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MILANO & VENICE
Fondazione Prada
Serial Classic | Portable Classic | An introduction | In Part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들이 속속 미술관을 세우는 가운데 밀라노에 프라다재단이 세운 폰다지오네 프라다가 5월 9일 정식 개관했다. 900여 명의 미술계 인사가 운집한 가운데 화려한 개막식을 가진 이 미술관은 총 9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중 3개 전시장을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맡아 설계했다.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컬렉션을 자랑하며 이탈리아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폰다지오네 프라다를 방문했다.
전복적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예술실험, 날개를 달다
이영란 전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그날 오후 미우치아 프라다(66)는 ‘Bar Luce’(바 루체)에 있었다. 베니스에서는 비엔날레가, 밀라노에서는 엑스포가 막 개막한 시점이었다. ‘Bar Luce’(Luce는 ‘빛’이라는 뜻)는 밀라노 남쪽에 새롭게 조성된 ‘Fondazione Prada’(폰다지오네 프라다) 내에 위치한 아담한 카페다.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프라다(PRADA)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예술애호가인 미우치아는 폰다지오네의 공식 개관(5월 9일)을 하루 앞두고, 모두 9개에 달하는 공간(건물)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카페를 점검 중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청하며 “당신의 오랜 꿈이 결실을 보았다. 감회가 어떠냐”고 묻자 미우치아는 “아, 내일부터 관람객을 맞는다. 이 시대 예술의 의미에 대해 늘 질문해왔는데 여기(Fondazione)에서 사람들과 함께 그 답을 찾고 싶다”고 했다. 미우치아는 미국의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47.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 연출)에게 카페 인테리어를 맡겼다. 이에 앤더슨은 1950, 60년대 이탈리아 영화풍으로 실내를 고졸하게 꾸몄다. 천장과 벽은 밀라노 도심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 ‘갤러리아 빅토리오 엠마누엘레’(아케이드)가 프린트된 월페이퍼로 장식했다.
명품업계에서 ‘별종의 패트론’으로 꼽히던 미우치아는 보다 체계적인 예술공헌을 위해 1993년, 남편(파트리지오 베르텔리 회장)과 함께 프라다재단을 만들었다. 또 밀라노시 남쪽 라르고 이사르코(Largo Isarco) 지역의 낡은 증류주공장도 사들였다. 언젠가는 ‘아트’가 살아 꿈틀대는 흥미로운 사이트로 바꿔놓겠다는 꿈을 갖고서 말이다.
그러곤 마침내 1만9000m2 규모의 미술관 콤플렉스를 조성했다. 우리로 치면 구로공단 같은 곳에, 대단히 혁신적인 아트전진기지를 만든 것이다. 뻔한 것, 제도권의 것을 거부하고 언제나 ‘도전과 전복’을 추구해온 프라다 부부의 예술실험은 국제 미술계의 이슈가 되곤 했는데 이번에 그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된 셈이다. 도대체 이 범상찮은 커플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들의 컬렉션엔 어떤 작품이 포진해있을까 궁금했던 미술계로선 메가톤급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카타르왕국의 알 마야사 공주, 악동작가 데미언 허스트와 마우리치오 채틀란, 제프 쿤스,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 오쿠이 엔위저, 다사 주코바, 카를라 소차니 등 900여 명의 유명인사가 이사르코로 몰려들었다.
1910년대에 지어진 옛 술공장의 사무실과 실험실, 창고, 술탱크 등 7채 건물의 리노베이션과 3채 건물의 신축은 미우치아의 오랜 파트너인 렘 쿨하스(71. OMA 대표)가 맡았다. 쿨하스와 OMA는 용도폐기된 건물의 내외관을 되도록 원형 그대로 살려 전시실과 어린이도서관 등을 만들었다. 또 본격적인 현대미술 기획전시를 위해 앞마당에 ‘포디움’과 ‘극장’을 새로 추가했다(층마다 층고가 달라지는 거대한 ‘탑(Torre)’은 공사 중). 따라서 프라다의 예술캠퍼스는 연대가 다르고, 높낮이와 형태가 다른 건물들이 미묘하게 어우러지며 색다른 화음을 선사한다. 모두 6개 섹션으로 이뤄진 전시 또한 마찬가지다.
