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김다움 대나무 숲 옆에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8.6~26
고윤정 갤러리 구 협력 큐레이터
김다움은 현대인이 살면서 엮이게 되는 각종 ‘관계망’들을 탐구하고, 이를 시각 예술로 풀어내는 작가이다. 이 관계망은 인터넷 영역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도 하고, 전시 공간처럼 물리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작가는 관계망이 얽힌 영역의 구조를 관찰, 수집하고 분류하여 전시마다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김다움이 주목하는 ‘영역’은 사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살아 있는 유기체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객관적인 현실의 세계이자 물질적으로 표현되는 공간인 것이다. 그 공간 속에서 발화하는 파편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사연들에서 시작된다. 이미지, 데이터, 사운드 등등이 공존하는 ‘영역’에서는 각종의 기호들이 정보를 주기도 하고, 상호교류를 하기도 하며,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접촉’에 의해 새로운 일들이 발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2009년의 , 2010년의 <리카>, 2012년의 <정일> 등 작업 초기에는 인터넷 채팅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이루어지는 장기간의 리서치 결과물을 다시 분류하고 정리하여 영상작업으로 풀어냈다. 최근의 전시에서는 작가로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장소로서 전시장, 관람객, 작가, 작품이 만나는 전시공간 그 자체에 주목한다. 2013년의 <상호간접>, 2014년 등의 작업은 전시공간에서 작업의 흔적, 혹은 관람객을 맞이하고, 작품과 관람객이 상호교류하는 방식에 대해서 탐구한 것이다.
마치 한 개인전 자체가 하나의 큰 유기체적인 작업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최근작들은 ‘간접’이라는 틀 안에서 여러 가지 시각화 과정을 보인다. 김다움이 평소에 관찰하는 관계망 속에서의 관계는 매우 직접적이지만 전시장에서는 ‘간접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간접’이라 함은 중간에 매개가 되는 사람이나 사물 따위를 통하여 맺어지는 관계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각각의 사물과 사람을 김다움이 재구성한 장치들이 관람객과 매개되고, 김다움의 실험은 이 매개의 방법에서 지속된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의 <대나무 숲 옆에서>에서는 이 매개체가 미니멀한 방음판과 글자들의 조합을 관람객이 읽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김다움이 이번 전시에서 수집한 자료들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은 ‘대나무숲’ 이라는 트위터 계정이다. ‘디자인 회사 옆 대나무숲’, ‘출판사 옆 대나무숲’, ‘신문사 옆 대나무숲’ 등 대나무숲이라는 계정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 이 계정들은 디자인회사나 신문사, 출판사 종사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계정으로 조직생활에서 힘든 점을 토로하는 영역이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공감대도 강력하고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폭로를 하기 때문에 이 계정에 등장하는 언어들은 걸러지지 않은 상당히 원색적인 형식을 띤다. 일종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대나무숲 인터넷 계정에 대해서 작가는 <어쿠스틱 디퓨저>라는 제목으로 각종 책들 혹은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파일정리함을 미니멀하게 보이고 있다. 책이나 파일정리함을 배치하고 외형적으로 음향을 분산시키는 장치를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틈으로 감정과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을 은유한다.
<어쿠스틱 디퓨저>가 사회적 공감대를 뜻하는 대나무숲을 표현했다면 <마리>와 <미교>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의 대나무숲을 보인다. 이 두 작업은 개명(改名)하게 된 두 사람의 각각의 이야기를 영상화한 작업인데, 두 사람 모두 이름을 바꾸게 된 사연이 매우 기구하다. <미교>의 영상들은 4등분되어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데, 관람객은 이 장치들을 스스로 재조합하거나 짐작하면서 그 내용을 찾아들어가야 한다. <마리>는 주인공의 직업이 DJ인 특성을 따라 영상과 음향의 만남이 위트있게 진행된다.
<크레딧>이라는 작업은 박수갈채 소리가 다양하게 들리는 작업인데, 이 작업은 작가 자신의 대나무숲으로 그동안 작업을 진행하기까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고백을 표현한 작업이다.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이름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작가 스스로가 ‘수고했어, 오늘도!’라고 말하듯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작업이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내부에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다. <무향실>이라는 제목의 방음벽이 궁극적으로는 4면을 담고 있지만, 때로는 흩어져서 때로는 모이면서 시각적인 궁금증을 유도한다. 김다움의 작업은 한번에 파악되기보다는 하나씩 접촉과 참여를 거듭하면서 작업의 진정성을 알아가야 하는데, 분산과 집합을 거듭하는 <무향실>은 보이지 않는 보물섬 지도를 찾아들어가듯 짐작과 공감으로 이어진 김다움의 작업 성향을 대변하는 듯하다.
위 김다움 <무향실>(오른쪽) 흡음판, 와이어, 경첩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