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과
인지 생태계의 변화 

김성우 응용언어학자

5월 특집기사 ①

인공지능(AI)1과 예술의 만남을 둘러싼 논의는 단일한 입장으로 정리되기 어렵다. 누군가는 이를 창작의 새로운 도구이자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이는 판단과 책임의 경계를 흐리는 장치로 경계한다. 그 사이에서 미술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다양한 인공지능 도구를 경유하고 실험하며, 각자의 환경에서 나름의 기준을 형성해 가고 있다. 사진의 등장이나 SNS가 그랬듯,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침투해 있지만 이를 어떤 기준으로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공동의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월간미술 주제호 두 번째 주제는 ‘Art with AI’이다. 인공지능과 예술이 아니다. 지금은 변화하는 현상을 예술 중심으로, 예술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다. 본지는 인공지능 보편화 시대가 불러온 변화를 인지생태학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에서 조명하고, 전시와 큐레토리얼의 흐름을 짚으며, 제도와 시장의 변화를 훑는다. 전환기인 지금,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생성하고 갱신하는 과정을 통해 사유를 지속시키는 비판적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기획 정소영·강재영 기자 진행 편집부


일러스트 ©May Kang

인공지능은 보고, 듣고, 쓰고, 말하는 일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은 막 쓰거나 안 쓰는게 아니라 ‘잘’ 써야 한다 말하는 응용언어학자 김성우가 주제호의 문을 연다. ‘질문의 점진적 해방’으로 시작해, 인지 생태라는 학문적 개념 위에서 우리의 인지와 지각이 생성형 AI와 함께 어떻게 변화하는지 최근의 연구 사례를 참조하여 조망한다. 나아가 창작자가 인공지능의 작동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하는지 리터러시(문해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짚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확산 속 ‘좋은 질문’이 화두이다.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학습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절한 질문만 준비된다면 인류의 지적 유산 대부분을 학습한 거대언어모델이 옳은 답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질문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역량은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들어오기 전부터 중요했다. 확실한 것은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미리 정의하기 힘들다는 것,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문해력과 함께 여러 영역에서의 지식과 경험이 필수라는 것, 나아가 인공지능이 모든 질문에 최선의 답을 줄 수도 없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풍조 속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측면이다. 바로 ‘언제 어디에서나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전대미문의 현상이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생각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질문할 기회는 극히 한정적인 자원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내 지식의 원천은 학교 선생님, 교과서, 전과, 집에 있었던 소량의 책 정도였다. 그중에서 지식과 관련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는 선생님뿐이었는데 (책이나 교과서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언제든 질문을 해도 좋다고 하는 선생님은 단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 심지어 학생의 질문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선생님도 계셔서 수업을 마친 후에 교과 관련 질문을 던지거나 특별한 용무 없이 교무실에 들어가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질문을 던지는 데는 실로 큰 용기가 필요했다.

삶은 질문으로 가득하다. 생존을 위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그리고 순수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의문을 품고 답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질문이 언제나 표출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질문의 생태계’를 바꾸어 놓은 최초의 기술은 PC통신이었다. 게시판을 활용해 다양한 질문이 오갔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각양각색의 주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는 훗날 여러 웹사이트의 Q&A 게시판을 거쳐 ‘네이버 지식인’이라는 서비스로 진화한다. 웹 환경에서는 야후 답변(Yahoo! Answers)이나 앤서스닷컴(Answers.com)과 같은 범용 Q&A 사이트가 등장했고, 스택 오버플로우(Stack Overflow)와 같은 전문지식형 플랫폼, 큐오라(Quora) 등의 소셜 Q&A 서비스로 분화되고 확장되었다.

이렇듯 기술 환경의 변화 속에서 질문의 생태계가 변화해 왔다. PC통신에서 웹 게시판으로, 다시 전문화된 Q&A 플랫폼으로 환경이 갖추어지면서 그동안 ‘억눌려 있던’ 온갖 질문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는 삶에 스며든 기술이 새로운 질문들을 생성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하는 인간과 답하는 인간, 이를 매개하는 기술이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한 역사가 오늘날의 질문-답변 생태계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면 ‘질문의 점진적 해방’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결국 기술은 생각을 돕거나 확장시킬 뿐 아니라 생각 자체를 바꾼다. 책이 귀한 시절 공부하던 사람과 인터넷으로 끝없이 정보를 찾아 항해하며 공부하는 사람의 생각이 같을 리 없다. 도서관에서 도서 구입 신청을 하고 종이책으로만 정보를 접하던 사람과 전자책과 논문파일을 실시간으로 열람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논문 작성 과정은 다를 테다. 정보의 주요 원천이 텍스트였던 사람과 유튜브와 쇼츠로 대부분의 정보를 접하는 사람의 지식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지금의 학부생들에게 200자 원고지를 사용해 박사 논문을 작성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일로 들릴 것이다.

