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베니스비엔날레》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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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무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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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날레 전경

《2024 베니스비엔날레》미리보기 4.20 ~ 11.24

베니스에서 펼쳐질 다채로운 풍경들

60주년을 맞은 2024 베니스비엔날레는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 및 아르세날레 전시장 일대에서 개최된다. 본전시 참여 작가는 역대 최대 규모인 331명이다. 이 가운데 한국 작가는 이쾌대, 장우성 등 작고 작가 2명과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이강승, 조각가 김윤신 등 4명이 포함된다.

베니스비엔날레 사상 처음으로 선임된 라틴계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는 상파울루 미술관의 예술감독으로 디아스포라, 선주민(Indigenous), 여성, 퀴어 등을 조명하는 기획 ‘히스토리아스(Historias)’ 로 잘 알려져 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Stranieri Ovunque-Foreigners Everywhere)”로 예술가 콜렉티브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의 작품을 차용한 것이다. 지난 1월 31일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페드로사는 ‘외국인은 어디에나’라는 표현의 다층적인 의미를 발표했다. 그는 “우리는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항상 외국인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들(우리)은 어디에나 있다. 어디에서 자신을 발견하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도 이방인”이라고 말했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는 외국인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를 주제로 퀴어 예술가, 독학 예술가, 민속 예술가, 선주민 예술가 등 예술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예술가의 작업을 펼친다.

전시 구성은 ‘동시대 코어(Nucleo Contemporaneo)’와 ‘역사적 코어(Nucleo Storico)’로 나뉜다. 전자는 디아스포라 행동주의 및 젠더 불복종과 관련 39명의 작가가 1975년부터 2023년까지 만든 작품을 전시한다. 후자는 남반구의 모더니즘에 초점을 맞추며, 초상화, 추상화, 전 세계에 분포한 20세기 이탈리아 디아스포라에 관한 세 개의 섹션으로 이뤄진다. 해당 섹션은 1905년에서 1990년 사이에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의 작가 112명의 초상화와 37명의 추상화 작업, 이탈리아 1,2세대 디아스포라 작가 40명의 작품 등으로 구성된다. 한편 1995년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내년에 건립 30주년을 맞는다. 한국관 개관 이래 처음으로 공동예술

2024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사진: Andrea Avezzù 제공: 베니스비엔날레

감독 체제로 전시를 준비 중인 야콥 파브리시우스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과 이설희 쿤스트할 오르후스 큐레이터는 구정아 개인전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를 꾸린다. 구정아는 ‘한국 향기 여행(Korean Scent Journey)’을 주제로 실향민, 입양아 등이 한국에 대해 가진 추억을 바탕으로 조향사가 만든 향기로 한반도의 지도를 그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베니스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를 진행한다. 1995년부터 2022년까지 역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한 38명 작가의 당시 전시작과 이를 재제작한 작품, 신작 등을 출품한다. 이뿐만 아니라, 베니스비엔날레재단이 공식으로 선정한 4개의 병행전시(광주비엔날레재단, 유영국미술 문화재단,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 한솔문화재단&빌모드재단 주최)와 베니스에서 개최되는 2개의 한국미술전시 (갤러리현대, 나인드래곤헤즈 주최)도 열린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특별전《마당-우리가 되는 곳》을 통해 1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인 백남준의 〈고인돌〉과 1회 대상 수상작인 알렉시스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를 비롯해서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소장품과 역대 출품작을 함께 전시한다.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은 유영국의 첫 유럽 개인전으로,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큐레이터는 “해외에서 유명한 한국 단색화 작가들의 스승인 유영국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은 이성자의 회고전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를 개최해서 ‘음양오행’의 개념을 뿌리로 삼은 작가의 대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한솔문화재단은 빌모트재단과 함께 이배의 개인전 《이배: 달집태우기》를 통해 한국의 전통의례인 달집태우기에 대한 이배의 탐구를 엿보게 한다. 이밖에 갤러리현대는 팔라조 카보토에서 신성희의 개인전을 열어 〈박음 회화〉 연작과 〈엮음 회화〉 연작을 소개하고, 다국적 작가공동체 ‘나인드래곤헤즈’(대표 박병욱, 커미셔너 김찬동)는 스파치오 펀치에서 전시 《노마딕 파티》와 콘퍼런스를 꾸린다.

노재민 기자

백남준〈고인돌〉혼합매체가변크기 1995
제공: 광주비엔날레 재단
고인돌 거석 형태로 쌓인 TV와 장독과 같은 한국 전통 오브제가 병치되어 설치된 〈고인돌〉은 5·18민주화운동 에서 희생된 광주 공동체를 기리는 의도로 제작됐다

아크초 〈잊어버리기 위하여〉
나무보트, 맥주병, 가변 크기 1995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제공: 작가, 광주비엔날레 재단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는 쿠바에서 보트를 타고 탈출한 난민 공동체의 삶을 은유한다

 클레어 퐁텐 〈Foreigners Everywhere (Italian)〉 클레어 퐁텐〈Foreigners Everywhere (Italian)〉 벽 또는 창문에 장착된 네온, 골조, 전자 변압기 및 케이블 가변크기 2004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파리 설치 전경 2004
사진: Studio Claire Fontaine
제공: 작가, Claire Fontaine and Galleria T293, Rome ©Studio Claire Fontaine

