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정정주 – Scotoma
정정주 __ Scotoma
갤러리 조선 4.30-5.29
정정주의 작업은 건축의 모형과 내부에 설치된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 모형 내부의 건축적 이미지를 외부로 끌어오는 설치 영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내부를 은밀하게 비추는 그의 영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면서 ‘바라보는’ 친숙한 공간을 카메라의 눈으로 재투사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보여지는’ 불안한 응시의 지점을 유추하게 하였다. ‘응시의 도시’로도 불리는 그의 대표적인 영상설치 작업은 시선의 주체이자 응시의 대상으로 관객의 자리를 재위치지으면서 우리를 복잡한 시각의 장(場)과 그것이 야기하는 인간의 알 수 있는 불안감에 진지하게 연루시켰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응시는 시각장을 지배하는 코기토로서의 주체개념을 해체하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사물이 나를 응시하는 주체의 경험과 주체보다 선행하는 타자의 응시는 대상을 지배적으로 바라보는 통합적 의미로서의 주체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응시의 개념을 유추하게 하는 이번 전시 <암점(Scotoma)>의 대표작인 영상 설치 <응시>는 바로 이러한 시각과 주체의 문제를 의미화한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시장 중심에 대칭적으로 위치한 기다란 레일을 중심으로 두 개의 프로젝터가 서로를 향해 다가오고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각각의 프로젝터 앞에는 작은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서서히 다가오고 물러가는 반대편 프로젝터의 느린 이동과 렌즈로부터 나오는 눈부신 빛을 담아내고, 이를 실시간으로 전시장 벽에 투사시킨다. 두 개의 프로젝터가 가까워질수록 빛의 점들은 강화되고 동시에 영상화면은 흰색의 빛으로 점점 차오른다. 관객이 들어섰을 때 마주하는 것은 바로 근원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없는 산재한 빛들이다. 프로젝터 기계와 영상화면 속에서 동시에 나오는 이 빛들은 라캉이 말한 정어리 깡통의 빛, 알 수 없으나 산재하는 타자의 응시를 은유하는 듯하다.
정정주의 작품 <응시>에서 관객은 작품을 바라볼 뿐 아니라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어 비디오 영상 안에 포섭되면서 또 다른 관객의 시선의 대상이 되고 만다. 보고 보여지는 이러한 중층적인 시각의 메커니즘 속에서 관객은 지각의 혼란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마주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시각장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데서 나오는 상실감, 위협적인 응시를 감지하였을 때 느끼는 심리적 상태와도 같다. 작가가 거주하는 아파트 거실을 찍은 영상과 지인들의 아파트 거실을 찍은 영상을 섞어 전시장 전체에 회전시키는 영상 작품 <5개의 거실>은 바로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증폭시킨다.
지금까지 언급한 응시와 주체의 관계에서 생각해 볼 때, 작가가 두 개의 작은 영상 <두번째 창문>과 <바다방>을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로부터 끌어왔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호퍼의 회화가 카메라가 바라보는 앵글과 유사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선다. 정정주의 영상에서 창문으로 가시화된 공간과 그 너머에서 들어오는 빛은 호퍼의 회화처럼 화면이라는 공간적 틀을 벗어나 화면 밖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그 안을 바라보는 응시의 지점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배명지・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