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창작자에게 묻는다
동시대 예술가 36인 설문조사
노재민·황수진 기자
5월 특집기사 ③
5월 특집기사 ② 읽기
인공지능과 예술을 둘러싼 질문들
챗지피티로 생성한 배경 이미지.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다.
“거대한 파도는 인공지능이라는 흐름을,
그 위를 서핑하듯 유영하는 신선들은 그 흐름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는 예술가들을 비유한다.”
2014년 등장한 생성적 대립 신경망(GAN)은 인공지능이 창작 도구로 도입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딥러닝 기반의 스타일 전이 기술과 각종 이미지 생성 기술의 발전을 거쳐, 오늘날 달리(DALLE)나 미드저니(Midjourney) 같은 텍스트-이미지 생성 모델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이제 누구나 간단한 문장만으로 정교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게 되었고, AI가 불러온 이 변화는 미술 현장에서 작가의 역할과 저자성, 창작의 기준을 둘러싼 논의에 불을 붙였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미술계가 견지하고 있는 관점과 사고방식은 2026년 3월 발표된 ‘The Artsy AI Survey 2026’1에서도 확인된다. 전 세계 300명 이상의 갤러리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예술 생태계는 윤리적 측면과 예술 정당성에 대해 훨씬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갤러리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33%는 데이터 수집 과정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며 비판적 입장을 취했고, 31%는 AI 도입 자체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실제 작업 과정에서도 응답자의 61%는 함께 일하는 작가들 가운데 AI를 작업에 도입한 이가 없다고 답했다. AI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그 활용 방식은 렌더링 및 시각화(48%), 사진·이미지 제작(47%), 개인 데이터셋 학습(44%), 리서치와 아이디어 발전(39%) 등 제작 과정의 보조 단계에 집중돼 있다. 이는 글로벌 미술 생태계가 AI를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인지하면서도 이를 예술 매체로 온전히 수용하는 데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국내 창작 지형은 어떠할까. 고도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한국의 시각예술 현장에서 작가들은 AI를 어떤 방식으로 작업에 도입하고 있을까. 월간미술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창작자의 양태를 살펴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36명이 설문에 응답했으며, 이들의 작가 경력은 5년 이상~10년 미만, 10년 이상~15년 미만, 15년 이상 활동한 집단에 비교적 고르게 분포했다. 주 매체는 영상·미디어 47.2%로 가장 많았고, 조각·설치 19.4%, 회화 16.7%로 그 뒤를 이었다. 이번 설문은 ① 예술가들의 AI 사용 빈도와 활용 단계, 주로 사용하는 도구 등 현재의 활용 양상을 묻고, ② AI 도입 이후 작업 방식의 변화 정도와 그 변화가 체감되는 영역, 나아가 ③ 창작물과 저자에 대한 인식 변화까지 함께 살피도록 구성했다. 아울러 ① 인공지능이 작업에 가져오는 가장 큰 가능성과 문제점 및 한계, ② 5년 후 작가에게 가장 중요해질 덕목, ③ 동료 작가와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서술형 답변을 받았다.
먼저 활용 빈도 를 보면, AI를 ‘보통 수준으로 사용한다’는 응답이 36.1%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22.2%), ‘자주 사용한다’(16.7%)가 이었다. 이 결과는 AI가 작가들에게 전면적 전환의 도구라기보다,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호출되는 보조 장치에 가깝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아직까지는 작업 전체를 AI 중심으로 재편했다기보다, 기존 창작 과정 사이사이에 AI를 삽입하는 방식이 더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작업 과정에서 AI를 얼마나 자주 활용하시나요?
