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센서십 – 제7회 무브 온 아시아

센서십 – 제7회 무브 온 아시아
대안공간 루프 2.13 – 3.21

아시아 12개국에서 21명이 보내 온 영상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검열이었다. 대체로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밖으로든 안으로든 ‘검열’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과 그런 현실의 이면에 도사린 권력·욕망·학살·자본·공포 또는 무관심·관음증·거리두기에 대해 다룬다. 영상이 현실을 반영하는 미디어라면, 그 내부에서 퍼포밍하는 예술가의 정체성은 고발자이거나 풍자를 다루는 광대이거나 혹은 진실 고백자들이다. 고발과 풍자, 고백의 언어는 그러므로 미디어의 이면에서 공명하는 카오스에 가깝다.
한 작가 한 작품의 언어는 오직 하나의 개념을 검열의 공명언어로 타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 <징후들과 1세기>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솜폿 칫께손퐁은 <질병과 100년의 세월> (2008)을 제작했는데 그는 <징후들과 1세기>에서 검열로 삭제된 6편의 장면을 모아서 다시 서사를 부여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떤 상황도 불순해 보이지 않는 영상들이 왜 검열을 받고 삭제당해야 하는지를 듣는 과정에서 관객은 소름 돋게 될 것이다. 사실 그 이유란 것들을 보면 1960~70년대 한국사회에서 벌어졌던 대중가요에 대한 검열요인들처럼 그것은 매우 가벼운 키치적 냉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독재)권력이 행한 검열놀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전시 <검열>이 던지는 충격은 작품들이 현실의 사건들로부터 미학적 사건을 전유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마디로 출품작 모두 작가들이 살았던/살고 있는 그들의 현실을 미학적 리얼리티를 뿌리로 하고 있다.
예컨대 타이완 작가 두페이스의 <위산(玉山)에서의 모험>이 1947년 2・28사건을 모티프로 한 것이라면, 캄보디아 작가 크바이 삼낭은 <뉴스페이퍼 맨>을 통해 프놈펜의 벙칵 호수 개발문제를 다루고 있다. 삼낭은 대대로 호숫가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4000여 가구의 삶을 내쫓고 호수를 매립한 대기업의 ‘개발 폭력성’을 이야기한다. 중국의 페이준은 게임의 인터페이스 기능을 차용해 만든 에서 소통의 공론장 문제를 공론화한다. 민주주의의 공론장을 허락하지 않는 중국 정부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조차 검열해 온 지 오래다. 중국의 그런 현실을 인지한다면 페이준이 펼치는 게임 인터페이스 상의 ‘민주적 수다’가 무얼 뜻하는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일한 문제의식으로 보여주는 루양의 개구리 춤은 더 충격적이다. 그는 해부학 실험실에서 구해 온 개구리 사체에 센서를 부착, 비트에 맞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형국을 재현한다. 뇌와 몸통의 일부가 없는 이 잔혹한 날몸뚱아리가 추는 춤이야말로 통제사회가 요구하는 유토피아일 것이다.
일본에서 온 는 후쿠시마 원전의 이야기다. 원전건물 안으로 들어간 한 사내가 CCTV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통제된 그곳으로 들어가서 카메라의 눈을 직시하며 손가락을 치켜 든 사내. 익명의 이 사내가 펼치는 행위는 검열과 통제의 위험사회에 대한 ‘맞짱’일지 모른다.

김종길・경기문화재단 기획팀 뮤지엄운영파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