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FOCUS BILL VIOLA
시간을 물질적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독보적인 영상세계를 구축한 비디오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대규모 개인전(3.5~5.3)이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세간의 주목과 동시에 논쟁적인 이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것은 빌 비올라가 지속적으로 보여준 영적세계, 종교적인 상징성과 비디오 미학의 관계 설정에 관한 것이다. 빌 비올라의 작업세계를 조명한 필자 두 명의 글을 통해 이번 전시를 둘러싼 비평적 관점을 주목해본다.
비디오가 사라진 상징과 은유에 대한 경계
김지훈 중앙대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국제갤러리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2000년대 이후 작업들은 매 번 상반된 반응을 낳았다. 시간을 비디오의 미적 질료로 삼아 삶과 죽음, 영혼과 자연에 대한 초월적 스펙터클을 주조하고 변주하는 그의 작품들은 국내외의 일반 관람객과 주류 언론의 취향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이에 호응하듯 이 전시를 소개하는 주류 언론의 기사들은 “고통을 견디는 인간의 모습 선보여”(《조선일보》 허윤희), “뭉클한 성화를 보는 느낌”(《한겨레》 노형석), “위로가 필요한 세상에 어울리는 전시”(《중앙일보》 문소영) 같은 문구들을 부각시켰다(물론 이 문구들 중 어떤 것들은 비올라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반면 매체의 물질성과 기법에 대한 탐구와 예술에서의 성찰적 시선을 중요시하는 비평가와 저널들은 비올라의 최근 작품들의 형식과 미적 체험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옥토버》의 한 대담에서 할 포스터Hal Foster는 비올라의 작품이 유도하는 경험을 “강렬한 미디어 몰입immersion을 통한 영적 직접성immediacy의 경험이자 마법적 신비주의bewitched mysticism”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실제로 비올라의 2000년대 이후 작업인 <수난Passions>, <사랑과 죽음: 트리스탄 프로젝트LOVE/DEATH: The Tristan Project>, <해변 없는 바다Ocean without a Shore> 연작을 망라하는 이 작업들은 포스터의 비판을 어느 정도 확증해주는 듯하다. 이 연작들에서 비올라는 필름과 고화질high-definition 비디오에 힘입어 회화적 도상성과 영화적 생생함을 특징으로 하는 환영적이고 몰입적인 이미지들을 창조했다. 그 이미지들은 인간의 감정과 고통, 영적 모험과 같은 친숙한 종교적 모티프를 구현하는 데 충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이번 세 번째 개인전에 소개된 작품들은 어떤가.
이번에 소개된 7편의 작품 대부분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제작된 것이지만 지난 2008년 같은 갤러리에서 개최된 두 번째 개인전 작품들(즉 <트리스탄 프로젝트>, <해변 없는 바다> 연작에 속한 작품들)의 형식과 테마를 반복하고 변주한다. 어머니와 아들이 사막을 걷는 모습을 담은 <조상들Ancestors> (2012)과 황야에서 각자 다른 길을 가던 두 여자의 만남을 보여주는 <조우The Encounter>(2012)를 비롯한 3편의 무성 작품은 ‘트리스탄 프로젝트’의 한 작품인 <밤으로의 여로Passage into Night>(2006)와 동일한 공식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오랜 시간 동안 아지랑이 피어오른 풍경을 가로질러 조금씩 화면을 향해 다가온다.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의 이행, 탄생과 죽음, 이승과 저승, 무와 유, 현실과 기억의 문턱을 체험하게끔 하는 이러한 도식은 비올라의 대표적 모티프인 물과 불을 관통하는 작품들에서 반복된다. 검은색을 비롯한 여러 색깔의 물을 뒤집어쓰는 남자의 모습을 느린 역재생reverse play으로 장대하게 보여주는 <도치된 탄생>(2014), 밧줄에 묶여 거꾸로 매달린 남자가 물벼락을 맞으며 정지하고 승천하는 모습을 담아낸 <물의 순교자>(2014)는 <해변 없는 바다> 연작을 이루었던 “물의 벽을 통과하면서 가시화되고 사라지는 인간 존재들”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이 작업들, 나아가 비올라의 2000년대 이후 작업들은 포스터가 말하는 “마법적 신비주의”의 결과인가? 포스터에 따르면 비올라의 작품들은 오늘날 미디어문화의 부정적 징후들인 가상화와 비물질화에 호응하는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공간과 장치 자체에 대한 의미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퇴행적이다. 나는 이 비판이 공간과 장치의 반영적 탐구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점에서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관람객들은 비올라의 작품을 중세 성화聖畵와 같은 아우라를 느끼며 관조한다. 전통적인 회화성에 호응하는 듯한 이러한 관람 태도에는 작품의 공간과 장치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지만 나는 비올라의 작업이 비디오 이미지를 ‘비물질화’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을 명백한 물질로 경험한다”는 비올라의 말은 그의 1970년대 작업부터 견지된 원칙이었다. 