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이은 나의 바다

갤러리 이도 3.25~4.5  갤러리 이듬 4.9~5.10

 

박현수 전 갤러리 잔다리 기획이사
회화를 전공한 이은은 도자를 매개로 자신의 언어를 찾는 작업의 문맥을 이끌어 왔다. 이번 전시는 벽의 파편, 언어의 파편들로 축적된 벽 작업으로 채워졌다. 작가는 전체를 구성하는 단위 요소로서 온전한 하나의 개체들을 전체의 화면으로 이식했다. 색을 머금은 조각들은 화면을 구축하는 단위원소로 배치되거나 콘크리트 판에 박혀 벽의 일부가 되었다. 도자 조각에서부터 길가에서 채집된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그가 선택한 조형적 단위체들은 화면 안에서 부조적 회화로서 새로운 전환의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중 <바다_기억> 시리즈는 도자 조각들을 전면 가득 빽빽이 배치함으로써 일정한 운동성이 느껴지는 추상적 패턴의 표피를 이뤄 관람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수많은 조각의 이어짐으로 표면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구현되는 리듬은 회화적 텍스트로 읽힌다. 화면의 리듬과 질서는 표층을 구성하는 동질적 단위체 간의 접합면에 위치한 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선들로 더욱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위의 증식과 확장의 해석으로 유추되는 운동성으로 보여지기보다는 주어진 한계상황에 대한 긍정적 인지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된 시간 위에 덧씌워진 동일성의 굴레를 극복해가는 과정의 족적에 더욱 가깝다. 작가가 반복적 노동의 집적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계는 바로 분절된 소리와 같이 그 자체로는 의미를 생성할 수 없는 시간들이 쌓여 세상을 향한 하나의 문맥이 되는 지점일 것이다. 이때 경계를 상징하는 벽은 시공간을 구획하는 벽이 아닌 시공간이 만나 실체화되는 현실의 장이며 동시에 일상의 파편들이 충돌하고 간섭하는 치열한 생성의 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가 2013년부터 선보이는 문자시리즈는 <바다_기억> 작업의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시도라고 하겠다. 바다시리즈의 반복적 행위가 가져다주는 리듬과 질서는 새로운 형태의 개체적 언어 조각으로 대치되었다. 이전의 단위원소 군집에 의한 추상적 표면은 보다 구체성을 띤 형태로 벽면을 구성했으며 조밀한 표층은 벗겨지고 마감되지 않은 메마른 콘크리트 벽체 위로 소리의 조각들이 자리 잡았다. 한글의 음소와 원형의 점은 문자작업에서 선택된 조각들이다. 음소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음운의 최소 단위이며 의미를 분화시키는 소리의 단위이다. 이 최소 단위들은 콘크리트 벽면 안에서 회화적 조형요소로서 배경과 함께 또 다른 텍스트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작가가 자신의 언어를 되찾아가는 지속적인 작업의 문맥은 회화적 텍스트를 함의한 콘크리트 벽면 작업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실의 표피를 채웠다 벗겨내며 더듬어 발견되는 흔적을 찾아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행위는 삶의 지속을 위해 죽음을 반복하는 살아있는 것들의 순환적 구조와 닮아있다. 이러한 굴레를 긍정하며 무수한 파편들로 다가오는 시간들을 모아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의미의 판 위에 언어로서 존재시키고자 하는 지속적인 시도는 세상의 한 부분으로서 그리고 고유한 하나의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물음의 행위와 다르지 않다. 부단한 반복을 통해 축적되어온 작가의 문맥들이 총체적인 자기인식의 장으로서 입체적인 접합을 포괄한 관계의 장을 향해 나아갈 것을 기대하며, 도자의 재료적 한계를 작업의 구조적 특이성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실현해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게 된다.

위 갤러리 이도에서 열린 이은의 개인전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