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천민정 – 행복한 북한아이들

천민정  __  행복한 북한아이들

트렁크갤러리 6.26~7.29

천민정이 이번 전시회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차적으로 왜 이와 같은 이미지들이 이 시점에 이러한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남한의 한 관객으로서 바라보기가 편치 않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지구화 시대에 북한의 독재정권과 연관된 각종 아이콘들이 흡사 한반도를 대변하는 시각문화의 상징처럼 인지되는 불편한 상황이 존재한다. 북한과 연관된 사진 이미지들이 유수의 국제 사진수상전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고, 김정은이나 김정일은 “황당한”, “미친” 등의 형용사와 동일시되면서 인터넷을 떠돌아다닌다. 이번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배경에도  북한의 건축물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호기심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얼마든지 유추해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떠한 명목에서건 북한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어 축소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부차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복잡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를 북한 독재정권이 지닌 기이함으로 단순화하는 데 따른 논란의 소지는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도 결국 북한을 독특한 방식으로 타자화하고 오히려 신비주의화하는 데에 이러한 이미지들이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든다. 이와 연관하여 전시 서문은 천 작가 작품 속 북한 어린이들은 불과 50km 남짓 되는 거리에 있는 우리들이 북한에 대하여 얼마나 상투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과연 여기서 ‘우리’를 일반화할 수 있을까? 개인 차이가 확연히 존재하지만 국내에 탈북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매체를 통해서 암암리에 북한의 삶의 모습을 접하는 일이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필자는 천작가의 사진과 회화에서 ‘김시운’과 ‘김시아’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작가의 아들, 딸들이 완벽히 유형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나치게 활기 차 보이고 오히려 자유분방해 보이는 딸의 모습은 인종적으로나 제스처에 있어서 경직된 북한 어린이의 모습을 완벽히 재생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채꼴의 태양은 마오의 태양보다는 선 메이드(건포도 상표)의 배경을 연상시켰다. 여기서 실패한 모방의 결과는 또 다른 미학적인 가능성과 문제점을 던져진다. 뒤쪽의 매스게임과 앞쪽 어린이들, 그리고 단체 유니폼이 어색해 보이는 시점에서 천 작가의 작업은 이것이 더욱더 연극적이며 반어법적인 상황(이들은 행복한가?)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준다. 나아가서 북한 어린이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천 작가의 작업을 보면서 착잡해졌다. 과연 진정으로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처한 현실이란 무엇일까?
과연 예술이 타자에 대한 연민을 그 출발점으로 해서 타자를 재현하고 연기하면서, 그것도 북한 어린이들을 연기하면서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행복한 북한의 어린이들은 북한 어린이들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무지하였던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여기서 파생되는 불편함은 단순히 자기비판의 부산물만은 아니다. 이 불편함은 북한 어린이라는 민감한 소재, 그리고 누가 그들을 위하여 종을 울려야 할지에 대한 복잡한 심정으로부터 기인했다.

고동연・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