실제로 작업 과정 중 AI를 사용하는 단계 역시 이 같은 경향을 뒷받침한다. 중복 응답 기준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 항목은 아이디어 구상 및 자료 조사·리서치 단계(66.7%)와 기술 구현 보조(58.3%)였다. 반면 스케치 및 에스키스 생성 단계는 38.9%, 최종 결과물 생성 또는 변형 단계는 27.8%에 그쳤다. 이는 현재 예술가들이 AI를 결과를 생산하는 기계라기보다 초기 탐색을 가속하는 장치, 혹은 구현의 난도를 낮추는 기술적 어시스턴트로 주로 활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가 작업의 중심을 대체했다기보다, 아직은 구상과 실험, 보조적 구현의 영역에 더 깊이 침투해 있는 셈이다.
작업 과정에서 어느 단계에서 AI를 주로 활용하시나요?(중복 선택 가능)

사용 도구의 분포 는 이런 현상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챗GPT와 제미나이 같은 언어 모델을 사용한다는 응답이 86.1%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코딩 및 기술 보조형 툴은 47.2%, 이미지 생성형 툴은 36.1%, 런웨이와 소라 등 영상 생성형 툴은 22.2%, 수노 같은 사운드 및 음악 생성형 툴은 13.9%로 뒤를 이었다. 이는 현재 작가들의 AI 활용이 시각 결과물의 직접 생성보다, 텍스트 기반의 리서치, 개념 정리, 번역, 기술적 문제 해결에 더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이미지 생성 AI지만, 실제 현장에서 더 널리 쓰이는 것은 오히려 언어를 정리하고 구조를 잡아주는 AI라는 점이다.
주로 사용하시는 AI 툴은 무엇인가요?(중복 선택 가능)

AI가 최종 결과물에 직접 반영되는 정도 를 묻는 문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확인된다. ‘제작 과정의 일부에 활용한다’는 응답이 36.1%로 가장 많았고, ‘구상 단계에서 참고용으로 반영된다’와 ‘결과물 일부에 직접 반영된다’는 응답이 각각 22.2%였다. ‘결과물의 핵심 생성 도구로 활용한다’는 응답은 11.1%에 머물렀고,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8.3%였다. 이를 종합하면 AI는 이미 많은 작업 과정 안으로 들어와 있지만, 여전히 작품의 전면적 저자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부분적 개입자, 혹은 보조적 생성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I가 최종 결과물에 직접 반영되는 정도는 어느 수준인가요?

편집부는 이어 AI 도입 이후 작업의 변화 양상 을 물었다. 특기할 점은 아이디어 탐색 속도, 작업 결정의 피로감, 작업에 대한 통제감, 결과물의 독창성에 대한 확신, 작업 윤리에 대한 고민, 최종 결과물 완성까지의 전반적 속도 등 다수 항목에서 ‘변화 없음’이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반면 자료 조사 속도, 기술적 구현 가능성, 예상하지 못한 결과나 우연성에 대해서는 ‘다소 증가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 결과는 AI가 창작의 전 과정을 혁명적으로 바꿨다기보다, 특정 구간의 효율과 가능성을 국소적으로 증대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예술가들은 AI를 통해 더 빨리 찾고, 더 쉽게 구현하고, 때때로 예기치 못한 조합을 얻고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통제감의 변화나 독창성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AI 도입 이후, 다음 항목들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AI가 가장 크게 도움이 된 영역 으로는 기술적 문제 해결(33.3%)과 자료 조사 및 리서치(30.6%)가 가장 많이 꼽혔고, 시각화와 시뮬레이션은 16.7%, 반복 작업의 단축과 새로운 조합 및 우연한 발상 유도는 각각 8.3%였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AI의 가치가 새로운 미학의 생산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기능으로 먼저 체감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오늘의 예술가들이 AI에서 발견하는 가장 직접적인 효용은 상상력의 급진적 도약이라기보다, 막혀 있던 지점을 풀어주는 실용성에 가깝다. 이는 AI가 예술계에 들어오는 방식이 흔히 기대되는 것처럼 전위적 파열의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의 작업 환경을 바꾸는 실무적 침투의 형태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음 중 AI가 가장 크게 도움이 된 영역은 무엇인가요?

