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피 – 내 얼굴의 전세계

이피  __  내 얼굴의 전세계

갤러리 아트링크 9.23~10.14

이피의 <내 얼굴의 전세계>는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핑크색 작품의 제목이면서 전체 주제를 집약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몸과 얼굴로 대변되는 성적이미지와 정체성, 환영과 초현실을 섞은 ‘장소’에 시각적인 강렬성을 갖춘 세계상이 펼쳐져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피에 따르면 <내 얼굴의 전세계>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장소”이자  “복잡다단한 시간과 사건, 인물, 관계, 사회구조가 새겨져”있다. 그런 ‘장소’의 몸들은 그 구축의 방법에서 부분과 전체의 조합이라는 ‘분절적 재현’의 조각을 사용한다. 만개한 꽃처럼 생명 발화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조각들은 세계의 욕망을 온몸에 부착한다. 인형과 시계, 알약과 향수, 목걸이와 입술, 꽃병과 장미 등 온갖 사물이 혼합 병렬된 이 다층적인 조각은 다양한 이미지와 형태, 장식, 패턴을 융합한다. 그것은 동일하지 않은 공간과 사건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임을 말하고 있다. <내 얼굴의 전세계>는 사물과 타자가 동시에 공존하는 다수의 공간과 그 타자가 나임을 보여주는 전략을 취한다. 이 공공의 타자들을 내 몸에 부착함으로써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타자를 감응하는 나의 몸이 부풀어 오르고 거대한 감각적 실체가 되어 물질화되는 동안 <내 몸의 전세계>와 <내 얼굴의 전세계>는 인간사원의 주술이나 기형의 기념비가 되었다.
이피는 내면이라는 주관이 물질과 타자에 대한 생생한 감응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그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전환시킨다. 가령 다리가 여덟 개인 문어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심해의 발광체와 같은 아름다움이 뭍으로 나오면 흉물스러운 것으로 변하는 것을 <내 몸의 전세계>와 연관시킨다. 심해가 무의식의 깊은 미망이고 여덟 개의 다리는 육근(六根, 眼耳鼻舌身意)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면 이피가 만든 환원은 거대한 무의식이 부풀어 오르는 기형의 어떤 것인가? 그러나 이피의 드로잉은 그러한 물질적 기형과 상상의 이면에 기계장치로서의 몸과 메커니즘이 순환한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작동되는 환영은 ‘자기’ 라는 탐구대상이 명확히 있는 환영이다. 그러므로 이피는 몸이라는 기계장치 속에 숨은 감각의 이면을 탐구하면서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어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금빛 세안>은 화장실에서 세수하는, 온몸이 금빛 물방울로 덮여있는 여인(독신기계)의 감각적 환영을 보여준다. 그것은 거울을 통한 나르시스이면서 모든 것이 흐르는 사물의 틈을 보여준다. 온몸에 흐르는 물은 육화가 진행되는 타자의 몸이면서, 물질의 몸이고 내 몸의 전세계이다. 이 사물의 틈에서 이피가 본 것은 색으로 표현한 존재 전체의 세계이기보다는 존재의 갈래를 보여주는 조형요소와 장치들, 부분과 전체가 기계처럼 환원하는 메커니즘이다.
이 환원에서 이피가 진정으로 보여주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핑크로 표현된 육체에 가까운 색과 물질성, 나와 사물의 무분별, 이 모든 세계상의 전체를 아우르면서 구현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물들을 단일한 전세계로 보려는 욕망을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이피의 작업은 지적인 미술의 관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사물과 존재의 색에 가까운 마력적인 핑크의 현상학에도 불구하고 이피의 작품은 그 단일성으로 인해 너무도 이성적이고 경쾌하다. 역설적으로 타자마저 단일한 어떤 것으로 빨아들이는 강력한 접착이 전세계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류철하·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