이해의 단위, 인지 생태계

누군가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최소한으로 다루어야 할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생성형 인공지능이 확산되면서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어떤 접근법을 취해야 할까? 나는 ‘인지 생태학(cognitive ecology)’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에드윈 허친스에 따르면 인지생태학은 “맥락 속에서의 인지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지 생태계 요소들 사이의 상호 의존 관계망”을 의미한 (Hutchins, 2010). 러시아의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가 주장하듯이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사회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하기에,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함께 봐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쇼츠와 영상으로 하루를 채우는 사람의 사고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쇼츠와 영상이 만들어내는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효과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인지 생태학에서 파생된 ‘인지 생태계’ 개념을 기반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타인과 관계 맺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와 지식의 생태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엘리노어 로쉬(Eleanor Rosch)의 논의에 기대려고 한다. 로쉬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의 심리학 교수로 인지심리학, 그중에서도 범주화와 관련하여 중요한 업적을 남긴 연구자이다. 아래에서는 그의 논문「마음들의 환경: 인지와 쾌락의 생태학을 향하여(The environment of minds: Toward a noetic and hedonic ecology)」(1996)의 내용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의 확산이 인지 생태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조망해 보려 한다.

생각의 재료와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로쉬에 따르면 인지 생태계는 크게 ① 앎의 주체와 지식, ② 욕망과 욕망되는 것들, ③ 자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기술적 환경에 따라 지각하고 아는 방식, 욕망의 양태와 대상, 정체성이 변화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은 각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우선 세계를 이해하는 주체의 지각(perception)에 변화가 생긴다. 전통적으로는 자연과 타자가 만든 인공물이 지각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디지털 어포던스(affordance)1가 새로운 지각 환경의 상당 부분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특정 지식을 찾으려면 온라인에서 학술논문을 찾아 읽거나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조사해야 한다는 생각은 ‘인공지능에게 잘 물어보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슬라이드에 넣을 적절한 삽화는 ‘찾는 대상’에서 ‘생성하는 대상’으로 바뀌어 간다. 이처럼 인공지능과 결합한 인간은 주요한 지각 환경을 스스로 기획하고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주의의 방향 또한 변화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시도했을 일을 이젠 인공지능 챗봇을 통해 해결하려는 성향이 커진다. 기획, 창작 및 집필, 다양한 피드백의 수렴, 평가, 수정과 보강, 완성에까지 이르는 프로세스를 꼼꼼히 기획하기보다는 “어떻게 프롬프팅하면 전체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어떤 문구를 넣어야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뽑아낼 수 있을까?” “스킬(클로드의 맞춤형 작업 자동화 도구)을 어떻게 제작하면 일이 빠르게 해결될까?” “에이전트를 어떻게 조직해야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지?”와 같은 쪽으로 생각이 쏠리는 것이다. 아울러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거대언어모델(LLM)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사용자의 주의를 이끌어 가도록 훈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발달심리학자 비고츠키와 피아제를 비교해 달라고 하면 두 심리학자의 이론을 간단히 비교한 뒤에 “이어서 피아제의 인지발달 단계도 정리해 드릴까요?”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을 언어교육 측면에서 정리해 드릴까요?”와 같은 제안을 던진다.

이러한 경향은 때로 ‘인지적 굴복(cognitive surrender)’으로 이어진다(Shaw & Nave, 2026). 인지적 굴복이란 사용자가 인공지능이 생성한 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을 말한다. 사실 확인이나 비판적 검토, 원문 확인, 추가 보완 요청 등의 과정은 소거된다. 인지적 굴복개념을 제안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연구자 스티븐 쇼와 기드온 네이브는 인지적 굴복이 시간의 압박이 있거나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도가 높으며 인지적 욕구(생각이 필요한 활동을 즐기고 기꺼이 찾아 하려는 경향성)가 떨어지는 경우 잘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사용자들의 경우 자신의 답이 옳을 확률에 대해 강한 확신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고를 외주화한 자리에 지적 겸손 대신 자신의 방식이 옳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리 잡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부상은 행위성(agency)의 지형도 바꾸고 있다. 오랜 시간 다양한 기술과 도구를 사용할 때 행위성이 어떻게 분산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창작에서 인간 행위의 중심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인공지능에 한두 줄의 프롬프트를 제시하면 텍스트나 이미지, 음악과 영상까지 생성된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에 있어 인간이 중심이라는 믿음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행위성의 분산에 있어 경계를 긋기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누가 썼는가?” “누가 만들었는가?” “누가 그렸는가?” 등의 질문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저작권 귀속 기준에서 작품과 작가의 관계에 대한 이해, 창작자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욕망의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

