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권경환 – 마르기 전 규칙
권경환 __ 마르기 전 규칙
일민미술관 10.17~12.7
권경환 개인전 <마르기 전 규칙>은 ‘마르기 전’이라는 완결 전 작업과정의 상태에 빗대어 모호함과 모순된 상태를 의미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합의된 작가만의 ‘규칙’들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르기 전이라는 작업과정이 화이트큐브 안에서 다소 현장감 넘치는 무대로 연출되었다.
작가는 종이, 끈, 천, 대나무, 비닐봉지, 시멘트 등 저렴하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작업을 하다가 우연찮게 발생되는 다양한 변형과 변용, 의도되지 않은 반복 작업행위의 흔적과 파편,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유희를 무대 위에 소품처럼 펼쳐놓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매체를 제한하여 다양한 잉여 생산물들의 스펙터클함을 약화시킨다. 이것은 일상의 현실 속에서 작가로서 체감하게 되는 존재론적 저항이며 앙상하고 뾰족한 잉여의 모습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장치다. 또한 의도된 가내수공업적 작업행위와 상당히 공들인 정교한 수공작업의 대비를 통해 작가는 예술의 정치적 과정에 주목하며 내장된 예술의 위계화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다.
작가 권경환은 그동안 대중매체나 기호 이미지에 개입하여 수동적이고 우둔한 소비자로 전락한 작금의 사회에 비판적 시선을 던져왔다. 2008년 토탈미술관에서 전시한 <물론,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라는 작품은 일련의 정교한 작업과정을 조작함으로써 스펙터클 이미지 사회의 모순을 재치 있게 지적하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권력, 전쟁, 죽음의 구체적 이미지를 직접적 방법으로 채집, 드러내었던 이전 작업과는 다르게, 2013년 몽인아트스페이스 레지던시를 거치면서 이번 작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태도와 은유적이고 쉽게 의미를 내비치지 않는 개념적인 작업방식을 보인다. 일민미술관 1층을 채운 제한된 미디어들의 오브제 설치는 시장체제에 흡수되어 반성적 사유와 주체적 삶을 살게 하는 사회적 역할을 상실한 미디어에 노골적 회의감을 드러내며, 환상을 부여잡은 채 모든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훈육당한 현대인의 모습에 비판적 시선을 던진다.
<변화와 통일, 균형과 대비를 통해 팽팽하게 비닐봉지를 펼치시오>, <부서지기 쉬운 조각>, <의자에 앉는 방법>, <불순한 합의> 모두 작가의 진지한 작업태도, 작업방식을 통한 심오한 성찰,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섬세함이 있다. 작가의 날선 감각의 영상, 설치, 조각작품들은 무대 위 소품으로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일종의 풀리지 않는 어려운 암호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한 가지로 읽히지 않는 작품의 난해함은 다소 관객을 불편하게도 하지만 동시에 관심과 의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켜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고 사유하게 하여 그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번 개인전과 함께 일민미술관 2층에서는 시적인 제목들로 구성하여 선정된 진시우, 류장복 작가의 전시가 함께 열렸다. 권경환 설치와는 또 다른 동시대문화에 비판적인 정서를 띠고 있는 진시우 작가의 난해한 개념적 오브제들과 – 동시대성을 드러내는 물질성, 예를 들어 양철통, 까만 비닐봉지, 빨간 테이프, 번쩍이는 노란표면 등 우리가 혐오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클리셰는 조금씩 어긋나 틈을 드러낸다 – 류장복의 어둡고 짙은 철암의 풍경은 서로 결을 달리한다. 전체적으로는 세 전시가 ‘시각문화의 인문적 담론생산’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다소 유연하지 못하게 구성된 느낌이다.
오세원·문화역서울 284 운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