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네오산수
네오산수
대구미술관 2.11 – 5.18
동양에서 긴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산수화는 특정한 대상으로서의 소재를 넘어서 그리는 사람들의 정신적 자세가 집약된 전통이다. 옛것이 현재 속에서 구현되지 않고 박물관 속에 있으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전통은 과거가 지금 일상 속에서 계속 존재하는 현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예컨대 우리 일상에서 멀어진 한복은 하나의 의례로만 존재할 뿐 더 이상 전통이 아니다. 산수화는 어떤가?
산수화가 예술체계 속에서 전통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은 그 제도와 정신이 온전히 이어지는 것이지, 장르적 양식이 교조적으로 보존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생각도 틀리지 않다고 본다. 산수화뿐 아니라 예술 전체에 관해서 우린 통일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바로 그런 점에서, 나는 산수화 개념을 엄밀하게 정해진 기준보다 훨씬 넓게 잡는 쪽이다. 그런데 대구미술관의 <네오산수전>은 이 도식 안에서 애매한 지점에 있다.
전시 제목이 ‘새로운(neo) 산수’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지난 것도 있단 말이다. 그런데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과거의 형식을 중시하는 정통적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새로운 게 아닌가? 이 전시는 새로운/낡은 도식으로 평가되는 현대미술의 언로 안에서 새로움을 선언한다. 마치 ‘새 정치’가 부동층에 속한 유권자를 향한 수사적 용어인 것처럼, 새로운 산수는 정통 산수화를 고수하려는 진영과 형식 실험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진영, 두 편에 속하지 않는 시민들에게는 참신한 표제로 다가설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미술관이 품어야 할 한 가지 미덕은 충족되는 셈이다.
그래도 논의할 주제는 남는다. 새로움에 의해 작동되는 현대미술 속에서 이미 존재하던 ‘새로운 산수화’와 ‘새로운, 새로운 산수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만약 있다면 그 차이는 뭘까? 전시에 참여한 31명의 현대미술가는 그 재진입(re-entry)의 체계 질서를 극단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작가들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네오산수전>은 현대의 과학·기술로 인하여 크게 바뀐 인간의 미적 태도를 끌어들인다. 인공과 자연의 대립 구도 또한 전시에 출품된 뉴미디어나 형식 실험 미술이 굳이 아니더라도 예술사에서 오래된 가정이다. 이처럼 고전적인 예술의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긴 하다.
윤규홍・갤러리 분도 아트디렉터, 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