현실은 물론 필름으로도 불가능한 시간성인 시간의 미묘한 감속과 역행은 비올라의 작품에 대한 미적 경험의 핵심이다. 이 경험은 비디오의 기술적 특정성들(전자적 신호의 흐름으로 좌우되는 비디오 이미지의 탄력성, 필름보다 자유로운 시간의 감속과 가속, 고화질 비디오로 표현할 수 있는 회화적이고 영화적인 시각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탐구의 결과는 비디오의 물질성을 직접적이거나 왜곡된 모습으로 노출하는 방향을 취할 수도 있고, 물질성 그 자체와는 다른 상징과 은유들의 표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것들은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의 역사를 규정지은 동시에 공존하고 때로 서로 대립하던 두 가지 경향으로 여기에 어떤 확정적 위계를 둘 수는 없다. 비올라는 1970년대부터 명백히 후자의 길을 탐색해왔다. 그의 2000년대 이후 작품을 특징짓는 정지에서 미묘한 운동으로의 이행, 아지랑이와 물결로 상징되는 흐름에 대한 감각, 점에서 인간으로 변형되는 형상의 가변성 등은 이미지의 시간성과 표면을 미묘하게 조작할 수 있는 디지털 비디오의 기술적, 미학적 특징들을 물질화한 결과다. 이러한 기술적이고 미적인 특징들이 인간의 감정과 의식, 지각에 대한 빌 비올라의 주제적 키워드들과 연결될 때 감상의 회로가 완성된다.
중요한 것은 비올라의 작품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열어주는 이러한 회로를 마련하지 못한 채 영적 세계의 탐구, 종교적 상징의 형상화 또는 심지어 ‘힐링’의 체험으로 규정짓는 비평적 시선들에 대한 경계다. 이러한 시선들은 비올라의 작품을 형상화하고 그에 대한 체험을 낳는 데 필수적인 비디오의 물질적, 기법적 국면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결여하고 있다. 이 시선들을 통해 걸러진 비올라의 작품세계는 비디오가 사라진 상징과 은유들의 세계다. 이 상징과 은유들을 가능케 하는 가시성과 흐름, 지속을 고려할 때만이 그의 작품에 대한 찬반양론이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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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작가는 무엇을 말하는가?
김백균 중앙대 한국화학과 교수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국내 세 번째 전시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대규모 미술관 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술 애호가와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올해 기대되는 전시 중의 하나로 그의 전시를 손꼽는 이가 많았다. 현대미술의 변방인 서울에서 빌 비올라 정도의 유명세를 지닌 작가의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백남준의 조수로 일한 적 있다는 인연을 들어 백남준과 그를 ‘스승과 제자’라는 한국식 아름다운 미담으로 치장해 언론홍보에 활용한 데 힘입은 바도 컸다.
그러나 막상 전시를 보면서 “인간 내면을 어루만지는 영상시인”이라는 빌 비올라에 대한 세간의 호의적 평가와 백남준과 그의 관계를 미화해 인구에 회자되는 ‘뻔한’ 인연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작품안에서 백남준에게 사사 혹은 영향을 받았을 어떠한 사유나 표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의식에 대한 예술적 탐색이나 성찰도 발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백남준의 연결고리는 작품 안에 흐르는 의식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백남준의 작업을 도운 조수라는 느슨한 외적 유대에만 있고, 단순한 직업적 역할을 스승과 제자 관계로 확대 해석한 것은 백남준 신화에 사로잡힌 한국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적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일었다. 국제갤러리의 빌 비올라 전시와 짧은 기간 겹쳐 열린 학고재갤러리의 백남준 전시를 참조해 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백남준은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사유하고 무엇을 표현하는지 형식을 통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낼 줄 아는 작가였다. 학고재갤러리의 백남준 전시는 그의 예술세계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핵심 작품들이 출품된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그가 TV를 통해서 사유한 탐색의 결과로써 세계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는 TV의 속성을 가지고 ‘논’ 결과, 감각을 통해 세계와 삶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가져온 것들이다. 백남준은 우리가 TV의 속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원리를 상징과 비유를 통해, 세계란 인식의 틀 안에서 의식화된 것들이고, 인식이란 가변적인 허상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것을 우리 몸으로 느낄 수 있게끔 시각적 장치들을 통해 그려냈다.
