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노석미 – 높고 높은 풀 위로

노석미  __  높고 높은 풀 위로

자하미술관 5.9-6.1

“너는 왜 일을 하지 않지? 일자리가 없어서 그런 거니? 내가 공장 소개해줄까?” 평소에 늘 집에 있는 나를 노는 사람으로 보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이없어하면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잖아.” 그랬더니 그가 이상하게 여기면서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건 직업이 아니잖아.” 갑자기 할 말이 없었다. 어찌 보면 만의 말이 맞기도 한 것 같았다. 나는 ‘공장에 다녀야 할까?’라는 생각을 잠깐이지만 정말 했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봉제공장의 미싱사면 좋겠다고 말이다.(노석미,《  서른살의 집》 중)
노석미는 그림을 그리는 모든 과정에서 먹고 마시고 일하고 쉬고 잠을 자며 풀벌레와 바람과 고양이들과 계절과 함께 일상을 조밀하게 그려내며 자유로운 취향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한다. 우리 사회가 언니들에게는 결코 편하지 않은 사회이니 쉬운 일은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멈추면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 많지만, 막상 멈추면 불안해하고 자꾸 무언가를 재촉하니 문제다. 게다가 자신만 그러면 누가 뭐라나. 괜히 주위 사람들을 흔들어댄다. 작가는 조급증과 강박에 출렁대는 파도를 자신의 취미로 수용한다. 불안과 불편은 잠시 지나가는 일상의 소소한 일과로 녹아든다.
1990년대 말 노석미의 개인전을 흥미롭게 본 기억이 난다. 당시 노석미의 작업은 컬러풀한 오브제를 전시장 전체에 매달고 늘어놓은 설치로 관객들은 전시 관람이 곧 작품 속을 돌아다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수작업의 섬세함과 몰입의 경험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 후 간명하고 단순한 드로잉과 일러스트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와 함께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 또는 예술관과 연애관을 고백하거나 수다를 떠는 에세이를 담백하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불편할지언정 결코 외롭거나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그림은 그녀의 삶의 균형을 잡고 채워주는 힘이자 의지이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오랜 시간 공들인 바느질이 주는 깊고 그윽한 풍취가 느껴진다.
그녀의 작업은 태도의 독자성, 수수하면서도 섬세하고 간결한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어제와 내일을 염려하면서도 오늘 하루의 삶에 집중하는 생활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녀의 그림은 그림이자 동시에 일기이며 하나의 에세이이자 시가 된다. 풍경처럼 화가의 일상이 잘 버무려져 침전된다. 정교하거나 세련된 재현의 테크닉에 연연하지 않으며 드로잉과 채색과 이야기를 엮듯 이어가고 잠시 뚝 끊거나 방향을 틀며 의도적인 전략이나 계획 없이도 공감을 만들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일련의 그림과 에세이는 생활과 결합하는 시간의 아카이브를 만든다. 그녀의 아카이브는 불편함이 곧 아늑함과 멀리 있지 않고 모호한 것으로 채워지는 시간들이 사실은 매우 명쾌하기도 하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생활의 희로애락이 모자이크처럼 또는 조각보처럼 일상과 예술이 분리되기 이전으로 회귀하는 여행을 엿본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드는 과정이 곧 창작인 듯, 오롯이 자신의 시간들로 채운 채 잠시 세상을 지나가는 여행자의 야생성과 경쾌함이 있다. 그녀는 매번 디테일로 가득한 생활로 나아간다.

김노암・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