로쉬가 지적하는 인지 생태계의 두 번째 구성요소는 바로 욕망이다. 로쉬는 특정한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구체적인 목표를 품은 주체가 특정 대상을 갈망하게 된다는 고전적 관점에 반대한다. 인간의 욕망은 관계와 맥락 속에서, 욕망을 확장하거나 추동하거나 제한하거나 변형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득과 손실의 중립적 준거점이나 습관화(habituation) 등의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한 학생에게 들은 말이 떠오른다. “사실 인공지능에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았는데, 주변 친구들이 다 쓰는 상황에서 저만 안 쓰면 손해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안 쓰려다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쓰고 있는 상황이에요.” 학생의 말은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쓰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 이젠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렸음을 시사한다. ‘이득과 손실의 중립적 준거점’이 완전히 변해버린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시쳇말로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것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것이다. 몇 년 전까지도 인공지능을 쓰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의지, 자신의 쓰기 스타일을 지키려는 욕망이 건재했다면, 이제는 전통적 쓰기 방식의 고수가 큰 손실을 감수하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비합리적 고집으로까지 느껴진다. 이것이 지속되면 자신의 과거는 잊은 채 인공지능을 쓰지 않는 창작 방식에 대해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낼 가능성이 커진다. ‘저 사람은 왜 아직도 저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거대언어모델의 도움을 받아 글을 처음 완성했을 때 느꼈던 ‘오 이게 이렇게 빨리 된다고?’와 같은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로쉬의 습관화 개념은 이를 잘 설명한다. 빠른 완성의 짜릿함은 곧 당연한 편안함이 되고, 이 상태가 지속될 때 인공지능 매개 글쓰기가 주는 매력이 서서히 잦아든다. ‘신기술의 마법’에 시큰둥해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즐겨 사용하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접속 불가 상태가 되면 ‘패닉’에 빠진다. 실제로 작년 11월에 챗GPT의 작동이 잠시 멈추었을 때 많은 사용자의 과제와 업무, 글쓰기와 코딩도 함께 중단되었다. 이 가운데 실제로 생각의 단절을 경험했다. 말 그대로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가지 우려되는 지점은 더 나은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하기보다 사용 모델의 성능 개선을 기다리거나 타인이 만들어놓은 더 정교한 프롬프트, 에이전트 조직 방법론을 찾으려는 마음이 강해지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사용해 더 좋은 작품을 더 쉽고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깊어지면서 동료 창작자들이나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이론가, 혹은 살아있는 동식물과의 만남을 추구하기보다는 첨단 도구에 대한 욕망에 심취하는 것이다. 이미지나 영상의 영역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은 습속이 자라날 수 있다.

