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EOPLE | 이 명 옥
열정으로 달려온 사비나의 20년
1996년 3월 사비나갤러리로 시작해 한국의 대표적인 사립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20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그간의 여정을 들어보기 위해 6월 10일 미술관을 찾았다. 먼저 20년을 맞은 소감을 묻자 그는 “20년 세월이 나 또한 놀랍다”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개인이 설립한 비영리 미술공간이 20년을 버티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답한다. 미술관을 운영하며 절망한 적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이 관장은 작가와 관객에게 한 약속을 떠올렸다고. 미술관 운영을 중도 포기하는 일은 그에게 작가의 전시경력을 없애고 사비나미술관을 찾은 관객의 기대와 애정을 저버리는 행동이었다. 이는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이 관장의 소신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결국엔 ‘책임감’이다.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비나미술관의 전신인 사비나갤러리는 처음부터 여타 상업 화랑과 차별화된 정체성을 내세웠다. 그것은 바로 차별화된 기획력으로 승부를 거는 이른바 ‘기획 전문’ 갤러리였다. 당시 우리나라 미술계를 떠올려보면 이 관장의 운영 방침은 시대를 앞서가는 행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밤의 풍경〉(1996), 〈교과서 미술〉(1997), 〈그림으로 보는 우리 세시풍속〉(2000) 등 주제 중심의 전시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이 관장의 차별화 전략은 전례 없는 모델을 만들어내
신생 갤러리였음에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특색 있는 전시공간이란 이미지가 확고하게 형성되고 미술관으로 전환할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한 이 관장은 2002년 7월 사비나미술관으로 등록을 마쳤다. 이후 다른 분야와의 융복합 전시와 역량 있는 작가의 개인전을
각 2회씩 개최하는 등 신선한 기획과 주제로 관객을 찾아가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 미술품
컬렉터의 데이터베이스인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와 AMMA(Art Market Monitor of Artron)가 공동 조사한 ‘사립미술관보고서’에서 국내 우수 미술관 3개 기관에 이름을 올린 것도 이러한 노력이 일궈낸 성과였다.
대중과 소통하려는 이 관장의 열의는 오래전부터 해온 강연과 칼럼 및 저술활동에서도 읽힌다. 관장이란 이름표를 떼고 미술을 사랑하는 미술인으로서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낯가리는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알기 쉬운 대중적 언어로 글을 쓴다”는 그는 이미 서른 권이 넘는 미술 관련 서적을 출간한 베테랑 작가이자 미술과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운영자금이 안정적으로 지원되는 공립미술관과 개성 있고 유연하게 미술관 색깔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립미술관이 결합된 형태의 미술관”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이 관장. 언제나 초심을 되새기며 일한다는 그가 머지않아 또 한 번 전례 없는 형태의 새로운 미술관을 구현할 것이라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곽세원 기자
이 명 옥 Savina Lee
홍익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 석사를 졸업했다. 사비나미술관 관장이자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 한국미술관협회장(2011~),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 (2008~)를 겸하고 있다.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도서부문(2006),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식 국무총리 표창(2009)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