장관을 이루는 것은 포디움(podium)이다.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초현대식 유리건물인 포디움 1,2층에선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조각들이 어떤 방식으로 변주됐는지를 ‘독창성과 모방’이라는 상반된 맥락에서 살펴본 〈Serial Classic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베니스에서 개막된 〈Portable Classic전〉과 짝을 이룬다.
살바토레 세티가 큐레이팅한 이들 전시는 고전조각은 물론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조각과 현대의 재현작, 미니어처가 총망라돼 서양미술의 뿌리인 ‘클래식’과 이를 차용한 예술 간의 연결점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위대한 걸작과 유실된 원본, 그에 기반을 둔 무수한 복제본 및 재현작을 다각도로 훑었는데 특히 그리스조각 ‘원반 던지는 사람’과 로마시대의 ‘웅크린 비너스’, 아폴로 및 헤라클레스 상은 다양한 시리즈가 나와 눈길을 끈다. 카피본 제작시 적용되는 법칙(캐논)과 기술도 공개돼 흥미롭다. 양 전시에 나온 조각만 150점이 넘는다.
옛 술공장의 작업실을 개조한 남쪽(sud)갤러리와 너른 창고갤러리에서는 프라다의 ‘지난 25년 컬렉션’을 집대성해 보여주는 〈An Introduction전〉이 막을 올렸다. 프라다의 컬렉션은 1970년대 예술영역에서 시작해, 뉴다다이즘을 거쳐 미니멀아트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그중 이번에 공개된 70여 점의 회화와 설치작품은 미우치아 컬렉션의 방향성을 감지케 한다. 이브 클라인, 피에르 만조니, 도널드 저드, 바넷 뉴먼, 에드워드 케인홀즈,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이 나왔다. 특히 마지막 전시실의 자동차 설치작업은 가히 압도적이다. 우아한 롤스로이스를 검댕이로 만든 뒤 새 깃털을 흩뿌려놓은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작업과 월터 드 마리아, 사라 루카스의 자동차 작업은 대단히 전복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북쪽(nord)갤러리의 〈In Part전〉은 전체와 부분 간 함수관계를 성찰한 전시다. 타이틀은 루치오 폰타나와 피노 파스칼리의 조각난 바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명명됐다. 만 레이, 프란시스 피카비아, 로버트 라우센버그, 리처드 세라, 브루스 나우먼, 존 웨슬리,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회화, 사진, 설치, 비디오작업을 만날 수 있다.
더없이 매혹적인 동시에 유용하다
프라다의 새 캠퍼스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Haunted House(유령의 집)’이다. 옛 건물 전체에 순금(gold leaf)을 입혀 유난히 도드라지기도 하지만(쿨하스는 ‘의외로 돈이 많이 들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4채 건물이 하나로 조합된 갤러리에는 놀라운 통찰력에 기반을 둔 작품들이 들어찼다. ‘유령의 집’이라는 이름도 미우치아가 지었고, 로버트 고버와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을 선별해 영구 설치한 것도 그녀다. 인간의 몸과 공공질서, 섹슈얼리티, 종교와 개인을 다룬 ‘똑 떨어지는 작품들’은 관람객의 의표를 여지없이 찌른다.