자아 형성의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다

로쉬가 제안하는 인지 생태계와 상호작용하며 구성되는 세 번째 요소는 바로 ‘자아(the self)’이다. 그는 대상 관계 이론에 기대어 우리의 자아가 다중적이며 관계적으로 표상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은 부모와 또래, 교사, 동아리 구성원, 종교 단체 회원 등과의 상호작용 속에서자기를 조절하는 방식을 배우고, 바람직한 자신의 이미지를 탐색해 나간다. 다시 말해 정체성은 개인의 내부 동력이 아니라 관계의 역학 속에서 빚어지고 변형되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청소년의 자아 형성을 예시로 인지 생태계와 정체성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학교에서 교과를 배우는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지식 및 태도를 형성한다. 다양한 미디어의 내용 및 관점에 노출되면서 생각의 결과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 가운데 인간의 자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대화다. 평범한 10대를 보낸 나의 경우 부모님과의 소통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중고교 시절 선생님들과 나눈 이야기는 내 학문적 역량을 측량하는 저울과 같은 역할을 했다. 동생들이나 문예반 동기 및 선후배와의 대화 또한 내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내게 각별했던 대화는 펜팔이었다. 중고교 시절을 빼곡히 채웠던 편지 쓰기의 시간은 나를 타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고, 글을 쓰고 소통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의 경험과 로쉬의 자아 이해를 연결시켜 볼 때, 어떤 대상과 어떤 상호작용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는 인간의 자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친구와의 대화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갖는 상호작용 중 하나인데, 한 연구는 부모가 보고한 부모-청소년 관계의 질보다 친밀한 친구와의 우정의 질이 성인기 이후 또래 및 연인 관계, 직장에서의 수행, 우울 증상 등을 더 잘 예측한다고 밝혔다(Allen et al., 2025). 그런데 인공지능이 이 ‘친구’의 자리를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커먼센스미디어의 2025년 보고서 『대화, 신뢰, 그리고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 10대는 어떻게 또 왜 인공지능 친구를 사용하는가(Talk, Trust, and Trade-Offs: How and Why Teens Use AI Companions)』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10대 72%가 인공지능을 친구처럼 사용해 본 경험이 있으며, 매일 친구와 대화하듯 사용하는 사용자는 13%를 차지한다(Robb & Mann, 2025). 이러한 사용을 이끄는 동인은 오락과 호기심이지만, 절반 정도가 인공지능의 정보나 조언을 어느 정도 신뢰한다. 상당히 혹은 완벽하게 신뢰한다고 답한 경우 또한 23%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10대의 30% 이상이 인공지능과의 대화에서 사람과의 대화 못지않은 만족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인간관계를 우선시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어려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인공지능을 찾는 경우가 전체의 33%에 이른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볼 때 2022년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 챗GPT가 출시되고 난 후 청소년들의 자아 형성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속한 인지 생태계의 변화 속 창작자의 위치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인지 생태계의 변화에 따라 생각의 재료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욕망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며, 자아 형성의 방식 또한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많은 창작자가 생성형 인공지능을 자신의 창작 과정에 도입하면서 이들 영역 모두에서 중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속에서 창작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예술 창작 일반에 문외한인 내 입장에서 이 주제를 논할 역량은 없지만, 리터러시를 연구하며 고민하는 바를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인공지능을 지혜롭게 사용하기 위한 리터러시 역량을 크게 ① 기능적 리터러시 ② 비판적 리터러시 ③ 성찰적 리터러시로 구분한다(김성우, 2024). 각각은 ‘도구로서의 인공지능’, ‘특정한 권력과 욕망을 대변하는 인공지능’, ‘나와 공동체의 사고와 감정, 관계를 변화시키는 인공지능’에 대응한다. 세 종류의 리터러시는 인공지능의 급격한 확산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창작 원칙과 과정을 새롭게 발명해 가려는 이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역량이다.

인지 생태계에 관한 논의를 마치면서 나는 비판적, 성찰적 리터러시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흔히 우리는 충실한 도구로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언제나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일처리 방식, 타인을 대하는 태도, 산출물에 대한 기대, 자신의 역량에대한 평가 등이 변화하고 있다. 매일매일 인공지능 챗봇과 상호작용하면서 우리는 미세하게 바뀌고, 그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우리가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과 기준이 바뀐다. 기술과 엮여 가면서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변화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얼핏 보면 우리가 입력하는 프롬프트, 업로드하는 자료 등에 따라 인공지능이 동적으로 변화하는 듯하지만, 그 본질과 지향을 규정하는 것은 빅테크 기업이다. 미시적으로는 개인화된 반응이 주어지지만 거시적으로는 기술자본주의의 심화 속에서 창작자의 권리가 약화되고, 환경이 파괴되고, 남반구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리터러시는 이러한 비대칭을 간파하는 데서 시작한다. 나아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요구할 것을 요구하며, 비판할 것을 비판하는 실천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공지능을 그저 유용한 도구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과 동료들이 생각하는 구조를 미세하게 바꾸어 놓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이 시스템이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세심히 살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의 시대, 좋은 작품을 만드는 일과 수십억 인구가 생각하는 방식을 재편하고 있는 기술자본의 권력을 간파하는 일, 나아가 우리 자신을 돌보는 크고 작은 연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의 인지와 정서, 욕망의 생태계를 이루는 서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김성우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지금 준비해야 할 문해력의 미래』 유유 2024
• Allen, J. P. et al. “Pathways from Adolescent Close Friendship Struggles to Adult Negative Affectivity” Development and Psychopathology 37 2025 pp.241~250
• Gergen, K. J. The Saturated Self: Dilemmas of Identity in Contemporary Life Basic Books 1991
• Hutchins, E. “Cognitive Ecology” Topics in Cognitive Science 2(4) 2010 pp.705~715
• Neyrat, F. and B. Stiegler “Interview: From Libidinal Economy to the Ecology of the Spirit” Parrhesia 14 2012 pp.9~15
• Ong, W. Literacy and Orality Routledge 2002
• Robb, M. B. and S. Mann “Talk, Trust, and Trade-offs: How and Why Teens Use AI Companions” Common Sense Media 2025.07.16
• Rosch, E. “The Environment of Minds: Toward a Noetic and Hedonic Ecology” In M. P. Friedman and E. C. Carterette eds. Cognitive Ecology Academic Press 1996 pp.3~27
• Shaw, S. D. and G. Nave “Thinking-Fast, Slow, and Artificial: How AI is Reshaping Human Reasoning and the Rise of Cognitive Surrender” SSRN 6097646 2026

2026년 5월호 (VOL.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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