미술계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무크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뉴스페이퍼』 제1~4호 표지
제공: 뉴스페이퍼

『뉴스페이퍼』와 『ㄷ떨』

수많은 무크지(Mook紙)가 등장했다 사라졌다. 나름의 주의·주장과 현실 변화의 열망을 품고 세상에 나오지만, 독자와 조응하며 작용 반작용의 접점을 확장해나가는 일을 지속하는 것에는 여러 현실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미술계를 구성하는 여러 주체와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무크지와 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특별하다. 각각 네 번째, 두 번째 호를 발간한 『뉴스페이퍼』와 『ㄷ떨』은 한국 미술계 속 종이를 기반으로 한 텍스트-이미지 소통과 표현의 장으로 점차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두 무크지의 면면을 살펴봤다.

‘코리아’를 주제로 제4호 발간한 『뉴스페이퍼』
『뉴스페이퍼』 제4호(2023)의 주제는 ‘코리아’다. 큐레이터, 작가, 미술비평가 등 미술계를 구성하는 종사자 48명이 각각 “끊임없이 바깥으로 팽창하지만 내부의 폐쇄성은 높아가는 ‘코리아’”에 대한 제각각의 사유를 담았다. 김옥선의 사진과 민족성에 대한 서동진의 기고로 시작하는 이번 호는 “오늘 코리아를 향한 자조와 위안, 비난과 감탄, 저항과 순응이 뒤섞인 단편”이 여럿 모여 있다. 형식은 다양하다. 글과 사진뿐 아니라 작품 이미지, 만평, 광고, 설문조사 등이 배치되어 있다. 글꼴, 그래픽도 그렇다. 매체를 관통하는 글꼴이나 배치 규칙보다는 각각의 주제와 내용에 맞게 짜였다. 2020년부터 매년 12월에 발간하는 『뉴스페이퍼』는 뮤지엄헤드의 권혁규, 허호정 큐레이터가 편집을 꾸려가고 있다. 2호까지는 코로나로 인해 급격히 변화된 삶과 관계의 조건 속, 이를 마주한 개인의 시선을 모아 동시대성을 탐구했다면, 3호부터는 주제어를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개인의 시각과 언어 단편을 종이에 정착시키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일종의 매체실험에 가까운 파격적 형식은 시각예술계 내 시의성 품은 담론을 담아내는 흥미로운 그릇 역할을 한다. 디자인에서도 그렇다. 1~2호는 윤현학, 3호는 신신, 안현진, 4호는 리센트워크가 디자인을 맡았다. 이렇게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판형과 종이재질 등을 각 호마다 달리해 왔다. 변하지 않은 것은 50명에 가까운 미술계 종사자들이 각각의 시각으로 포착해낸 ‘지금 우리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있다는 점이다.

지원금에 의존 않고 제2호 발간한 『ㄷ떨』
김도희 작가가 미술 저널 『ㄷ떨』을 창간한 것은 지난 2023년 1월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어보다 친근한 분위기로 예술가와 작품이 지금, 동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화랑』, 『계간미술』, 『미술과생활』 등 1970년대 미술 전문지를 연구하는 모임에서 시작된 『ㄷ떨』은 젠체하지 않으면서도 한국 미술계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를 격없이 담으려는 편집장 김도희의 의도가 녹아있다. 『ㄷ떨』 창간호에 대한 반향이 컸다. 2호 권두에 실린 편집장의 발간 보고에서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창간호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았다면, 2호는 온전히 저널 판매 수익과 후원금만으로 발간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의의가 크다. 2호는 1호에 이어 고풍스러운 세로쓰기 형식을 유지한 채, 예술가의 삶과 몸 이야기를 공감각으로 다루는 데 집중했다. ‘시대싸롱’에서 한국 근대미술에서 비추어져야 할 작가를 미술사 서술로 만날 수 있다면, ‘꽁트’에선 기성 매체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유쾌하게 다뤘다.

미술계에서 ‘정서적 공동체’의 가능성
아시아 지역의 소규모 출판문화를 다룬 책 『방법으로서의 출판:아시아에서 함께하기의 방식들』(임경용, 구정연 기획·편집, 미디어버스, 2023)의 서두에 임경용은 소규모 출판을 통한 ‘정서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말한다. 소규모 출판을 주도하는 개인이 기존의 동일성으로 구축된 공동체가 아니라, 파편화되고 소수화된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뉴스페이퍼』와 『ㄷ떨』, 두 매체는 일반화하고 획일화할 수 없는 한국 미술계의 현재 담론을 직조하는 각각의 ‘정서적 공동체’는 아닐까. ‘나는 과연 미술계에 속해 있는 걸까?’라는 물음이 맴돌 때, 두 매체는 각각의 방식으로 내가 속한, 혹은 속하고 싶은 공동체를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게 한다. 미술계가 작동한다는 존재 증명은 이들의 움직임을 통해 모종의 ‘공동체’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레 가늠해본다.

강재영 기자

『ㄷ떨』 제1~2호
제공: 아름다움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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