AI를 둘러싼 태도와 인식 을 살펴보면, ‘AI가 창작의 효율을 높여준다’는 문장에는 대체로 동의한다는 응답이 많았지만, ‘AI가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열어준다’나 ‘AI는 창작의 민주화를 촉진할 것이다’는 항목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우세했다. 반면 ‘AI는 작가의 저자성을 흔들 수 있다’나 ‘기존 미술 제도의 평가 기준을 바꾸게 할 것이다’와 같은 문장에는 대체로 동의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는 작가들이 AI를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로는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곧 예술의 질적 확장이나 창작 환경의 평등화로 이어진다고 믿고 있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효율은 늘었지만, 가치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 문장들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시나요?


AI사용이 작가님의 ‘저자성’ 인식에 변화를 주었나요?
① 인공지능이 작업에 가져오는 가장 큰 가능성과 문제점 및 한계를 묻는 항목에 대한 서술형 응답을 종합하면, 작가들에게 인공지능은 동시대 창작 환경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도구이자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무엇보다 많은 응답자들은 AI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로 실행 가능성의 확장을 꼽는다. 과거에는 비용, 기술, 시간의 제약으로 시도하기 어려웠던 작업들이 이제는 개인 차원에서도 실험 가능해졌고, 리서치·번역·시뮬레이션·이미지 생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언어 장벽을 낮추거나,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조합과 시각적 자극을 제안하는 능력은 창작의 초기 단계에서 강력한 도구로 작동한다. 이로 인해 상상과 실행 사이의 거리가 크게 좁혀졌으며, 일부는 이를 인간의 감각과 인지의 외연을 확장하는 ‘새로운 지각 장치’로까지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곧바로 구조적 한계와 맞닿는다. 가장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는 결과의 동질화와 폐쇄적 순환 구조다. 생성형 AI의 출력은 결국 기존 데이터의 통계적 결합에 기반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더라도 결과가 기존의 변형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창작은 더 빠르고 쉬워졌지만, 그 도달 지점은 수렴하고 있다. 또한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은 작업을 70% 수준까지는 쉽게 끌어올리지만, 오히려 깊이 있는 완성 단계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거나, 실력의 실체 없이 ‘능숙함의 착각’을 만들어낸다는 지적도 등장한다.
더 근본적인 한계는 몸과 경험의 부재로 요약된다. 많은 응답자들이 강조하듯, AI는 세계와의 물리적 마찰, 시간 속에서의 축적, 실패와 감각의 경험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결과물의 의미와 깊이는 결국 인간 창작자의 경험과 문제의식에 의존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AI는 가능성을 제안하는 도구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실질적인 형식과 의미로 전환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윤리적·사회적 문제 역시 중요한 축으로 제기된다. 데이터의 출처 불명확성, 저작권과 기여의 경계, 창작자의 역할을 흐리는 구조는 여전히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더 나아가 AI가 창작 과정에 깊이 개입할수록 인간 간의 협업에서 발생하던 충돌, 협상, 감정 교환이 줄어들며 작업의 관계적 긴장이 약화된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예술에서의 사건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인공지능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증폭시키는 도구로 이해된다. 그것은 창작자의 능력을 확장하는 협업자이자, 동시에 창작의 방향을 규정하고 잠식할 수 있는 구조다. 따라서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태도로 개입하느냐에 있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장치이지만, 그 세계를 실제로 구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감각, 경험, 비판적 판단에 달려 있다.
