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서혜영 하나의 전체-긴밀한 경계
갤러리 소소 4.16~5.15
이윤희 미술사
벽돌 모양의 특정한 단위들이 증식하여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서혜영의 작품은 비유들로 가득하다. 각종 경계를 이루는 것들, 예컨대 인간과 자연, 안과 밖, 회화와 조각 등의 대비적인 것들이 그의 벽돌 모양에서 만난다. 네모라는 기본 조형 단위는 각종 기하추상 작품에서 너무도 많이 본 것이지만, 그것이 특이하게도 서로 어긋나게 쌓아 올려지는 벽돌의 모양이기에, 그리고 벽돌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연관되는 것이기에, 그의 작품 앞에서는 절로 많은 연상작용이 펼쳐진다.
관객은 아무런 정보가 없이도 그의 작품을 벽돌 형상을 반복한 것, 벽돌이 쌓아올려진 벽 등으로 인식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미술가들이 더욱 선호한 것은 가로?세로선의 교차로 이루어진 격자(grid)일 것이고 이는 어지러운 자연 세계를 질서지우는 보편의 장치라는 함의를 갖는다. 그런데 서혜영이 구축하는 벽돌모양은 격자와 비슷하지만, 단지 세로선의 어긋남이라는 작은 변이를 통해 격자가 가진 기하적 보편성을 인간의 층위로 가져온다. 그가 벽돌의 단위를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수많은 재료적 개념적 바리에이션을 보여주었다. 간단한 라인 테이핑으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때로는 종이 박스를 쌓아 올리기도 했으며, 또 어떤 때는 조명을 감싸는 실용성과 장식성을 보여주기도 했고, 입체인 경우가 더 많았지만 바닥에 깔리는 평면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매끈하게 커팅한 스테인리스 스틸을 다양한 채색으로 마감한 입체작품들이 벽면에 설치되었다.
이 작품들은 분명 입체작품이지만 상당한 회화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의 구상단계에서 회화적 요소들을 상당 부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벽돌 형상으로 이루어진 면들은 만들어질 때부터 선원근법이 적용되었다. 관객과 가까운 쪽의 벽돌이 가장 크고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도록 만든 면들이 입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입체들은 실제보다 더욱 깊어 보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원근법은 평면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회화적 착시 기법이지만, 입체에 이를 적용해 기이하게 왜곡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입체작품이 보여주는 회화적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네 면의 벽이 있는 건축물처럼 구성된, 그러나 과장된 원근법으로 인해 뒤틀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형상들은, 단일한 하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가 서로 뒤섞여 있다. 분명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진 입체물들이 마치 서로 다른 광원의 빛들이 만나는 것처럼 서로 교차되고 중첩되는 것이다. 각각의 원근법적 소실점을 가지고 있는 듯한 입체물들이 서로 교차되어 기이한 공간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면들이 이중 삼중 사중으로 중첩되는 지점들이다. 마치 같은 색 물감을 묻힌 붓을 여러 번 교차했을 때 더 진한 부분이 발생하고 다른 색의 물감을 중첩하여 새로운 색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벽돌 색면의 교차는 회화적 붓질과 같은 색채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주는 즐거움은 회화와 조각의 고전적인 경계에 대한 개념적 의심을 하게 만드는 지점이 아니라, 인간 역사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벽돌, 평면이 아닌 입체에 적용된 원근법적 고려, 단단한 입체가 상호 교차되는 방식, 이러한 모든 요소가 만들어내는 특이한 공간성의 경험이다. 설치된 크고 작은 작품들은 삼차원의 공간을 회화적으로 비틀고 있다. 의심할 수 없이 단단하고 확실한 벽돌 한 장으로 시작한 그의 작품은, 튼튼하게 쌓아 올리는 벽돌다운 방식을 견지하면서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의구심을 자아낸다. 이차원의 문법을 삼차원 세계에 적용해 증폭되는 의심의 세계가 독특하고 기이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위 서혜영 <ectype H>(왼쪽) 철, 분채도장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