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Esprit Dior-디올 정신展〉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6.20~8.25
크리스찬 디올의 꾸뛰르 하우스, 문을 열다
화려하고 감각적이다. 크리스찬 디올의 패션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Esprit Dior-디올 정신전>(6.20~ 8.25)이 주는 첫인상이다. 이 전시는 상하이 도쿄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를 찾았다. 이번 전시의 수석 큐레이터인 플로렌스 뮐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이 패션 문화 건축 등 창작활동의 수도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서울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이번 전시는 크리스티앙 디오르부터 이브 생 로랑, 장 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까지 크리스찬 디올의 역대 디렉터들의 의상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작가 6인(김동유 김혜련 박기원 박선기 서도호 이불)과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도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이 주를 이루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상하이와 도쿄에서 열린 전시와 비교해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전시는 ‘파리’ ‘디올 아틀리에’ ‘베르사유: 트리아농’ 등 10개의 소주제로 구성했다. 디올의 화려한 의상과 그와 어울리는 작품의 조화는 시각적 스펙터클로 관객을 압도했다. 참여 작가 선정에 대해 뮐러는 “한국 미술 전반에서 다양한 소재와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를 골고루 배치하기 위해 애썼다”고 말하며 작가들이 “디올 세계의 은밀한 내용을 잘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덧붙여 그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찾은 미술과 패션의 접점을 강조했다. “비밀스러운 내면을 담아내는 작가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서도호의 <몽테뉴가 30번지 파사드+페시지+디올>은 디올의 꾸뒤르 하우스 탄생의 상징적 공간을 투명한 천을 통해 파사드를 넘어 집 내부까지 투과할 수 있게 대규모로 설치했다. 비밀스러운 내면을 담아내려는 노력은 패션계의 모습과 유사하다. 패션 공방도 마치 연금술의 과정처럼 복잡하고 은밀하다. 작은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로 구성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초상화를 선보인 김동유는 전체 수작업으로 정말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긴 제작기간과 장인정신을 요한다는 것은 오뜨꾸뛰르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오뜨꾸뛰르 전시는 시각미술의 옷을 덧입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브랜드 홍보를 교묘히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파인아트를 어설프게 혹은 끼워 맞추기식으로 더하면서 전시내용과 메시지가 모호해지기 쉽다. 그러나 <Esprit Dior-디올 정신전>은 국내에서 최근 잇따라 열린 패션전시 중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디올’이 지닌 오뜨꾸뛰르의 화려함과 그와 어울리는 작가의 신작을 함께 배치하고 패션 전시만이 구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디스플레이를 더했다. 시각적 스펙터클로 관객을 압도하며 상업성과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디올 가든’ 섹션의 경우, 김혜련의 12폭 회화인 <열두장미·꽃들에게 비밀을>로 벽의 한 면을 가득 채우고 디올의 덩굴 장식 무도회 드레스, 은방울꽃 자수로 장식한 헤어네트 머리장식 등을 중앙에 세웠다. 여기에 천장과 바닥에 하늘빛 화면을 배치해 정원의 느낌을 살렸다. 비록 일차원적인 디스플레이일 수 있지만, 시각적 유흥은 탁월했다. 또 디올의 상징적인 패션으로 여성의 실루엣을 강조한 ‘뉴룩’을 입은 마네킹을 시대순으로 일렬 배치하며 그 맞은편에 전면 유리를 두어 마치 런웨이 양쪽에서 모델이 걷는 듯 보이도록 한 ‘디올 얼루어’ 섹션의 디스플레이는 ‘쇼’적으로도, ‘뉴룩’의 역사를 전달하는 데도 탁월하다.
물론 동시대 작가들과의 협업 외에 ‘디올의 정신’을 드러내는 일반적 구성 방정식도 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당대 교우했던 작가들과 함께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전시한 ‘디올과 예술가 친구들’ 섹션은 예술과의 패션의 고리를 드러낸다. 물론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경우는 미술계와 보다 직접적인 체험적 경험이 있다. 그는 패션계 입문 전, 1928~1934년까지 2개의 갤러리를 운영하며 미술계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또한 젊은 시절 ‘올랑 프티트’라는 발레작품의 디자인, 세트, 작곡까지 직접 했을 만큼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 뮐러는 이점에 주목했다. 디오르는 피카소처럼 이미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지만 주로 젊은 작가들을 도왔다.
“당시 젊은 작가였던 자코메티의 개인전, 주목받지 못하던 달리의 3번째 개인전이 디오르가 운영하던 갤러리에서 열렸다. 그곳에서 판매한 자코메티의 <Le Table>을 현재 퐁피두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에피소드는 그의 예술적 안목을 보여준다”며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예술적 감각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 큐레이팅의 중심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각 주제별로 뚜렷이 구분되는 공간 활용 방법도 눈에 띈다. DDP는 이미 다수의 패션 전시가 열린 공간이다. 자칫 유사한 디스플레이로 비슷한 시각적 패턴을 제공하기 쉽다. 둥근 형태의 건물이라 회화작품은 가벽을 설치해 디스플레이할 수밖에 없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체가 조망되는 등 전시장으로서 구조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뮐러는 “천장이 높고 매우 기념비적인 건물이란 점이 오히려 좋았다. 공간이 넓다보니 마네킹을 세웠을 때 원근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어서 웅장한 연출이 가능했다. 패션 전시에서 마네킹은 하나의 조각이다. 넓은 공간은 공간감까지 느낄 수 있으므로 오히려 전시를 꾸리는 입장에서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웹사이트(espritdior.com)를 통해 사전 예약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또한 전시와 동시에 크리스찬 디올은 크리스챤 드 포잠박이 설계하고, 피터 마리노가 인테리어를 맡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하우스 오브 디올’을 서울 강남구 삼성로에 오픈했다.
임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