② 5년 후 작가에게 가장 중요해질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종합하면, 5년 후 작가에게 가장 중요해질 덕목은 단일한 능력이라기보다 선택과 태도, 그리고 자기 인식의 문제로 요약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제작 자체는 점점 더 쉬워지지만, 그만큼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선택하고, 왜 선택하는가’가 작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무한에 가까운 이미지와 데이터가 생성되는 환경 속에서 작가는 생산자가 아니라 선별자이자 판단자로서의 역할을 더 강하게 요구받는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자기 감각과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다. 외부 정보나 알고리즘의 제안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무엇을 보고 느끼며 어떤 질문을 지속할 것인지 아는 능력, 다시 말해 인지적 주체성이 핵심 덕목으로 부상한다. 이는 단순한 취향이나 스타일을 넘어, 자신의 작업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로 향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태도를 포함한다. 결국 작가는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기보다, 기술 속에서도 자기만의 시선과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또한 많은 응답은 질문을 설계하고 지속하는 힘을 중요하게 본다. 작업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오히려 오래 머무르고 의심하는 능력, 즉 쉽게 도출된 결과를 곧바로 수용하지 않고 다시 붙드는 태도가 희소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내’, ‘집념’, ‘지속하는 불편함’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빠른 생산 체계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자 창작의 조건으로 제시된다.
한편, 기술 환경 속에서의 경계 설정 능력 역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무엇을 AI에 위임하고 무엇을 스스로 수행할 것인지, 어디까지를 자신의 작업으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앞으로 더욱 복잡해질 문제다. 이는 단순한 기술 활용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의 책임과 윤리, 그리고 작가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와 동시에 유연성 역시 핵심 덕목으로 제시된다. AI를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이분법을 넘어서, 상황과 목적에 따라 기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조정할 수 있는 태도,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독창성을 갱신해 나가는 능력이 요구된다. 즉, 고유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것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는 ‘유연한 독창성’이 중요해진다.
5년 후 ‘작가’에게 가장 중요해질 덕목

③ 마지막으로 동료 작가와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대체로 불안과 기대가 공존하는 현재를 함께 통과하자는 제안으로 읽힌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누군가는 혼란과 위기의식을 느끼고, 누군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그러나 그 방향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기술과 대립하거나 무조건 종속되는 태도가 아니라 적절한 거리에서 함께 다루는 균형감각이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싸우지도, 잡아먹히지도 말자’는 응답자 안태원의 표현처럼, AI는 피해야 할 대상도, 맹목적으로 따를 대상도 아닌 함께 협상해야 할 조건으로 인식된다.
동시에 여러 응답은 ‘몸’과 ‘감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환기한다. 재료를 만지고, 실패를 경험하며, 시간을 통과하는 과정—이러한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차원은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창작의 기반으로 남아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세계와 직접 마찰하며 생겨나는 경험과 질문이야말로 예술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이다.
또한 개인을 넘어선 연대와 공존의 태도 역시 중요한 메시지로 드러난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은 다르더라도, 함께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는 제안, 서로의 부족함과 차이를 받아들이며 지속적으로 관계 맺기를 이어가자는 바람이 반복된다. 이는 경쟁이나 속도 중심의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절실해진 감각으로 보인다.
결국 이러한 응답들은 이중적 인식으로 수렴한다. 인공지능은 분명 창작자의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창작의 방향을규정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것은 협업자이자 제약이며, 가능성을 여는 장치이자 동시에 그 가능성을 일정한 범위 안에 묶어두는 조건이다. 따라서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거리에서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이동한다.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이 시기를 지나며, 창작자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질문을 이어가고, 감각을 유지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설문 조사 답변 발췌 | 설문 조사 참여 작가
권아람, 김을지로, 김현석, 노상호, 반재하, 박영균, 박은태, 상희, 신민, 안가영, 안광휘, 안태원, 오제성, 오주영, 이수진, 이은솔, 이정우, 정영호, 조영각, 조현서, 최선, 추미림, 추수, 홍민키 외 익명을 요구한 12명
Q. 인공지능이 작업에 가져오는 가장 큰 가능성과 문제 및 한계를 각각 하나씩 꼽아달라.
이은솔 인공지능이 작업에 가져온 가장 큰 가능성은 이미지 매쉬업을 이리저리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텍스트 to 이미지의 장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사용하는 스테이블 디퓨전은 프롬프트를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천양지차로 나온다. 나는 대체로 추상적이거나 현실에 있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뽑아내길 원하기 때문에 범용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이미지를 원하는 AI 작업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텍스트 to 이미지라는 번역과정은 예측불가능성을 높이고, 이미지 콜라주 작업의 한계를 넓히는 좋은 댐퍼가 된다.
