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Focus] 건축적 부록

Architectural Supplement

협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부부작가 이부록, 안지미가 이번에는 소설가 김연수와 함께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9월 18일부터 10월 8일까지 갤러리 잔다리에서 열리는 <건축적 부록전>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다.
세 명의 예술가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적 시점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다시 30년이 지난 2048년,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다.

폭력으로 제거할 수 없는 오류의 세계

안지미 (이하 안) 2002년 일주아트센터에서 열린 <동상이몽전>에서 작가와 디자이너로 처음 만났죠. 당시 저는 일주아트센터에서 리플렛과 도록 등 시각이미지를 총괄하는 객원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부록 씨는 영상작업을 하는 작가로 전시에 참여했어요.
1996년부터 북 디자이너로 출판계 일을 하면서 디자이너로서 뭔가 다른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점에 이부록이라는 작가를 만난거죠. 같이 작업한 것이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부록 씨는 영상작업에서 다른 매체로 확장하려는 시점에 저를 만나서 작업 영역이 좀 더 확장하지 않았나 싶어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서로 이런 얘기를 해본 적 없는 것 같네요.
이부록 (이하 이) <동상이몽전> 리플렛을 통해 지미 씨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서로의 작업에서 매력을 느꼈죠. 이후 2004년 인사미술공간에서 두 번째 개인전 <워바타> 때 픽토그램 작업을 책으로 출간하면서 함께 작업을 시작했고, 당시로서는 전시와 책이 만나 서로 보완해 완결되는 방식의 전시였어요. 만일 우리가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작품이 어떤 방향으로 흘렀을지 예측할 수 없어요. 원래부터 책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시와 책이 같이 나오는 일이 흔하지 않았죠. 도록과 책은 확실히 다르잖아요. 그런 점에서 전문적인 편집능력을 가진 지미 씨의 도움이 컸고 이후 전시와 동시에 책을 기획해 발간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취한 것 같아요.
안 전시는 관람객이 특정한 공간과 시간에 보지 않으면 안되는 한계가 있는데 반해 책은 시간과 공간에 자유로운 편이죠. 물론 책 역시 독자가 구입해서 책장을 넘기지 않으면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없죠. 전시와 책 두 매체 모두 각자 폐쇄성과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굉장히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점 때문에 두 매체를 연결하면 굉장히 흥미롭겠다 싶었어요. 우리가 사실 처음부터 협업을 하자고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부록 씨가 저를 통해 출판에도 밀접하게 개입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작업을 많이 했죠.
이 본격적으로 협업한 것은 2008년 청계천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부터죠.
안 2008년 청계창작스튜디오에 함께 입주해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청계천에 살다시피 하며 청계천이 주는 이상한 매력에 흠뻑 빠져 지냈어요. 제  경우 동교동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에서 유학한 4년 빼고는 거의 홍대 지역을 떠난 적이 없는데,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을 잘 몰랐던 거죠. 청계천에서 노동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저는 기존의 커머셜한 작업을 대폭 줄이고 부록 씨와 함께 컨셉추얼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이때 청계천 주변 구도심을 탐사한《  창백얼굴》과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 뒤집어 보기를 시도한《  UPSET NEWYORK / NY》, 두 권의 책이 나왔죠.
《  창백얼굴》은 작은 피규어의 목 부분에 자석을 이식해 얼굴이 바뀌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드러낸 것이라면《  뉴욕》은 같은 피규어가 뉴욕이라는 도시에 이식되어 거꾸로 박혀있는 모습, 책을 거꾸로 뒤집어서 보면 도시가 뒤집혀 있는 풍경이에요. 마침 우리가 뉴욕으로 여행을 간 시점이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직후라서 모든 사고의 패턴이 바뀌는 순간이었죠. 서울과 뉴욕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사라지고 변화하는 도시도 없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자가 한국 생활을 체험하고 쓴 기사를 봤는데, ‘미래도시를 보려면 서울로 가라’ 그런 내용이더군요. 유럽은 과거 전성기 때의 기억에 집착해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은 모든 것이 시시각각 새롭게 바뀌며 24시간 돌아가는 미래세계 도시라는 거죠.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한국 사회가 과연 선진국을 건설한 건지, 작동 불능의 도시를 건설한 건지 의아해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다시 청계천 얘기로 돌아갈까요. 청계천은 서울의 중심에 있으면서 고층빌딩과 동대문시장 사이에 있는 특이한 공간이죠. 사회적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문화적 유산이자 정치적 발판 구실을 했죠. 이후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의해 청계천창작스튜디오가 추진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오프닝 때 오세훈 시장이 온다고 떠들썩했죠.(웃음)
