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이준 즉흥환상곡-漁

페리지갤러리 1.7~2.25

정수경 미학, 미술이론

갤러리의 아담한 전시장으로 들어서는 관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조금은 몽환적인, 작품들이 내뿜는 소리들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뿌연 음향이다. 굳이 사운드아트라 할 것은 없지만, 이준은 소리를 이용한 작업을 유독 좋아한다. 그러나 그 음향은 조성음악처럼 편안하게 마음을 안정시키거나 혹은 격앙시키는 유가 아니다. ‘즉흥환상곡’이라고 해서 쇼팽류의 음악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미디어와 데이터를 주로 이용하는 그에게 즉흥은 랜덤 알고리듬에 가까우며, 환상은 머릿속에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 것보다는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의식과 질서를 헝클어뜨리고, 그래서 현실 감각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데 가깝다.
음향의 이 같은 탈의식 효과 속에서 눈이 공간을 더듬으며 작품에 다가가게 된다. 전체적으로 유난히 눈에 띄는 장치는 ‘회전판’들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회전판 위로 펜, 연필 등이 남기는 흔적 역시 인터넷 포털을 통해 전달되는 실시간?혹은 시간차-데이터에 따른 ‘즉흥’적인 것이다. 즉, 작가가 통제력을 상당부분 상실하는 것, 그것이 즉흥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것이 작가가 정교하게 고안하고 통제한 틀/형식과 호응하면서 특별한 울림과 의미를 발생시킨다. 즉흥은 작가의 통제력 상실과 이어져 있지만 그 상실 역시 작가의 의도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작가는 실은 작품과 공간을 장악한 보이지 않는 손이며, ‘즉흥’은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기획에 종속된 하나의 ‘의도된’ 효과이다. 과연 이준은 즉흥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세상이다. 선진자본주의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지만 큰 세상인 대한민국, 서울. 그 세상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표면 뒤에 놓여 있는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은 비가시적인 힘들의 곡선과 불균형. 아파트 밀집도, 환율, 주식, 실업률 등등. 그러나 그는 그것을 찬찬한 관조의 대상으로, 의식에 각인되는 정적인 형식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그것이 원래 지닌, 쉽게 붙들리지 않는 속도감을 더한 동적인 미디어아트 설치의 형식으로 제시했다.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회전은 눈만큼이나 마음까지 어지럽게 흔들며 갑갑함을 더한다.
그 어지러움은 작품에서 시작하지만, 관람자들의 마음속에서 배가될 지도 모를 종류의 것이다.
안 그래도 사는 게 힘들고 어지러운데, 예술마저 어지러워야 할까 싶은 마음으로 곁으로 걸음을 옮기면, “러브 미 텐더~.” 느리고 낮은, 둔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의식을 더욱 끌어내린다. 다정하게 마음을 흔들기보다는 왠지 욕지기가 날 것 같은 그 템포, 그 울림. 다가가 유리진공관 속을 들여다보면, 거무튀튀해진 인간 피겨들이 음파의 진동에 따라 날카로운 압정과 뒤엉켜 오르락 내리락 튕긴다. 진공관 밖에 서 있는 피겨는 그 불편한 공간을 벗어나 우아하게 서 있다. 뭘까.
또 그 옆에는 연도들이 적혀 동심원으로 구획된 회전판 위에 무채색의 크고 작은 피겨들이 놓여 있고, 그것이 LP 판처럼 돌아가는 가운데, 금붕어가 들어있는 비커를 가운데 두고 스피커로 연결되어 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의 곳곳에 물고기들이 등장하는데 대략 뭔가 매개하는 중간자의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그들이 하는 일이 명확히 보이는 건 전시장 가운데 놓인, 물고기 두 마리가 물거품 대신 뻐끔거리며 내놓는 말풍선이 등장하는 TV 어항이다. 포털에서 전송된 검색어들이 그 출처를 알리는 단어와 함께 물고기가 말이라도 하듯 말풍선으로 전달된다. 세상에, 머리 나쁘기로 유명한 붕어들이 세상과 우리를 이어주고, 우리에게 세상에 관한 정보들을 전해준다. 믿어도 될까? 불편한데, 머리가 멍해서 깊이 생각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제대로 낚인 듯하다. 작가의 낚싯바늘에.
이준은 그간 미디어 포털의 메커니즘을 거리를 두고 보여주는, 대체적으로 유쾌한 시청각효과들을 산출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그에 비해 이번 전시에는 유쾌한 설치들 속에 불안과 불편을 심어두었다. 물고기와 피겨가 은근히 강한 비판적 힘을 발휘한다. 분명 인간 형상이고, 하여 인간세계의 압축판이지만, 바보라는 붕어들만큼의 활성도 갖지 못한 무기력한 존재들. 피겨들은 오직 작가가 미리 짜놓은 판 속에서 회전, 혹은 진동에 따라 수동적 움직임을 얻을 따름이다. 노이즈와 음악의 중간쯤 되는 음향 속에서 ‘저건 현실 속 우리와 다를 바 없어’라고 느끼게 되면 이준의 이번 작업은 꽤나 흥미로운 것이 된다. 이제 어쩔 것인가. 빙글 도는 회전판 같은, 다람쥐 쳇바퀴보다 더 납작해져버린, 수치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폐쇄순환회로를 어떻게 벗어날까? 과연 벗어날 수는 있을까. 이준의 답이 궁금하다.

위 이준 <레치타티보: 물고기의 목소리_ZFB600>(앞) 투명 LCD 어항, 자작나무, 금붕어, 컴퓨터 비전 시스템, 인터넷연결,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뉴스헤드라인, 날씨정보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