문제와 한계는 거짓말(변명 포함)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요즘 제미나이와 TRPG 게임 작업 룰을 짜고 있는데, 이 게임이 어떤 세상을 반영하고 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오히려 책을 찾게 되거나 말을 글로 솔직하게 옮기는 연습을 따로 하게 되는 것 같다. AI가 만든 둥둥 뜬 논리의 감옥 안에 갇히게 될까 봐 두렵다.
신민 가능성: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나에게는 AI 툴이 언어의 장벽 없이 작업의 맥락과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특히 해외 전시나 레지던시 지원처럼 내 언어가 아닌 맥락에서 내 작업을 설명해야 할 때, AI는 번역이 아니라 번역된 나처럼 작동해준다.
한계: 몸이 없다. 작업은 결국 몸으로 노동하며 쌓는 과정에서 생기는데, AI는 그 감각을 아예 모른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번역과 작품설치 시뮬레이션 위주로만 활용하고 있다.
홍민키 방대한 역사적 아카이빙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입장에서 데이터 발굴 및 수집에 굉장히 유능한 어시스턴트가 생긴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작 과정 전반에 걸쳐서 AI를 사용하다 보면, 창작하는 것 자체에 몰두하는 기분보다는 무언가 회사의 업무 혹은 수동적 수행을 하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작업 과정에서 잘 풀리지 않던 지점이나 안개 같은 모호함이 AI를 통해 비교적 쉽게 명료해지면 오히려 상상력이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익명 1 실력의 시뮬라크르(simulacrum of skill). 그러니까, 실력이라는 징후만 남고, 실력이라는 실체는 사라진 상태 아니겠는가.
최선 AI 사용으로 인해서 창작과 조형의 과정에서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미술 안에서도 강해지리라 예상된다. AI의 특수효과 재연과 같이 기존 영상과 장면에 학습된 시각적 재현의 열풍 이후에 개별 사안과 데이터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의 인공지능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현재 나로서는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
박은태 나는 수작업으로 고착된 작가라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AI로 작업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철학이나 미학 등 공부하면서 궁금한 개념을 구글로 검색하는데 요약된 내용에 놀라고 있다. AI 시대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처지를 그려내고, 천천히 가는 문명에 작업으로 동참하겠다.
조영각 가능성: 인공지능은 내가 오랫동안 이론과 감각으로만 품어온 것을 물질(매체화)로 꺼내준다. 사물이 스스로 말한다는 감각, 비인간 행위자가 관계망 안에서 협상한다는 감각. AI는 그 감각을 실제 시스템으로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첫 번째 매체다. 나에게 가능성은 표현의 확장이 아니라, 세계관의 가시화다.
한계: AI는 마찰을 모른다. 붓이 캔버스에 닿는 순간, 흙이 손에서 어긋나는 순간, 사실 그 저항이 언어와 형태를 가장 긴장된 곳으로 데려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AI에 쏟아붓는 자본은 그 마찰을 살 수 없다. AI는 저항 없이 너무 쉽게 ‘결과’를 낸다. 그 매끄러움이 때때로 작업을 가볍게 만든다. 틈새가 없는 곳에선 협상도 없다. 나는 AI를 쓸 때마다 의도적으로 특정한 마찰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추미림 다양한 자료조사와 정리, (코딩 등의) 기술 구현. 하지만 너무 많은 가능성에 비례해 창작자의 더욱 세밀한 판단과 시간을 요구한다.