결국 스튜디오 운영도 정치적으로 활용되다보니 주체가 없이 서울문화재단과 서울시설관리공단을 떠돌다 결국 3년 만에 사라졌어요. 근데 청계천이라는 공간이 과거의 화려했던 시기에 비해선 못하겠지만, 근대화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곳이고, 실제로 무엇이든 만들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만들어내는 보물상 같은 곳이었죠. 그때 청계천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앞으로의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저희 작업의 뿌리는 청계천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 그러고 보니 2004《  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명성출판사)부터 10여 년 동안 우리가 낸 책이 총 11권이 되었네요. 그러지 않아도 처음엔 10년쯤 지나면 우리가 하는 작업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물론 지금 딱 뭐라 정의내릴 순 없지만 여태까지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이 참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안 그동안 매번 지원금을 받아 책을 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그 사이 독립출판 붐이 일어났지만 초창기 때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출판을 계속 해왔죠.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뭔가 만들어 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원금은 곧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하는 만큼 작업이 단순 자기만족에 그치면 안돼요. 작업 내용도 그렇고 작업태도에도 작업 자체는 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그림문자에서 출판한 책은 2006년 작가 김태헌의《  1번국도 –평택에서 임진각까지》가 첫 작업이고 그 다음부터는 전시와 연계해서 우리 책을 주로 냈죠. ‘업셋프레스’는 프로젝트 이름이고.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 작업은 추상적인 개념의 언어가 많아요. 그렇다보니 소통이 수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면에서는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타자와의 소통일텐데 지금까지 작업은 소통에 소극적이지 않았나. 다들 작업이 난해하다고 얘기해요. 물론 쉬운 예술이 곧 좋은 예술은 아니지만 작업도 깊이가 생길수록 훨씬 편안하게 소통되는 것 같아요. 작업이 아직은 너무 젊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지미 씨 말대로 어떻게 하면 작업으로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네요.
단적으로 <워바타>, <스티커 프로젝트> 등 픽토그램의 경우 디자인적 개념이자 소통을 위한 세계 공통언어인 픽토그램에 새로운 개념을 덧붙여 다른 의미를 확대 재생산하는 작업이었어요. 픽토그램이 보편성 추상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폭력적으로 재단한 부분을 복원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픽토그램이라는 굉장히 기능적 언어에 새로운 개념을 부여해 기능성을 제거한 작업 즉, 다양한 오류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일종의 오독놀이, 파자놀이인데, 평화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평화라는 개념은 인류에게 존재하지 않아요. 단어는 있지만 의미는 일치하지 않는 그런 용어들이 많죠. 지미 씨가 프랑스에서 유학했다면 저는 DMZ (비무장지대)에서 유학했다고 말하곤 하는데, 감옥처럼 완전히 고립된 그곳에서의 복무생활은 은둔형인 저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요.
DMZ는 남과 북이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서로 유토피아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통해 이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의 장소이죠. 불통의 극단적인 지점이 전쟁이라 할 수 있는데, 픽토그램은 가장 원시적인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작업에 도입했어요. 이후에도 스티커프로젝트 작업으로도 파생되어 이어졌죠.
《     세계인권선언》(프롬나드)의 경우 충분히 예술적이면서도 위트가 있고 소통에도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해요. 선언문을 가지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워바타》(2004)를 출간해준 선배와 술자리에서 1948년 국제연합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작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부록 씨와 작업하게 되었죠. 의외로 많은 사람이 세계인권선언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더라고요.
활자로만 머물렀을 때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죠. 선언문을 읽어보면 짧은 문장에 응축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에 참 어렵게 느껴지는데 부록 씨가 익숙한 이미지를 차용하고 또 현재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선언문을 대비시켜 보여주니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됐죠. 그 작업을 하던 2012년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오큐파이(occupy) 운동’이 일어난 시기였죠. 당시 “1% 대 99%”라는 구호가 시각화되면서 파급효과가 굉장히 커졌어요. 기회가 된다면 선언문의 시각화 작업을 계속해서 하고 싶어요.
제 경우 군생활 이후《  한겨레 21》에 카툰 연재를 위해 진보와 보수성향의 기사를 동시에 읽으면서 의식을 깨우치게 된 게 그 작업의 근간이 됐어요.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배권력을 비판한 팔레스타인 출신 만화가 나지 알 알리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죠. 카툰을 통해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발언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바로 ‘세계인권선언’을 시각화한 작업이었죠. 해독이 안되는 텍스트가 의미없듯이 해석이 안되는 이미지도 무의미하죠.
잔다리에서 열린 이번 전시 <건축적 부록>은 부록 씨와 소설가 김연수 씨와 협업하는 새로운 시도였어요. 김연수 씨와의 인연은 1998년에 시작되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협업을 하게 되었죠. 소설가와 설치작가의 협업과정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이부록_워바타 스티커 프로젝트_2005-2014-1