<흰 잔재에 대한 발판 스위치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TV란 전원이 들어갈 때만 화상을 보여주며,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TV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만 화면이 보인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 발판을 발로 누를 때만 화면에 화상이 나타나는 <흰 잔재에 대한 발판 스위치 실험>은 이와 같은 TV의 속성을 하나의 메타포로 보여준다. 우리의 인식이란 외부의 세계가 내부에 남긴 잔상이다. 그런데 그 잔상은 우리의 감각과 사유의 틀 속에서만 인식된다. 우리의 인식이 이와 같은 TV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우리는 백남준이 보여주는 감각과 인식 확장에서 오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백남준은 이처럼 자신이 감각을 통해 느끼고 사유한 그 과정을 시각적 장치를 통해 관객도 느껴볼 수 있도록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다.
이에 반해 빌 비올라는 자신이 느낀 세계의 ‘당위’를 말한다. K3관에 설치된 <도치된 탄생Inverted Birth>는 탄생의 반대 지점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말하자면 죽음이다. 죽음을 도치된 탄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면 빌 비올라는 죽음을 생명의 소멸이 아닌 새로운 탄생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첫 화면에 검은 오물을 뒤집어쓴 남자가 어둠 속에 고요히 서 있고 물과 함께 그 검은 오물도 위로 솟구쳐 올라간다. 검은 오물 다음에는 빨간색의 액체가, 그 다음에는 우윳빛의 하얀 액체가, 마지막으로 모래 같은 고체가 올라가고 화면에 남자만 꼿꼿이 선 채 8분22초의 영상은 끝을 맺는다.
이것을 죽음의 과정을 묘사한 알레고리Allegory로 보면, 죽음 후에 시간의 경과에 따라 육신의 외피를 덮고 있던 검은 오물이 사라지고, 그 다음 빨간 피가 사라지고, 그 다음 우윳빛 살이 사라지고, 그 다음 모래 같은 고체의 뼈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고 순수한 영혼만 남는 과정으로 유추할 수 있다. 빌 비올라에게 죽음은 육신이 사라지고 순수한 영혼만 남는 탄생 같은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폭포 같은 물줄기 속에서도 강건히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은 이미 주어진 주변의 환경에서 오는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고통에 대한 겸허한 수용과 각성을 그린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 항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의 답일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거나, 신념이라고 하거나 이로부터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생겨났다 할지라도 굳이 그의 생각에 대해 시비를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읽히고 공공의 장소에서 보인다면 그것을 가치로 평가할 자유가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가 왜 그것을 봐야 하는지와 같은 의미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신념이라면 신념 그 자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신념을 형성하게 된 또 다른 배경을 이해해야 그 신념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고, 그 신념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될 때만이 그 신념을 지지하거나 환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빌 비올라의 작품에서 내가 볼 수 없는 것은 빌 비올라가 왜 어떻게 그런 생각과 느낌을 지니게 되었는지 하는 과정이다. 화면에 감각과 정신을 집중하고 보고 있다하더라도 어느 순간 어떻게 나의 감정을 작가의 감정에 이입해야 하는지 그 감정 이입의 단서를 화면에서 찾을 수 없었으므로 감정이입은 불가능했다. 영상 속의 남자가 어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할지라도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단서가 화면 안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영상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현실의 시간보다 느리게 가는 듯한 환상 같은 느낌,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주는 시원함 같은 감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감각적 쾌감이란 예술작품이 주는 감각을 통해 인식의 확장에서 오는 쾌감이 아니라, 우리가 시원한 폭포 물줄기를 보면서 느끼는 쾌감처럼, 더운 여름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주는 청량감의 시각화와 같은 것이다.
빌 비올라의 신념과 의미
이처럼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일방적으로 발산해버리고 마는 방식은 그의 모든 작품에 동일하게 작동한다. K2관의 <내면의 통로Inner Passage>에서는 사막을 배경으로 나지막한 산이 있고, 산 앞에 한 그루 나무가 있다. 이윽고 저 멀리서 카메라를 향한 쪽으로 한 남자가 걸어온다. 그 남자가 화면의 끝, 즉 카메라가 찍고 있는 끝에 다다랐을 때 화면은 격하게 수없이 변화하는 여러 이미지를 보여주고, 희미한 불빛이 길을 비추며 다시 조용한 사막 화면으로 바뀐다. 남자는 뒤돌아서 출발했던 곳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 그 출발했던 곳이 처음과 다른 점은 한 그루의 나무가 여러 그루의 나무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17분12초의 긴 영상은 그 자체로도 지루하다. 더욱 허무한 것은 그것을 다 보고 난 다음 찾아오는 빌 비올라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대한 환기이다.
