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NEW YORK
새 휘트니 미술관은 최근 뉴욕의 명소로 급부상한 하이라인 파크가 끝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이라인 파크의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고 미술관 입장객들에게 뉴욕시 전망을 즐길 수 있도록 미술관 뒤쪽은 계단식으로 디자인되었다. (photograph by Nic Lehoux 2015)
America Is Hard to See
1930년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Gertrude Vanderbilt Whitney)가 설립한 휘트니뮤지엄이 50여 년 만에 이사를 감행했다. 새 보금자리는 로어 맨해튼 웨스트빌리지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갠스부어트가(街). 뉴욕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천문학적인 건축비를 들여 렌조 피아노가 설계하고 완공한 휘트니뮤지엄은 개관전 <America Is Hard to See>(5.1~9.27)을 시작으로 관람객을 새집에 맞이했다. 허드슨강을 바라보며 우뚝 선 뉴욕 미술의 자존심 휘트니뮤지엄의 집들이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허드슨 강변에 세워진 미국 현대미술의 메카
서상숙 미술사
2008년 프리츠커 상 수상자이며 미술관 건축의 노장, 렌조 피아노(77)가 설계한 새 건물의 디자인을 발표하고 2011년 5월 기공식을 함으로써 큰 기대를 모은 미국 현대미술의 메카, 휘트니 미술관이 완공되어 지난 5월 1일 개관했다. 새 주소는 99 Gansevoort St. New York City, NY 10014. 맨해튼 서남단 허드슨 강변에 위치한 전망 좋은, 422억 달러짜리 9층 빌딩이다.
개관전은 <America Is Hard to See>(5.1~9.27)로 휘트니의 컬렉션에서 고른 작가 400여 명의 작품 600여 점이 전시된다. 그중 25%가 처음 수장고를 벗어난 작품들이다. 1900년 이후 현재까지 유일하게 미국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만을 수집해온 휘트니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미국현대미술사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하이라인 파크가 끝나는 곳인 미트패킹 디스트릭의 갠스부어트가(街)에 위치한 새 휘트니는 폐쇄된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만들어 2009년에 개방한 후 (현재도 구간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600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되는 등 뉴욕의 명소로 각광받는 하이라인 파크와 더불어 새로운 문화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지리적으로 뉴욕의 가장 큰 화랑가인 첼시와 맞닿아 있고 뉴뮤지엄과 그 주변에 형성된 새로운 화랑가 로어 이스트 사이드(LES)와 더불어 뉴욕 현대미술의 중심지를 다운타운으로 옮기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관 며칠 전 휘트니가 기자들을 초대해 49년 만에 옮기는 집들이(프레스 프리뷰)를 하던 날은 새집으로 이사하는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이 흥분과 기쁨이 넘쳤다. 하루종일 미술관 직원들과 렌조 피아노 건축사무실과 시공사 직원들이 그룹으로 나뉘어 미술관 구석구석을 소개했는데 “이 보존연구실은 미술관이 처음으로 갖게 된 것” “극장을 처음으로 갖게 되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제 테라스가 생겼으니 야외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등등 ‘처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앙증맞은 모양에 맛도 일품인 미니 피자와 컵케이크도 무한정으로 제공되었다. 집들이에 음식이 빠질 수 없는 건 세계 정상의 미술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49년 전 2000여 점이던 소장품이 현재 2만2000여 점으로 늘었고 21세기에 들어 현대미술 장르가 급격히 확장되면서 1966년 지어진 업타운 메디슨 애비뉴 건물의 한계성을 절감한 휘트니가 이전을 결정하고 8년에 걸쳐 지은 이 건물은 휘트니와 57억 달러를 쾌척한 뉴욕시의 야심적인 프로젝트였다.
2001년 다운타운인 월스트리트의 쌍둥이 빌딩을 테러리스트에게 잃은 뉴욕시는 2007년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뉴뮤지엄을 유치하고 이어 휘트니 미술관까지 이전하도록 도움으로써 다운타운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두 미술관의 다운타운 이전/개관은 단순히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부서진 집을 새로 지어주고 불타버린 옷을 새로 사 입히듯, 상처받은 다운타운의 뉴요커, 나아가 전 뉴요커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희망을 주는 프로젝트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미술관 기능을 우선시 한 설계
뉴뮤지엄이 개관하면서 로어 이스트 사이드는 갤러리가 모여 들어 새로운 화랑가로 각광받고 있을뿐만 아니라 음식점, 호텔, 패션스토어가 잇달아 문을 열어 마약중독자와 홈리스들의 거리에서 개성있는 예술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휘트니가 위치한 미트패킹 디스트릭은 본디 정육점과 정육기구들을 팔고 포장하는 공장이 있던 곳이다. 1960년대 게이 나이트클럽이 처음으로 이곳에 문을 연 이후 현재까지 입장하기가 까다로운 나이트클럽이 많은 지역이며 1990년대 후반부터 알렉산더 매퀸, 스텔라 매카트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등 고가의 패션스토어가 문을 염으로써 패션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휘트니 미술관은 10여 년 전 미술관이 소유한 인접 빌딩들을 연결해 기존 미술관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단계에서 구조적인 문제에 부닥치면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장소를 물색하다가 지난 2009년 뉴욕시가 소유하던 현재의 부지를 매입함으로써 이전이 확장되었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미술관 설립자이자 미술가였던 거트루트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1875~1942)가 1918년 휘트니 미술관의 전신인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을 연 곳이자 1930년 미술관을 연 그리니치 빌리지도 있어 더욱 그 의미가 깊다고 한다.
