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천성명 부조리한 덩어리
스페이스K 과천 1.19~2.27
필자의 기억에 조각가 천성명은 2005년 겨울 갤러리 상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알게 된 이름이다. 그리고 2007년 선컨템포러리에서 개인의 내면적인 서사를 구상조각으로 표현한 <그림자를 삼키다>가 기억에 또렷하다. 그러나 스페이스K 과천에서 선보인 <부조리한 덩어리전>은 이러한 필자의 개인적 기억과 어긋나 있었다.
가령 “당당하고 순수해 보이는 빛나는 달에 다다르기를” 갈망하는 개인의 욕망(<달빛 아래 서성이다>)이나 “망각의 기억을 담고 있는 몸뚱이”(<그림자를 삼키다>)의 분열된 자아를 기억하고 있던 필자에게 목재 패널과 평면성이 묻어나는 페인팅 마감의 ‘덩어리들’은 당혹스러웠다. 사실 기억은 이미지가 투쟁하는 분열의 장이다. 거기엔 진실이나 진리보다 서정과 아이러니함이 제격이다. 그것은 늘 배반하고 어깃장을 놓는다.
초기의 조각작품들이 회색의, 경계와 아픔의 거처를 알 수 없는 과거와 그 기억들과 투쟁하는 한 작가의 서정시였다고 한다면 2011년 갤러리 스케이프 전시 이후 그의 작품들은 점점 주변적이고 관계적인 기억으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겠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기억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적이고 사회적인 기억으로 말이다. 이러한 기억은 앞서 말한 개인적 분열과 심하게 어긋난다.
그 부조리함의 표현 형식일까? 스페이스K 과천의 유리와 철강 소재 건물의 차가움과 효율성은 천성명의 날것의 표현들과 많이 어긋난다. 분홍색 목재 합판과 각목으로 지지된 횃불을 든 손목, 땅에 떨어진 확성기는 기념비 조각이 갖는 전통성을 버렸다. 프로파간다로서 기능은 없고 평면성과 이질감이 강조된다. 양감과 무게감은 사라지고 가벼움과 개념이 자리했다.
벽면에 걸린 신체의 장기들과 그 아래에서 겉도는 푸른 사각형의 인물들은 규모와 형식에서 매우 이질적이다. 2012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떨어져 나옴직한 여성의 얼굴은 세 개의 학교 의자가 떠받친다. 중앙 홀에 영구 설치된 사이보그 메탈 인물 작품들과는 이질적인, 철판 위에 분홍으로 채색한 사자 작품은 몇 개의 나무 좌대와 유리 케이스 안에 안치돼 있다. 직원들이 많이 다니는 복도에 설치된 이 작품은 군이나 읍면의 경계에 들어설 때 보는 지역 표지이거나 라이온스클럽의 조각을 패러디한다. 2층의 <열병>은 2011년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보인 여성상의 평면 버전인 것처럼 보인다. 몸에 붉은 반점이 난 부조 입상은 이전보다 상황성은 사라지고 동작이나 표정이 무덤덤하다.
앞서 그의 변화된 작품 앞에서 당혹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천성명의 부조리와 익명성이라는 화두에는 사실 변함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수원의 동탄 목리에서부터 고민해 온 점에서 이번 전시의 변화는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이라 하겠다. 다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눈치 채지 못했을 뿐 그는 변하지 않게 변해 온 것이다.
정형탁 예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