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경현수 형태와 색채/ Debris Debris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4.4~24  신세계 아트월갤러리 1.26~4.19

오세원 독립 큐레이터
경현수의 회화는 대중적인 이미지나 컴퓨터 등의 일렉트로닉스를 바탕으로 추상의 표면적 양태를 모의 실험하던 네오 지오(Neo Geo, 신기하학적 개념주의 혹은 시뮬레이션아트)의 계보를 잇는다. 그는 도로, 위성 사진, 코스피지수의 변동 그래프 등과 같은 성장의 척도를 알려주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컴퓨터 프로그램 작업에 의한 동시대적 표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는 풍요로운 과잉시대를 담아내던 뉴페인팅의 조형언어를 활용하는 것과는 달리 – 정확하게는 신자본주의 시장경기와 맞물려 돌아가는 ‘광택의 효과’의 허무함을 조금은 거부하는 – 의도된 몇 가지 장치를 추가했다. 그는 화면 내 복합적으로 보이는 변증적 요소들간 긴장을 조성하면서 과정의 수고와 진중함으로 내러티브의 단순성을 순화시키고 있다.
그는 회화의 평면이 가진 이중성, 가상과 현실의 이중성을 신기술적 표면과 함께 극도의 아날로그적 노동 집약과정을 통해 드러내고, 더하여 캔버스 작업화면의 미세한 차이들을 만들어 회화적 강렬함을 전달한다. 작가의 데이터화된 날카로운 직선과 편편하게 채색된 무결점 이미지기하학 화면은 일견 컴퓨터 드로잉의 산물 같지만, 아크릴물감의 물성 자체와 물리적 높낮이를 통해 직접적이고 입체적인 밀도가 생겨 시각적 환영이 노출된다. 도시의 길로 대변되는 기하학적 인상에 의한 미디어의 수치와 신기술적 형식은 흔적과 참조로만 남아있고, 직선의 냉정함과 면의 분할로 집요하게 재구성된 이미지 자체도 추상표현적 물성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그리고 매체에서 오는 원색적인 컬러감은 CMYK의 컴퓨터 색감을 쫓아가지만 온전하지 않고 의도로만 남는다. 결국 현실이 미디어 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시 은폐하는 것이 증명된다.
최근 스페이스 윌링앤딜링과 신세계 아트월갤러리에서의 전시는 경현수 작가의 작은 ‘역사’를 보여준다. 설치작업을 주로 하던 그가 디자인적인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다가 2010년 즈음부터 시작한 회화작업인, 경부고속도로와 데브리스, 그리고 코스피 연작을 어떻게 융합·진화시켜나가는지를 설명해준다. 경현수 작가가 주로 쓰는 조형적 방법은 해체 또는 파괴, 그리고 재구성이다. 코스피지수나 경부고속도로, 데브리스 연작을 보면 코스피 변동지수나 사소한 색 조각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데이터화하고, 해체되며, 재구성된다. 작가는 1년치의 코스피지수를 수집하고, 그래프 변동을 선과 색의 이진법 감성언어로 전환하며, ‘질리지 않는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해 신중히 ‘기다리는 수고’를 쏟아 붓는다. 이 모든 것은 어차피 캔버스 작업으로 전환되면서 흔적으로만 기능을 하고 사라질 소모품이다. 신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포용하며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럼에도 그가 데이터들을 재구성할 때는 ‘태고의 미’를 추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해체된 이미지들이 최초 레퍼런스가 되거나 또는 첫 이미지와 유사해지는 지점, 이미지 보편성 같은 난해한esoteric ‘미’의 지점을 찾아 미궁에 빠지는 수고를 기꺼이 해낸다. 그는 이를 찾기 위해 끊임없는 변증의 과정을 거치고,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여 ‘최상’의 발색지점 찾기 및 ‘고르게 펴 바르기 신공’을 쌓기 같은 숙련된 행위를 위해 노력한다. 이렇듯 작가는 일련의 치열한 자기만의 실천과정(practice)을 거치고 있고, 과잉경쟁을 벗어나 이미 헤어나올 수 없는 노동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News From Nowhere)>의 즐거운 노동을 꿈꾸게 한다. 실천이 체화된 작가의 활동은 이제는 주춤거림이나 쉬어감은 있어도 멈춤은 없는 것이다.

위 경현수 <Debris_경부고속도로>(맨 왼쪽) 2015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