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엇갈린 랑데부》

엇갈린 존재들을 위한 노래

최장현 미술사

World Report |LA

 〈솔 르윗 뒤집기 – 1078배로 확장·복제하여 다시 돌려놓은 K123456〉 2015

《양혜규: 엇갈린 랑데부》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전시는 윤이상 작곡가의 음악적 구조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잇는 작가 솔 르윗의 기하학적 언어를 병치하며 빛과 소리, 조각과 공간이 서로를 비추는 복합적인 장을 구성한다. 전시 연계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의 협업으로 확장된 이번 전시는 전시장과 콘서트홀을 가로지르며 시각예술과 음악이 하나의 경험으로 엮이는 감각을 선사한다. 오늘날 예술이 서로 다른 감각과 맥락을 어떻게 다시 연결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이번 전시는 8월 2일까지 진행된다.

양혜규는 지난 30여 년간 평면 작품부터 영상,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방대한 예술 언어를 구축해 왔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대개 조각이라는 매체의 특수한 문법을 통해 이해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작가가 선보인 대형 블라인드 설치 작품들에 대한 비평적 문맥이 이러한 틀을 굳히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열망 멜랑콜리 적색〉(2008/2019)이나〈성채〉(2011) 등과 같이 전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그의 대표작들은 조각과 설치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수의 역사적 선례와 마찬가지로 작품과 공간의 관계, 재료의 밀도와 양감 등을 해석의 출발점으로 제공한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선보인 수많은 갈래의 다른 작품군에서도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차용한 기표들을 ‘짚풀’이라는 인류 공통의 재료를 통해 혼성적 형태로 풀어낸 ‘중간 유형’(2015~)부터 의류 행거 위에 일상에서 발견한 사물들과 전구를 엮어 놓은 ‘서울 근성’(2010) 등의 광원 조각 연작, ‘소리 나는 인물’ (2013~)과 ‘상자에 가둔 발레’(2013~2015)로 대표되는 방울 조각 연작까지, 양혜규의 작품에서 형태와 재료라는 조각적 주제어는 이른바 ‘쉽지 않은’ 그의 작품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익숙한 통로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물성을 중심으로 한 해석적 시도는 양혜규의 작품 세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간사에 대한 치열한 관심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소 표면적이고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외 주요 전시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된 장대한 스케일과 다채로운 미감을 가진 근래의 작품을 마주할 때는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의 작가적 관점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처받기 쉽고 불안한 개인들과 소속감과 소외감을 동시에 자아내는 공동체라는 양면적 개념을 통해 발전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독일에서 수학하고 활동해 온 작가에게 ‘주변부’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으나 양혜규에게 이러한 존재들은 단순히 개인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본인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로 작용해 왔다. 한 예로 2008년 프랑크푸르트 포르티쿠스에서 선보인 〈적색의 파열된 미로 산맥〉(2008)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김산과 그의 삶을 기록한 미국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Nym Wales)의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의 적색 블라인드와 이를 천천히 어루만지며 스쳐 지나가는 원형의 불빛으로 구성된 설치로 풀어낸 작품이다. 또한 같은 해 발표된 〈상트 브누아가 5번지〉(2008)에서 양혜규는 프랑스 극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가 실제로 거주하며 레지스탕스 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파리의 거주지를 참조하여, 그가 일상에서 사용했던 보일러나 세탁기 등의 기물들을 실제 치수에 맞추어 블라인드, 전구 등으로 재해석한 바 있다. 이처럼 어느 한 곳에 귀속되지 못한 채 역사의 한편을 맴돌았던 인물들의 궤적은 그가 ‘배양된 추상(incubated abstraction)’이라고 일컫는, 양혜규 고유의 시각 언어로 치환되는 과정을 통해 작품 세계 전반에 등장하며 조각의 문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형식 이면의 축을 형성해 왔다.

〈솔 르윗 뒤집기 – 1078배로 확장·복제하여 다시 돌려놓은 K123456〉(부분) 2015
솔 르윗의 정육면체 구조를 1078배로 확장·전복해, 기하학적 질서와 공간의 밀도·투명성을 변주하는 모듈로 설치한 작업
《양혜규: 엇갈린 랑데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6
사진: Zak Kelley 
제공: 국제갤러리