이부록 〈워바타 스티커 프로젝트〉 2005~2014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굿모닝 미스터 오웰> 전시광경

DF2B8427

이부록 <금자탑> 나무 자석 철부산물 2014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 대한 질문
사실 지난 4월 세월호 사건 이후 저 역시 굉장한 충격을 받아 예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굿모닝 미스터 오웰전>에 참여하면서 조지 오웰의 텍스《  1984》와 백남준이 바라본 1984년, 그리고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대해 좀 더 보충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오늘날 30년 전에 비해 긍정적인 면은 더 발전했지만 감시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같은 부정적인 측면도 더 극대화됐죠. 현재를 담고 있는 미래에 대한 입장에서 소설과 같은 형식을 책으로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던 차에 김연수 씨에게 제안을 하게 되었고, 함께 작업하게 된거죠.
이번 전시에서 전시장 지하1층은 빅데이터가 지배하는 미래사회에 사라진 어떤 인물에 대한 설정을 내용으로 하는 소설과, 종이책이 사라진 미래사회에 책을 복원하는 지하출판의 개념으로 풀었고, 지하 2층은 청계천에서 수거한 폐기물을 활용해서 유물이나, 우주 폐기물처럼 보이게끔 했어요. 이번 전시는 1984년 백남준이 바라본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비추어 세월호 이후 시스템 문제를 건드리고 있어요.
그 당시 미디어를 송출하는 인공위성을 통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인공위성이 우주 쓰레기가 되었잖아요. 청계천의 쇠들의 꿈도 사실은 인공위성이나 탱크가 되는 것이죠. 청계천에서 우주에서든 쓰레기가 되어버렸어요. 빅데이터도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수집된 정보이지만 쓸모없어 버려지는 것을 상징하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청계천에서 소외받은 것들에 대한 메시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금자탑으로 연결되죠.
이전의 작업이 사라지는 근대 풍경에 관한 것이어서 과거에 대한 재해석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과거, 현재, 미래까지 보는 계기가 되었죠. 이번에는 오웰의 입장을 통해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설정이죠. 세월호 이후의 문제들을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종이책이 금지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두운 곳에서 비밀스럽게 책을 보듯 스폿 조명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부록 씨가 효과적인 조명을 찾아냈죠.
정보통제와 상호감시, 자기검열 등 이 모든 것이 이뤄지는 노트북용 USB LED조명과 콘셉터 등을 조합한 것인데, 미래조명은 최소한의 전력과 최대한의 전달효과라는 가정에 따른 거였어요.
무대에서 자주 활용되는 스폿조명의 개념은 사실 집중되는 곳이 아닌 그 이면을 생각하자는 것인데, 언론의 방식을 포함해서 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에서 택하는 전시방식처럼 과거의 시간을 차단해서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죠.
이번 전시를 준비 과정에 이부록 씨는 설치작업에 집중했고, 저는 김연수 씨와 협업해서 책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기존의 작업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작업이 어느 정도 분리된 것 같아요. 앞으로 부록 씨는 작가로서 프로젝트 작업을 계속 해나갈 것이고 저는 내년에 출판 쪽에 무게 중심을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협업이 올해처럼 활발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폭력을 동력으로 하는 사회 시스템이 변화하지 않는 한 <스티커 프로젝트> 등 기존 작업은 계속 진행할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내 안의 다른 타자와 함께 하자는 생각에 저 스스로 분열해서 지난해부터 ‘이무부(리무부, 李無不, Remove)’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부록을 제거하다 이런 식으로…. 저는 은둔형 성격이지만 협업의 필연성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서 제 안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끊임없이 이중사고가 일어나고 있어요. 협업하면서 느끼는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자본화된 예술가와 그에 저항하는 예술가 사이의 충돌 등 여러 측면에서 이중사고가 발생하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분열하게 되었어요. 내 안에서 다른 입장도 보고, 나 자신도 그런데 타자와는 더 심할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분열이 가속화될 것 같아요.
이야기가 너무 장황해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작가가 계속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아요.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겠죠. 단지 부록 씨는 이름을 바꿔 나가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름 설명하다가 장황하게 되었는데 이름을 바꾸는 것은 이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 작업은 이부록의 것이고 저 작업은 이무부의 것 그런 건 아니죠.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안지미와 이부록이 지난 10년간 출간한 책

