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김성윤 – Dead Man

김성윤  __  Dead Man

갤러리 현대 9.30~10.31

김성윤의 두 번째 개인전, <Dead Man>이 갤러리 현대에서 진행 중이다. 젊지만 작업 양이 결코 적지 않은 김성윤은 이 전시에서 기존 작업의 관심을 지속하는 한편으로 약간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통해 김성윤이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김성윤은 <Authentic>이라는 제목의 지난 개인전에서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의 기법을 활용하여 초기 근대올림픽 선수 복장을 한 인물들을 그린 연작을 선보인 바 있다. 사전트라는 화가와 초기 근대올림픽 사이에는 시기 외에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화가는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를 임의적으로 결합하여, 낭만주의 회화의 통념을 비튼다. 그 통념이란 소재와 기법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그림 안에 화가의 독창적 내면이 표출된다는 생각이다. 김성윤의 작품에 독창성이 있다면 그것은 화가의 필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합하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여전히 사전트의 기법을 따라 하지만, 지난 전시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가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는 개별 작품의 소재 간 개연성이 훨씬  약해진 경향을 보인다. 지난 전시에서는 각각의 작품이 다루는 소재들이 초기 근대올림픽의 종목들이었다면, 이번 전시에는 소재를 포괄하는 하나의 주제가 없다. 예를 들어 그는 사전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 에드 루샤(Ed Ruscha) 등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를 그리거나, 존경하는 화가나 동료 화가의 작품에 나오는 소재, 혹은 자신이 이전부터 취하던 소재를 다뤘다. 이 소재들 간에 공통점이 있다면, 이는 그의 주변에 있다는 사실뿐이다. 대신에 이번 전시에는 이 소재들을 묶는 하나의 정서가 있다. ‘DEAD MAN’이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전시는 전체적으로 묵시록적인 정서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개별 작품들은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물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다음 그림으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예를 들어 호크니, 발데사리, 루샤를 다룬 <좀비를 위한 연구> 연작에서 이 유명 화가들은 눈이 충혈되고 입 주변에 피가 묻어 있는 괴기스러운 좀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존 싱어 사전트>에서 사전트는 공포영화에서 좀비를 퇴치하는 도구를 양손에 들고 한 사람을 위협하고 있다. 원색의 화려한 모습으로 유쾌하게 그려지곤 하는 김봉태 작가의 ‘댄싱 박스’가 김성윤의 작품에서는 생경한 조명을 받아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 속에 그려졌다.
그럼 개연성 없는 인물과 사물을 통해 묵시록적인 정서를 만들어낸 김성윤의 저의는 무엇일까? 작가노트에서 그는 “묵시록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결핍된 것으로 인지하고 그에 대한 좌절감이 동력이 되어 만들어진다. 절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 파멸 뒤에 무언가를 희망한다는 점에서 묵시록은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고 썼다. 이번 전시의 묵시록적 정서는 현실의 어떤 절망에 대한 메타포이며, 그가 이 절망을 드러내는 것은 화전민이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태우듯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긴 해도 그가 생각하는 현실의 절망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살아있는 화가들을 좀비로 만든 것은 낭만주의 회화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현실에 대한 메타포일까? 자신의 기존 작업에 영감을 준 화가를 좀비 퇴치사로 만든 것은 자기 회화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것을 예보하는 것일까? 그의 다음 작업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김시습·미술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