이러한 문맥에서 윤이상 작곡가의 곡을 중심으로 기획된 LA 현대미술관 개인전 《양혜규: 엇갈린 랑데부》는 그가 오랜 기간 천착해 온 주변적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재소환하고자 하는 작가적 의지로 읽어낼 수 있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냈다는 점에서 윤이상은 양혜규가 연구해 온 다른 인물들과 여러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간 후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그는 1967년 동백림(東伯林,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서베를린에서 한국 중앙정보부에 납치된 뒤 사형 선고를 받았고, 국제 음악계의 강력한 항의로 가까스로 석방된 이후에도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1995년 베를린에서 생을 마감했다. 물론 역사적 인물을 바탕으로 한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전기적 사실들은 서사적 구조를 통해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개인전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2024)에서, 작가는 김산이나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다루었던 설치 작품들과는 달리 윤이상의 〈이중 협주곡〉(1977)을 작품의 일부로 차용하여 다섯 개의 층위로 이루어진 블라인드 구조물을 통해 부유하는 빛의 움직임을 매개한다. 전통적인 화성 구조를 탈피한 〈이중 협주곡〉에 걸맞게 빛의 움직임과 협주곡의 선율에는 의도적인 간극이 존재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 하나의 음으로 수렴할 때 블라인드 구조물을 관통하는 광원 또한 하나로 모이는 중첩의 지점도 존재한다. 빛과 소리가 겹쳐지는 이 순간은 필연적으로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 마주치는 순간을 자아내며 남한과 북한, 견우와 직녀라는 작가의 또 다른 레퍼런스를 은유적으로 환기한다. 닿을 듯 닿지 못하는 이들의 ‘랑데부’는 마찬가지로 한국과 독일이라는 장소적 맥락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시대와 매체를 점유해 온 양혜규와 윤이상이라는 두 예술가의 궤적이 교차하는 그 찰나에 잠시나마 가시화된다.

윤이상을 통해 풀어낸 엇갈린 존재들에 대한 관심은 함께 전시된 〈솔 르윗 뒤집기 – 1078배로 확장·복제하여 다시 돌려놓은 K123456〉(2015)에서도 드러난다. 2015년 처음 선보인 〈솔 르윗 뒤집기〉 연작에 속하는 이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대표적인 작가인 솔 르윗의 정육면체 구조물을 1078배로 확장하고 각 면을 블라인드로 감싼 뒤, 동일한 구조물을 하나는 똑바로, 다른 하나는 뒤집어 서로맞붙여 놓은 형태를 취한다. 다양한 추상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보다는 작가가 차용하고 전복할 수 있는 형태를 직설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솔 르윗은 윤이상과는 다소 결이 다른 참조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두 인물 모두 작가가 오랜 기간 탐구해 온 ‘이중’의 개념을 구조적으로 양혜규의 전시 및 작품 제목들—〈쌍과 짝〉(2008~2010), 《쌍둥이와 남매》(2008), 《이중 영혼》(2022) 등—은 거울처럼 마주한 두 항의 이중성, 혹은 ‘하나와 나머지’라는 개념을 일관되게 품어 왔다. 전통과 현대, 산업과 공예, 일상과 비일상을 가로지르는 이 이중적 구조는 작품의 형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그의 작업은 흔히 쌍을 이루거나 서로 연결된 형태로 등장하며 각 부분이 서로를 규정하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솔 르윗 뒤집기 – 1078배로 확장·복제하여 다시 돌려놓은 K123456〉에서 이러한 ‘이중’의 개념은 단순히 작품의 형식뿐만 아니라 솔 르윗과 양혜규라는 두 명의 예술가가 대립하는 구조를 조성하며 인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또 다른 층위로 확장됨을 암시한다. 서구와 비서구, 원본과 변형본, 남성과 여성, 축소와 확장, 비움과 채움 등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대립적 관계를 통해 양혜규는 단순히 타자화된 인물들을 소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인 스스로를 그 맥락 안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공고히 한다. 솔 르윗의 구조물을 차용하고 전복함으로써 양혜규는 곧 끊임없이 타자화되어 왔던 자신과 서양 미술사의 정전이 대조되는 상황을 구현하고, 중심과 주변에 위치한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자양분이 되며 공존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을 소환해서 정사(正史)에 균열을 내고 재편하고자 하는 양혜규의 작가적 태도는 이번 개인전의 공공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심포지엄과 콘서트를 통해 미술관의 벽 너머로 확장되었다. 지난해 11월 LA 필하모닉과 LA 현대미술관이 공동 개최한 심포지엄 ‘엇갈린 랑데부: 윤이상의 음악적 유산’은 음악학자, 역사학자, 작곡가,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영미권 학술 담론 안에서 산발적인 관심에 머물러 온 윤이상의 음악사적 의의를 본격적으로 재고하고 연구의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후 3월 10일에 진행된 콘서트에서는 한국계 캐나다인 지휘자 이얼의 지휘 아래 LA 필하모닉 뉴 뮤직 그룹이 〈이중 협주곡〉을 선보였다.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2024)와의 연결점을 시사하듯 한 쌍의 조명이 빗소리와 바람 소리에 맞춰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무대와 관객석을 가로지르는 ‘조명 서곡’으로 막을 연 이 공연은 무대 양 끝에 자리 잡고 독주를 주고받던 LA 필하모닉 라이언 로버츠(Ryan Roberts) 수석 오보이스트와 수석 하피스트 에마누엘 세이송(Emmanuel Ceysson)이 무대 중앙으로 이동해 함께 연주하며 악기들이 하나로 수렴되는 〈이중 협주곡〉의 구조를 공간적으로 구현했다. 촘촘히 직조된 그의 선율은 전시장보다 콘서트홀에서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이는 지난 10여 년간 그의 보여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양혜규의 전시 및 작품 제목들—〈쌍과 짝〉(2008~2010), 《쌍둥이와 남매》(2008), 《이중 영혼》(2022) 등—은 거울처럼 마주한 두 항의 이중성, 혹은 ‘하나와 나머지’라는 개념을 일관되게 품어 왔다. 전통과 현대, 산업과 공예, 일상과 비일상을 가로지르는 이 이중적 구조는 작품의 형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그의 작업은 흔히 쌍을 이루거나 서로 연결된 형태로 등장하며 각 부분이 서로를 규정하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솔 르윗 뒤집기 – 1078배로 확장·복제하여 다시 돌려놓은 K123456〉에서 이러한 ‘이중’의 개념은 단순히 작품의 형식뿐만 아니라 솔 르윗과 양혜규라는 두 명의 예술가가 대립하는 구조를 조성하며 인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또 다른 층위로 확장됨을 암시한다. 서구와 비서구, 원본과 변형본, 남성과 여성, 축소와 확장, 비움과 채움 등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대립적 관계를 통해 양혜규는 단순히 타자화된 인물들을 소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인 스스로를 그 맥락 안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공고히 한다. 솔 르윗의 구조물을 차용하고 전복함으로써 양혜규는 곧 끊임없이 타자화되어 왔던 자신과 서양 미술사의 정전이 대조되는 상황을 구현하고, 중심과 주변에 위치한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자양분이 되며 공존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왼쪽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 2024
《양혜규: 엇갈린 랑데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6
사진: Zak Kelley 제공: 국제갤러리