안지미와 이부록이 지난 10년간 출간한 책

진행 정리・이슬비 기자

안지미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 ISCOM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정병규 디자인, 월간 《지오》, 솔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으며 2003년 작가 이부록과 함께 출판사 ‘그림문자’를 설립해 시각 이미지 생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부록은 197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제5회 광주비엔날레> <신호탄전> (국립현대미술관), <1번 국도>(경기도미술관)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안지미와 함께 <Sticker Project> (아르코미술관/ 그림문자), <세계인권선언> (이음갤러리 / 프롬나드), <금지된 숲> (복합문화공간에무 / 그림문자), <Warvata> (인사미술공간, 인더페이퍼갤러리 / 두성북스) 등을 전시와 출판으로 선보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epilogue | <건축적 부록전>에 참여한 소설가 김연수

DF2B8523

어떤 협업

이부록 씨와는 10년 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소설집을 펴낼 때 처음 알게 됐다. 여기서 알게 됐다는 것은 그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뜻이다. 편집자가 내 소설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며 일러스트레이션을 청탁했는데, 나중에 출판된 책을 보니 과연 소설과 그림이 서로 어울리는 바가 있었다. 편집자에게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작업을 위해 내 소설을 읽어본 이부록 씨는 자신이 대학 시절에 쓴 글과 비슷하다는 소감을 피력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 역시 매우 독특한 소설을 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때는 사람들이 ‘표지의 이 괴상한 피에로는 너냐?’라고 종종 묻곤 했던 그 얼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전혀 모를 때였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 2010년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나랑 광화문광장에서 이상의 <오감도> 연작 11편을 낭독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하는 작업을 했던 구민자 씨가 통인동의 시청각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연락을 해왔다. 아울러 전시작품 중 하나가 내 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필사한 노트라며 내게 잠시 시간을 내어서 소설을 낭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열린 작은 낭독회가 끝난 뒤, 찾아온 관객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데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다. 다름아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표지에 실린 그 얼굴, 그러니까 이부록 씨였다.
그가 10년 전의 인연 때문에 내 낭독을 들으러 통인동까지 찾아올 리는 없다는 걸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사연인가 얘기를 들어보니 솔깃한 바가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백남준 씨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위성쇼를 선보인 지 올해로 30년째가 되는 해여서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기념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백남준의 기획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쓴《  1984》를 1984년의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것이었다. 조지 오웰은 1984년의 세계를 전체주의적 통제가 일반화된 디스토피아로 그렸지만, 백남준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연결된 세계를 낙관적으로 봤다.
이부록 씨는 그 기념전의 연장선에서 디자이너 안지미 씨와 나, 이렇게 셋이서 조지 오웰의《  1984》를 2014년 서울에서 되돌아보는 전시를 하자고 내게 제안했다. 그 제안은 흥미로웠다. 1984년에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인상적으로 시청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1984년의 그 감동을 되새겨본다면 어떨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 자신부터가 중학교 2학년생에서 40대의 중년이 된 것처럼, 이 세계 역시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변한 게 틀림없을 테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2048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한 편 쓰기로 했다.
내 소설 속의 서울은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아니라 빅 데이터가 모든 개인의 사생활을 파악하고 있는 세계다. 어떤 점에서 조지 오웰의 예측은 옳았다. 1984년에는 세계의 각 도시를 위성 생중계로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과학기술이 제시했다면,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인간만이 아니라 사물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이 시대에는 점차 사생활의 종말이라는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완전한 통제사회를 뜻한다. 이 통제사회에서는 반드시 인간의 자유라는 이슈가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소설 속의 인물들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해서 투쟁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이부록 씨와는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 지금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 서로 공감했고, 지금까지 해온 각자의 작업 안에서 그 공감의 맥락을 연결하자고 방향을 잡았다. 안지미 씨의 디자인 역시 디스토피아에 도래할 종이책의 종말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소설과 미술의 접점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테지만, 경험해보니 서로 만나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협업이었다. 이부록 씨와 안지미 씨, 두 사람과의 유쾌한 대화를 통해서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김연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