그러나 대중이 가장 환호하는 공간은 3개의 장엄한 갤러리로 이뤄진 ‘Cisterna’이다. 100년 전 증류주 탱크가 있던 공간에는 에바 헤세, 피노 파스칼리, 데미언 허스트의 정방형 작품(큐브)들이 자리를 잡았다. 전시타이틀은 3부작을 의미하는 ‘Trittico’. ‘부드러운 조각’의 작가 에베 헤세의 <케이스2>, 파스칼리의 매력적인 1960년대 설치작품 <1입방미터의 흙>, 대형수조 속에 산부인과 수술대와 진료탁자(수술용 메스에 진주목걸이와 금반지가 놓여있다)를 설치하고 수백 마리의 열대어를 풀어넣은 데미언 허스트의 <Lost Love>를 감상할 수 있다. 인간존재와 그를 둘러싼 조건을 탐색한, 서늘한 작업이다. 극장에서는 로만 폴란스키에게 영감을 준 이미지들을 찾아나선 필름이 상영되고 있고, 지하 공간에는 토마스 데만트의 묵직한 설치작업이 자리를 잡았다.
프라다의 아트캠퍼스는 근래들어 명품 패션하우스들이 너나없이 예술공간을 오픈하고 있어 별반 새롭지 않을 수 있다. ‘이미지 제고를 위한 흔한 전략’으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폰다지오네 프라다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우선 장소다. 라르고 이사르코는 도처에 후기산업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후미진 지역이다. 프라다 폰다지오네도 겉으로 봐선 다른 공장들과 잘 구별되지 않는다. 담벼락에 현재의 기획전을 알리는 스크롤 전광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아트월드’가 펼쳐진다.
다음으론 재단과 기업 간 철저한 선긋기가 차이점이다. 프라다재단은 출범 초부터 ‘브랜드(비즈니스)와 아트는 완전히 별개’임을 강조해왔다. 미우치아는 아트에 비즈니스가 얽히는 걸 무척 싫어했다. 루이비통이 ‘예술과의 협업’을 통해 큰 실익을 거뒀고, 샤넬 또한 자하 하디드와 함께 세계를 순회하는 ‘모바일 아트프로젝트’를 펼치면서 각국의 미술가들에게 샤넬의 2.55핸드백을 작품화해줄 것을 요구한 데 반해 미우치아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선을 긋는다. 새로 조성된 밀라노 폰다지오네는 물론이고, 베니스 전시장 어디에서도 프라다 로고를 찾아볼 수 없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예술 자체로 존재해야지, ‘프라다를 위한 예술’은 그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단 설립 이래 미우치아는 뜻 맞는 예술동지들과 똘똘 뭉쳐 내밀하게 활동해왔다. 제르마노 첼란트(큐레이터)와 렘 쿨하스(건축)가 그들로, 이들 삼각편대는 ‘컬트집단’이라 불릴 정도로 기이한 프로젝트들을 터뜨려왔다. 프라다는 1990년대 초부터 아니시 카푸어, 루이스 부르주아, 샘 테일러-우드, 월터 드 마리아, 마크 퀸의 작품전을 (그들이 유명해지기 전에) 열었다. 또 댄 플래빈의 밀라노 성당 프로젝트, 엘름그린&드라그셋의 텍사스 마파사막에서의 프로젝트도 시행했다. 게다가 무모하다 싶으리만큼 혁신적이었던, 서울 경희궁에서의 움직이는 건축프로젝트(프라다 트랜스포머)도 진행한 바 있다. 젊은 시절 ‘좌파와 럭셔리’를 오갔던 미우치아의 이율배반적이고도 불가해한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하랄트 제만의 기념비적인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1969년 베른)를 오늘로 불러내, 재해석해낸 베니스 프로젝트(2013)는 “비엔날레 본전시보다 낫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어쨌거나 문화예술이 ‘더없이 매혹적인 동시에 유용하며, 세계와 삶을 또다른 각도로 성찰하게 한다’고 믿는 미우치아에게 폰다지오네 프라다는 지금껏 해온 실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전위와 혁신을 지향해온 그녀의 도전을 이제는 우리가 즐길 차례다.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입장료도 그닥 비싸지 않다. 10유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