익명 2 다양한 작업을 완성도 기준 70%까지 만들어내는 것은 수월해졌지만 편안함에 익숙해져 100%까지 해가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안가영 나의 경우, 기존 개발자와 협업했던 영역을 AI 프로그래밍을 통해 보다 원활하게 해결하며 효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과의 협업이 아닌 기계와 협업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이는 기술과 접목한 예술의 가능성이자 한계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관계하며 발생하는 사건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예술 생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던 충돌, 협상, 오해, 조율, 그리고 감정의 교환 또한 축소된다. 그 결과 작업은 더욱 빠르고 정교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예술 창작 과정에서의 우발성과 관계적 긴장은 약화될 수 있다.
Q. 5년 후 ‘작가’에게 가장 중요해질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정우 변별하고 구분하는 시각 또는 인지하는 사고. 기계가/모델이 무한에 가까운 이미지를 쏟아낼수록, 작가가 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그 안에서 걸러내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의외로 사람들의 감각은 고도로 훈련되어 있어서, 기계가 뱉어내는 전형적인 패턴이나 도식화된 결과물을 놀라울 정도로 냉소적으로 분별한다. 그래서 오히려 기계의 어법을 피하기 위해 작가의 노동은 지금보다 훨씬 더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방대한 데이터 더미 속에서 기어코 자신만의 무언가를 건져내는 끈질김—모델을 쓰든 안 쓰든, 결국 작가가 스스로 쥐어 짜내야 하는 그 노동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익명 1 에이전트형 사기자(Agentic Fraudster), 그러니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결과를 가져온 자’가 프리즈 서울에 입성하는 것이다.
익명 3 잘 모르겠다. 예측할 수 없다. 질문에서 ‘5년 후’라는 시간적 단서가 근미래라는 것으로 해석하자면 앞으로 머지않은 미래,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마도 인공지능 기술을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창작과 작품 제작의 모든 과정에서 일어날 여러 선택과 행위의 경계를 설정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익힐 것인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 그리고 무엇을 위임/외주하지 않을 것인지, 어디까지를 자기 작업의 경계로 설정할 것인지, 매 순간의 선택이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스스로 ‘증인’의 역할을 요구받거나, 또는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해지는 만큼 그것이 또한 작가의 새로운 덕목이 되지 않을까.
조영각 인내와 감지, 도구가 빨라질수록 작가는 더 빠르게 완성에 닿는다. 그런데 완성이 빨라진다는 건, 머무는 시간이 그만큼 짧아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5년 후 가장 희소한 작가는 기술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 앞에서도 오래 물음을 붙들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걸 ‘지속하는 불편함’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답이 보여도 서두르지 않는 것, 시스템이 제안해도 먼저 의심해 보는 것. 그 태도가 앞으로 작가들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자리인 것 같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예술계가 당장 어마어마하게 바뀌었는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혁명보다는 침투에 가깝다. 천천히, 그리고 고르지 않게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스밈을 감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간극은 앞으로 꽤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동료 작가나 『월간미술』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적어달라.
이정우 건강, 세계평화, 유가 안정을 기원한다.
익명 4 혼자서 빨리 가기보다는 모두의 속도가 각기 달라도 함께 멀리 가는 방법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신민 우리에게는 몸이 있다. 듄의 세계는 AI에 반란을 일으킨 인류가 컴퓨터 대신 인간 계산사를 훈련시키고, 미래소년 코난의 세계는 과학 문명이 대륙을 통째로 삼킨 뒤 살아남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땅을 일구며 다시 시작한다. SF는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 결국 몸으로 돌아온다고. 재료를 만지고, 무게를 감당하고, 땀을 흘리는 것. 그게 우리가 가진 것이고, 기꺼이 더 믿어도 될 것 같다.
홍민키 논리적 사고를 맹신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감정을 지우려고 애써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오해와 착각 그리고 고집처럼 불안한 순간들을 더 살펴보게 된다. 서로의 부족함과 모난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