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치규 – 여백에 말 걸다
오치규 __ 여백에 말 걸다
가나인사아트센터 10.29~11.3
오치규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 1층은 원색의 에너지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음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두꺼운 선이 드로잉 된 원색의 평면작업과 그 원색의 화면을 바탕으로 한 동일한 원색의 입체 작품 그리고 흰 바탕에 파란 선으로 드로잉 된 평면과 그를 근간으로 한 도자기들로, 한 작가의 작품으로는 다소 많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의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작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고 현재 충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현역 디자이너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한 그의 작업이 단순히 회화나 판화 등 평면작업을 넘어 도자기와 입체작업에까지 이르른 것으로 볼 때 그의 예술을 향한 지속적인 연구와 창작에의 열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작가는 그간 수차례의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듯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물이나 대상들에서 소재를 찾고 있다. 최근 그의 평면작업은 화사한 파스텔 톤에서 벗어나 강렬한 원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보다 단순화하여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내적 조화라는 화면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의 절제를 통한 최소한의 이미지로 선과 색, 면이라는 회화의 기본 구성 요소들이 적절히 배합되고 여백과 어우러져 내러티브하고 서정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가 원색으로 된 단색조의 화면, 그중에서도 오방색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한국적인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인간과 자연의 대결 구도가 아닌 모든 자연의 생명체와 우주가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동양적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선과 여백을 중시했던 동양미술의 전통적인 방식을 수용하고 그것을 변환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얻어낸다. 정적이며 소박한 한국의 미와 정서가 스며있는 동시에 색채와 장식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화면이 바로 그것이다. 사물을 본 순간의 감정을 제한하고 선, 색, 면의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만 표현된 화면은 적게 칠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자체를 돋보이게 하여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작가가 가진 에너지의 원천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에 있다. 생과 사, 만남과 헤어짐, 일상의 희비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연들을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작가로서의 시각이다. 수많은 사람이 만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가듯 이러한 모든 것으로부터 소재와 영감을 얻어내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화면을 완성해간다. 그의 작품 속 여백들은 비어있음으로 해서 보는 이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상상과 상념들로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말하듯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의 본질을 봐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여백은 그저 빈 공간이 아닌 못다한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손소정·롯데갤러리 대전점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