새 휘트니 미술관은 무엇보다 미술관 기능을 우선순위에 놓고 지어졌으며 ‘소통’과 ‘배려’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구조를 띤다. 완공 전 빌딩 외관에 대해 회의를 표명한 사람들조차 개관 후 일제히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아키텍스 뉴스페이퍼》의 앨런 브레이크는 “전시실의 알맞은 조명, 신중하게 계산된 도시와 강의 전망, 묵상의 순간들을 제공하는 휘트니는 뉴욕에서 가장 만족할 만한 미술관 환경을 갖춘 곳”이라고 극찬했다. ‘모양보다 기능’에 충실한 렌조 피아노의 디자인은 그가 설계한 파리의 퐁피두 미술관에서 그 좋은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2003년 이후 휘트니의 미술관장으로서 이번 이전개관을 총괄해온 애덤 와인버그는 “퐁피두 미술관처럼 전시공간과 더불어 사람들이 모여 미술을 매개로 소통하는 광장의 개념으로 새 휘트니를 짓고 싶었다. 그것이 렌조 피아노를 설계자로 선택한 이유”라면서 “메디슨 애비뉴의 브루어 빌딩에서 아쉬웠던 점이었는데 이번 새 건물은 1층을 입장료 없이 누구나 들어와 즐길 수 있도록 개방했다”고 밝혔다. 34가에서 시작돼 2.33km에 이르는 하이라인 파크가 끝나는 곳에 있어 뉴욕시의 명소와 만나는 광장의 개념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새 휘트니 미술관은 총면적 20,500m2의 9층 건물로 전시공간은 4600m2다. 구건물에 비해 전시공간이 50% 이상 늘었다. 바닥은 재활용 소나무를 깔았으며 최대한 자연광이 비치도록 설계되었다. 기둥을 없애 공간을 자유롭게 구획할 수 있다. 특히 5층은 기둥이 없는 뉴욕의 미술관 중 가장 큰 전시실을 자랑한다. 비디오와 영화 상영, 퍼포먼스 등을 할 수 있는 최대 204석의 작은 극장도 옛건물에 없던 것. 이 극장은 야외 테라스로 연결된다. 보존수복센터와 교육센터 역시 새로운 공간이다.
허드슨 강변의 입지를 살려 전시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도 강이 보이는 전망을 즐길 수 있도록 통창을 설치하고 관람객들이 쉴 수 있는 소파를 놓았다. 그리고 4개의 야외 테라스를 설치해 허드슨 강과 뉴욕의 스카이라인, 하이라인 파크로 이어지는 전망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야외 테라스로 이어지는 8층의 카페는 그 전망만으로도 들러볼 만하다. 특히 하이라인 파크 쪽의 일조권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미술관의 조망권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설치한 계단식 테라스는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씀이 돋보이는 디자인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휘트니는 강 옆에 위치함으로써 홍수와 태풍의 위험을 간과할 수 없다. 이를 고려해 건축자재를 선택하고 설계에도 반영했다. 특별히 3층 이하에는 전시실이나 작품 수장고를 만들지 않았다. 1층에는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소품들을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남쪽과 동쪽에는 홍수 때 침수를 막을 이동식 벽이 설치되어 있으며 하수구도 대량의 물이 한꺼번에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되었다고 한다. 연료 탱크, 물을 빼내는 펌프와 더불어 비상시에 전력을 가동하는 시설도 갖추었다. 미술관 북쪽에 뉴욕시 소유 공터가 있어 필요하다면 확장할 수 있다는 것도 휘트니의 새 건물이 지닌 장점이다.
이전 개관 후 휘트니는 부관장 겸 수석큐레이터로 38살의 스캇 로스코프(Scott Rothkopf)를 임명하고 2004년 이후 부관장 겸 수석큐레이터를 맡아온 다나 드 살보(Dana De Salvo)를 국제협력관계 담당 부관장으로 발령해 안팎으로 휘트니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