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몽중애상-삼색도
자하미술관 6.5~7.12
김병수 미술비평
현대미술에서 정치미학이 작동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영어식 전시 제목이 넘쳐나는 시대에 한자어만으로 이루어진 전시를 만나러 자하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일대가 안평대군,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조선 왕조의 여러 인물과 연관돼서이기도 하지만 개인사적 소회가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학원 시절 환기재단 이사장이셨던 조요한 선생님께서 <비교예술론> 강의를 환기미술관에서 진행하셨기에 매주 찾았었다.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그 풍경은 조선시대에도 안목 있는 이들에게는 분명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미학은 예술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그 입장 혹은 태도가 정치적이기도 하다. 그렇게 채택된 풍경 또한 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이다. 조선시대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그 자체가 정치적 풍경화인 것이다. 그래서 전시기획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풍경은 가상일 수도 실체일 수도 있지만 회화적 구성과 재현 속에서 훨씬 풍부한 ‘의도’가 의미심장하게도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부각시킬 수도, 무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전시에 대하여 설명한다. “전시는 안평의 몽유와 애상 그리고 그것을 상징하는 삼색도를 주제화하여 펼쳐진다.” 이번에 기획된 전시가 특정한 작품이 아니라 한 인물과 연관한 역사적/정치적/미학적 상황에 대한 일종의 해석학이라는 의미이다.
서용선, 김영헌, 권기수, 강경구, 홍순명, 문봉선, 신태수, 김종구, 정광호, 유근택, 박방영. 다양한 작가들이 자신들의 스타일을 간직한 채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풍경으로서 전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이 지점은 전통적 회화미학에 대한 비판으로서 현대미술을 위치시키듯이 좀 더 적극적인 개입과 해석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견주어 드러내는 직유보다는 어떤 흥취 혹은 분위기를 풍기는 은유를 채택하는 동아시아 미학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판단을 스스로 숨기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대개의 경우 그것이 망각이나 은폐로 스스로를 감추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것은 “산수에 대한 전통적 관념은 과연 심미적 상상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현재 수준의 답변처럼 보인다.
정명(正名)사상에 의해 분할된 영역이 동등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정치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이 미학적 권력 관계에서 불평등했고 따라서 폭력적으로 행사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 해독으로서 미학과 전시는 새로운 기능을해야 한다. 상황 혹은 사건의 구성은 그 자체가 정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판단 자체가 정치적이고 미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正)의 원리로서 내러티브만이 아니라 장식성과 고유성을 동시에 풍부하게 하는 ‘기(奇)’의 차원이 좀 더 탐구되고 모색되지 못해 아쉬웠다. 자기 스타일로 자기의 스타일을 벗어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음에도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김수영, <절망>) 보였기 때문이다.
문봉선 <무계동천>(왼쪽 유리장 안) 종이에 수묵담채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