오른쪽 전시 연계로 LA 필하모닉과의 특별 협력 프로그램, ‘엇갈린 랑데부’로 진행된 이얼 지휘자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의 공연 모습.
윤이상 작곡가의〈이중 협주곡〉을 라이언 로버츠 오보이스트, 에마뉘엘 세이송 수석 하프 연주자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했다.
사진: Farah Sosa 제공: Los Angeles Philharmonic Association

이처럼 다양한 인물을 소환해서 정사(正史)에 균열을 내고 재편하고자 하는 양혜규의 작가적 태도는 이번 개인전의 공공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심포지엄과 콘서트를 통해 미술관의 벽 너머로 확장되었다. 지난해 11월 LA 필하모닉과 LA 현대미술관이 공동 개최한 심포지엄 ‘엇갈린 랑데부: 윤이상의 음악적 유산’은 음악학자, 역사학자, 작곡가,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영미권 학술 담론 안에서 산발적인 관심에 머물러 온 윤이상의 음악사적 의의를 본격적으로 재고하고 연구의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후 3월 10일에 진행된 콘서트에서는 한국계 캐나다인 지휘자 이얼의 지휘 아래 LA 필하모닉 뉴 뮤직 그룹이 〈이중 협주곡〉을 선보였다.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2024)와의 연결점을 시사하듯 한 쌍의 조명이 빗소리와 바람 소리에 맞춰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무대와 관객석을 가로지르는 ‘조명 서곡’으로 막을 연 이 공연은 무대 양 끝에 자리 잡고 독주를 주고받던 LA 필하모닉 라이언 로버츠(Ryan Roberts) 수석 오보이스트와 수석 하피스트 에마누엘 세이송(Emmanuel Ceysson)이 무대 중앙으로 이동해 함께 연주하며 악기들이 하나로 수렴되는 〈이중 협주곡〉의 구조를 공간적으로 구현했다. 촘촘히 직조된 그의 선율은 전시장보다 콘서트홀에서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이는 지난 10여 년간 그의 작품 세계에 천착해 온 양혜규의 집요한 노력 끝에 우리에게 조금 더 또렷해진 윤이상이라는 예술가의 궤적을 은유적으로 환기했다. 하지만 이 콘서트는 양혜규의 작품 세계가 개별적 오브제에 국한되지 않고,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미학적으로 참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했기에 더욱 큰 울림을 주었다. 수십 년간 세계 곳곳을 가로지르며, 타자화된 역사적 존재들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서사를 직조해 온 그는 더 이상 다치기 쉽고 연약한 존재가 아닌,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양혜규 본인이 미술사의 정전이 된 이 시점,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을 공론의 장으로 소환하고 이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지속되도록 요청하는 이번 전시와 연계 프로그램은 그의 작업에서 아직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은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이라는 새로운 개념적 측면을 제시한다. 지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가구를 대여해받아 구성했던 초기작 〈VIP 학생회〉(2001~)가 암시했듯, 양혜규의 세계에서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요소만큼 중요한 것은 그사이를 부유하는 개인들이 맺어가는 관계와 대화, 나아가 그로부터 파생되는 보이지 않는 연대의 가능성일 것이다.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부분) 2024 윤이상의 〈이중 협주곡〉
구조를 빛과 블라인드 설치로 번역해 분단·이별·만남의 비대칭적 관계를 시각화한 작업
《양혜규: 엇갈린 랑데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6
사진: Zak Kelley 
제공: 국제갤러리

2026년 4월호 (VOL.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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