일본과 중국 작가 3인이 참여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 작가가 보이지 않는 점 등이 아쉽다. 현대 사진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나에게 롤랑 바르트는 언제나 큰 산이다.
이 전시를 본 후 바르트는 내게 더욱 큰 산으로 다가온다. 바르트 자신이 그토록 해체하기를 원했던 신화가 ‘프랑스의 거장 바르트’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이데올로기적 긴장은 이 전시의 아이러니이다.
위 낸 골딘 〈자매와 성인 그리고 무녀〉 3채널 영상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