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아티스트 파일 2015: 동행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5.11.10~2.14

 

정연심 홍익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국립신미술관이 함께 기획하는 큐레이션 프로젝트 ‘아티스트 파일’은 지난 여름 일본에서 먼저 전시된 이후 (일본 국립신미술관 2015.7.29~2015.10.11)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일본 국립신미술관은 보통 미술관과 달리 컬렉션을 하지 않고 주로 기획전 중심으로 일본 국내외의 동시대미술을 활발히 소개하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최근 지어진 미술관답게 대형 조각 및 설치를 소화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영상, 설치 작가들에게는 좋은 전시공간을 제공한다. 지난 몇 년간 두 미술관은 공동으로 ‘아티스트 파일’을 진행하면서, 특정 주제를 제한해서 선정하지 않고 말 그대로 아티스트들의 개별적 작업을 ‘파일’이라는 제목 아래 현장감 있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다. 여기에는 동시대 한일 작가들의 집단적 발언보다는, 개인적 육성과 반응을 더욱 강조하는 장점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 개의 퍼즐이나 콜라주를 나열하는 다소 병렬적이고 주제 면에서 취약한 일면을 보인다. 2015년 아티스트 파일 전시에는 총 12명의 작가가 참여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12개의 개인전(총 200여 점)이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넓은 공간감을 지닌 신미술관에서는 개인전에 가까운 스케일을 자랑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전’과 같은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쿄, 뉴욕, 베를린, 런던 등을 베이스로 하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 동시대 미술가들에게는 그들 특유의 작업방식과 공통된 ‘의식’과 같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한국 작가 여섯 명은 개인과 사회의 심리적 관계와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공간이 일으키는 긴장 등을 여러 매체를 통해 되짚어 본다. 집단적인 ‘파일’이 아닌, 작가 개인이 취하는 섬세한 방법론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러한 공통분모를 도출하려는 시각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신미술관의 연구원인 요네다 나오키가 도록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일본 작가들은 예술 오브제의 사물성과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이미지의 역학 관계에 천착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나는 2015년 아티스트 파일의 주축을 이루는 기슬기, 이성미, 이원호, 이혜인, 임흥순, 양정욱의 작업에서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흔히 엿보이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혹은 보지만 볼 수 없는 다양한 이면들을 레이어드처럼 풀어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벌어지거나 동시대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인 양상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일상의 민낯이다. 그것은 주변 공간과 불편하고 낯설게 관계를 맺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기슬기의 사진작업인 <Unfamiliar Corner>는 틈 사이의 공간이나 벽 등에 살짝 남겨진 신체의 일부를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파편화된 신체(the body in pieces)처럼 불안정한 심리적 요소를 더한다. 사진 속에 있는 이의 긴장감은 보는 이에게 호기심과 불안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기슬기의 익숙하지만 낯선 심리적 자극은 미국 볼티모어에서 경험한 이성미의 디아스포라적 시선과 마주한다. 이성미는, 교통사고로 깨진 자동차의 유리 파편들을 일일이 손으로 붙여 기억과 시간성을 작품 속에 구현하였다. 이성미의 작업은 ‘여성적 글쓰기’처럼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물리적 공간으로 치환되었다. 유리 자체에서 나오는 비색의 독특한 색감은 고려청자의 마티에르처럼 묘한 잔상을 남긴다. 작가는 향으로 연기 작업을 하거나 다양한 드로잉 작업을 통해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에 성공적으로 동화하지 못하고 주변화된 마이너리티의 정체성을 기록한다.
이성미의 작업이 깨진 유리라는 다루기 위험한 재료를 주요 속성으로 사용한다면, 이원호는 ‘냄새’라는 후각과 ‘박스’라는 아슬아슬한 집이라는 공간을 재료로 삼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신작인 <부(浮)부동산> (2015)은 한국과 일본의 노숙자들이 사용한 바 있는 종이박스로 제작한 것이다. 그는 노숙자들이 집으로 사용하는 종이박스를 직접 구입하면서 이러한 매매과정을 모두 기록해 공개하였다. 그 집은 우리 사회에서 직면한 ‘부동산’이 상징하는 여러 가치를 생각하게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노숙자들을 만지기조차 꺼리는 세태 속에서 투명인간으로 남아있는 홈리스를 연상시킨다.
현재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이혜인은 여행과 야외 사생을 통해 밤에 그림을 그리거나 기억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이어나간다. 그는 작품 제목처럼 <수상한 야영객>(2013, 2015)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행위보다는 우연적 환경 속에서 장소의 기억을 더듬어 나간다. 어색한 붓 터치는 어눌한 말하기처럼 낯설다. 신미술관에서 전시되는 도중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은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한 <비념>(2012)과 <다음 인생>(2015)을 통해 역사를 둘러싼 개인과 사회의 기억을 구현해냈다. 한편, 양정욱 작가는 자신이 느끼는 단상들을 먼저 텍스트로 쓰고 이를 키네틱한 조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을 제작하였다. 영상작업과 사진, 설치 등이 많은 이번 전시에서 반복적인 움직임을 동반한 양정욱의 작업은 음악적인 리듬감으로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 작가들의 작업을 세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런던에 거주하는 요코미조 시즈카의 사진작업에서 소름끼치게 언캐니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직접 유령을 본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Phantom> 사진들은 관람자들을 관음증적인 관찰자로 변화시켜 타자성을 경험하게 한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는 도미 모토히로가 레디메이드를 이용해 오브제의 관계성을 탐색한다면, 고바야시 고헤이는 일상의 사물과 언어의 관계성을 개념적으로 다루고, 데즈카 아이코는 직물을 해체한다. 그리고 모모세 아야는 배우의 몸짓, 목소리, 편집 과정 등을 통해 영상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정치성을 폭로하고, 미나미카와 시몬은 신문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캔버스에서 추상으로 환원시키는 연작들을 선보인다. 이들 12명의 작가는 한국과 일본 태생이기는 하지만 여러 도시를 베이스로 활동하므로 다른 동시대전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아티스트 파일’은 “지역적인 것, 세대적인 것, 이산적인 것”이 묘하게 만나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을 발언한다.

위 양정욱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 가변설치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