영상에서 한 그루의 나무로부터 걸어 나오는 남자를 유기적 생명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 비유해 보면 우리는 하나의 일자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아 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그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감정을 맛보고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올 때는 하나에서 왔지만, 이 세계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살았느냐는 인과율에 따라 돌아가는 곳은 여러 곳이다.
<조우The Encounter> 역시 단순히 화면상의 두 여인이 평행하게 걸어오고 한 순간 만났다가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다시 뒤돌아서 다른 길로 평행하게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혼자서 인생을 살아간다. 삶 속에서 조우는 우연한 것이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그 조우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받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아니라 왜 그런지 그러한 이유가 형식을 통해 화면에서 보여야 관객이 그 느낌과 생각에 공감하고 찬사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빌 비올라의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실망을 안겨준 것은 <물의 순교자Water Martyr>이다. 발목이 묶인 순교자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물을 견디며 점점 팔을 벌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식을 드러내고, 불굴의 의지와 인내로 죽음에서 빛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펼쳐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선언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까지는 여타의 작품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작품의 출품으로 인해 빌 비올라의 작가 의식과 삶의 태도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에 맞닥뜨린다.
이 작품은 본래 런던 세인트 폴 성당의 의뢰를 받아 제작되었다. 중세 사회도 아닌 오늘날, 성당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작품은 성당에 모셔놓고 기도를 하면 될 뿐이다. 과녁 없이 맞히는 것이 예술이라는 장-뤼 낭시의 언급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제작한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전시에 선보인다는 것은 한국 관객이나 미래의 소장가를 얕보았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예술이 무목적적인 것이라는 자각이 없는 작가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삶은 고통이거나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 할지라도, 그 말 자체로는 그것 이외에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며, 그것의 이유를 작품 안에서 형식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빌 비올라는 비디오라는 매체를 사용한다는 공통점 이외에 백남준으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 스스로가 하나의 유기적 언어가 되는 백남준의 작품과, 작품 이외의 배경을 다시 말해야 하는 빌 비올라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왜 영상이라는 매체로 표현해야 하는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포괄한다.
영상을 미디어로 이용하는 예술행위는 1920년대 말 살바도르 달리가 <안달루시아의 개>(1928)와 <황금시대>(1931)와 같은 전위영화를 선보인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비디오 영상 예술시대는 1960년대 소니 포타팩portapak의 발명과 더불어 등장했다. 1965년 백남준이 당시 뉴욕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촬영해 ‘카페 오 고고Café au Go Go’에서 그 영상을 방영한 것이 공식적인 비디오아트의 시작이다. 세계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 소니 포타팩의 발명은 당시 회화에 식상함을 느끼던 예술가들의 열광적인 지지에 힘입어 ‘뉴미디어아트’를 출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회화의 한계를 자각하고, 회화의 죽음을 예견했다. 그들이 포타팩에 주목한 것은 포타팩이 단순히 영상을 화면에 구현할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비디오는 영화의 번거로운 필름 촬영과 인화, 상영의 과정을 편리하게 해준 것만이 아니라 비디오가 자신이 의식하지 않은 바를 관찰하고 성찰하는 유용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비디오는 자신의 행동이지만 자각되지 않은 행동, 즉 자신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카메라라는 의식 없는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도구로 쓰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비토 아콘치, 리처드 세라, 브루스 나우먼 등과 같은 초기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작업에는 카메라와 모니터 사이에서 반복되는 피드백을 통한 반사적이고 자기반영적인, 마조히즘과 지루함이 투영돼 있다.
여기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세계와 나’, 그리고 인식 사이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끈질긴 근대적 예술의 과제가 지닌 문제의식의 연장선 위에 있다. 국제갤러리의 빌 비올라 전시에서 ‘나’에 대한 천착이라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가 예술의 과제를 근대 이전으로 되돌린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즉 비디오라는 매체는 새로우나 말하는 방식은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그가 작품을 통해 평소의 소신대로 ‘죽은 이’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를 말하고, 죽은 이가 현실 세계로 발을 내디딘 후 다시 돌아가는 순간의 망설임, 떨림 혹은 슬픔을 표현한 것이라면, 또 불교의 윤회를 믿는다면 그 세계를 ‘선언’할 것이 아니라, 비유나 상징을 통해서라도 ‘묘사’하여 관객도 그 세계를 느끼거나 상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의 순교자> 비디오/사운드 설치 107.6×62.1×6.8cm
7분10초 2014
자료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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