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달의 변주곡

달의 변주곡
백남준아트센터 2. 26 – 6.29

백남준의 1965년 작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보름달에서 그믐달로 이울어가는 모습을 12개의 TV로 재현한 작품이다. ‘텔레비전’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달은 예나 지금이나 ‘원격시(遠隔視)’의 대표적인 대상이다. 무엇보다도 달의 특성은:1) 모든 사람이 어디에서나 그것을 볼 수 있고, 2) 끊임없이 변화하며, 3)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다. 지구의 생명은 달의 영향으로 생겨나고 진화했다. 그것이 조석간만을 통해, 순환의 주기를 통해 지구의 표면을 휘젓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의 운동성은 전혀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인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비약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백남준이 달을 떠올리면서 그것의 모습을 일련의 연속사진으로, 아니 연속 비디오로 다루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와 순환의 상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사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실제의 달을 촬영한 것이 아닌, 진공관 TV에 자석을 대거나, 구형으로 생긴 물체를 촬영한 것이다. 이번 <달의 변주곡>에 전시된 작품은 2000년에 새로 제작된 것으로, 1997년에 제작된 비디오가 추가되어 총 13개의 TV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기획자인 이채영 큐레이터는 달의 ‘느린 시간성’에 방점을 찍었다. 달은 지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의 차고 이지러짐 자체가 한 달이라는 시간대를 주기로 느리게 전개된다. 이러한 느린 움직임은 특정한 시간적 한계점까지 지연이 이루어질 때 시각적으로 대상이 정지되어 있다고 느끼게 한다. 달의 스펙터클은 그것의 정지 혹은 극단적 느림에서 비롯된다. 이것을 ‘가시-하 지각(infra-perception)’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review2ok이번 전시에서 특히 놓쳐서는 안될 작품은 벨기에 출신 다비드 클라르바우트(David Claerbout)와 히라키 사와(Hiraki Sawa), 그리고 안규철의 작품이다. 다비드 클라르바우트는 2012년 미디어시티 서울에서 로 소개된 바 있다. 이번에 전시된 2013년 작 에서도, 한 장의 사진을 수많은 각도에서 본 입체적 이미지로 바꾸기 위해 그는 각각의 인물들을 25개의 이미지로 재촬영하여 같은 공간 안에 재구성해 넣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매우 느리게 움직이면서 한 장면을 바라본 것과 같은 동영상이 만들어지는데, 클라르바우트는 여기에 시선의 추상적 이동이라는 섹션을 추가함으로써 매우 형이상학적인 시선을 만들어냈다. 비를 피해 모여 있는 인물들의 군상을 떠나 비에 잠긴 흙탕길을 따라 이동하는 느린 카메라의 움직임은 마치 근원적 상태로 돌아간 것 같은 세계의 물질성을 보여준다. 느린 움직임을 통한 또 다른 작품인 은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 기법으로 그려낸 가상적 풍경의 가상적 조합으로 이어지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수작이다. 느린 카메라의 이동을 따라 배경음악과 함께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자연의 풍경들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클라르바우트가 ‘시간의 단면’을 다루기 위해 스틸이미지로부터 출발하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히라키 사와의 2007년 작 역시 이 전시의 중요한 부분이다. 총 6개의 패널 위에 투사된 사와 특유의 굵은 입자(grain)들로 이루어진 영상들은 각각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낡은 벽시계 위에서 현재의 시간을 보여주는 <파편> 외에 짙은 흑백영상들로 이루어진 <새와 바다>, <이끼>, <벽에게 말을 걸다>, <순간을 위하여>, <돌아오는 길> 등의 제목이 달려 있다. 극도로 아름답고 시적인 풍경이나 적요한 실내장면을 보여주는 뒤의 5개 영상에서는 언뜻언뜻 풍경 속에 원자력발전소의 모습이 나타난다. 나중에 일어날 3·11 재난을 놀랄 만큼 묵시적으로 예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상작품은 실제로 사와의 고향을 떠올린 것이라고 한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듯한 시간의 흐름은 이 작품에서도 대기 속에 가득 찬 흐릿한 입자(particle)들로 흩어지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규철의 설치작업들 가운데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2014년 작 <달을 그리는 법>은 이 전시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으로 보인다. 밝은 전시장 안에서 여러 개의 둥근 거울을 이용해 조명을 반사시켜 한곳으로 모은 결과, 벽 위에는 예민하고 둥근 달 모양의 빛이 떠오른다. 이 시적이고 아름다운 설치작품은 그 간결한 형식만큼이나 뚜렷하게 달 모양의 빛을 한곳에 중첩시키는 작업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느림은 여기서 이 중첩의 퍼포먼스를 가리키며, 동시에 여러 개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달빛의 흐릿함 속에도 깃들어 있다. 전시장 야외의 잔디 위에 파란색 글씨로 크게 쓰인 는 전시기간 중에 자라게 될 잔디에 덮여 서서히 사라진다고 한다.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선언된 파릇한 ‘새로운 삶의 첫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봄날의 아름다운 생명감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선언이 삶으로 변해가는 느린 시간을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 역시 안규철의 시각적 시(詩)세계를 잘 요약하고 있다.
이 외에, 료타 쿠와쿠보의 2013년 작 는 미디어시티 서울에서 선보인 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안세권의 장기 프로젝트인 <서울 뉴타운 풍경> 연작은 전시 주제를 통해 또 다른 측면에서 작품의 해석을 시도했다는 장점을 보여준다. 조소희의 설치작품들 가운데에선 <비과학적인 촛불의 시학 II>가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속에서 시간의 지각을 손에 잡힐 듯 보여주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달의 변주곡>은 주제의 해석만큼이나 개개 작품의 적확함과 수월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롭게 느끼게 하는 전시라고 하겠다. 

유진상・계원예대 융합예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