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샌정 study painting
누크갤러리 7.30~8.26
이윤희 미술사
샌정의 회화작품들을 보면서, 이 작가가 한 작품을 제작할 때, 이제 완성이라는 생각을 어느 지점에서 갖는지가 궁금해졌다.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모호한 배경 위에 모호한 형태들이 부유하고 있으며, 이미 그려진 어떤 형태가 다시 숨기도 하고, 형태라 부를 만한 것들 역시 하나같이 완결된 선으로 마무리된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리다 만 듯한 인상을 주는 화면들이고, 그 모든 작품이 완결되기보다는 어딘가로 향해 가는 중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면에 가하는 그의 붓놀림이 호방하여 그리는 순간의 일시적 기분이나 감정을 듬뿍 담아내는 종류의 것도 아니다. 기하학적 형상처럼 보이는 것이든, 인물이나 자연물을 연상시키는 그 어떤 것이든, 형태를 이루어가는 그의 붓질에 모호한 색채 선택만큼이나 조심스럽다. 한 획 한 획의 조심스러운 붓질이 비하면, 흘러내리는 물감자국들의 생동감이나 속도감이 화면에서 낯선 요소로 보일 정도이다. 그는 어느 지점에서 완성이라는 느낌을 가지는 것일까.
거의 비어있는 것 같은 그의 작품 앞에서 최근의 어떤 미술 동향, 목표한 결과치를 위해 꽉 짜여 있는 회화의 경향을 역설적으로 반추하게 된다. 계산된 수수께끼의 답을 풀어낼 때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그러한 작품들을 감상할 때 다가오는 쾌(快)가 분명 존재한다. 그러한 작품들 앞에서 감상자는 작가가 화면에 숨겨둔 사유의 단서들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추적해보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샌정의 작품 앞에서는 감상자의 눈이 화면에서 집중력을 갖게 되기보다는 더듬더듬 길을 잃고 돌아다니게 된다. 말(馬)이나 새, 소녀, 나무와 같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인지하고 인물이나 사물들의 관계를 생각하기도 하고, 경계가 불명확한 배경과 형태 사이의 경계에서 그려지지 않고 남아있는 빈 공간이 무한히 확장하는 것 같은 심리적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앞에서는 감상자가 바라보는 지점이 어느 곳에 멎지 못하고 화면 안을 끊임없이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결코 명확해질 수 없는 비언어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그의 화면 속에서 가끔 또렷하게 쓰여진 글자들을 발견하는 것은 또다른 놀라움이다. 모든 작품에 언어적 개입을 거부하는 작품의 제목 가 일괄적으로 붙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들에는 꽤 지시적인 언어들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SOBERING REALITY”, “INDIAN SUMMER”, “LINES AND COLORS” 등의 글자들은, 화면의 조형 요소들이 서로의 정체를 숨겨주는 듯한 그의 화면에서 급작스러운 명확함으로 다가오는, 대단히 이질적인 부분으로 보인다.
비언어적인 사유를 이끄는 모호함과 명확한 글자들의 대비처럼, 그의 작품 전체를 일별해보면 개념적으로 정반대로 여겨지는 것들의 대비가 줄곧 눈에 띈다. 미술의 역사 속에서 한 시기, 지역, 혹은 한 미술동향의 화두였던 것들, 구상과 추상, 유기체적인 것과 기하학적인 것, 서사성과 서정성,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등의 대비적 요소들이, 한 작품에서 드러났다가 다른 작품에서 사라지고, 때로는 한 화면 안에서 만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각적 경험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면서 그 의미를 탐색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study painting”을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삼은 점을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굳이 소문자로 시작하는 이 전시의 제목은 한편으로는 겸허한 표현인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바와 태도를 알려주고 있다. 한 점 한 점의 작품은 그가 자신의 삶 속에서 공부하고 사유하는 흔적이라는 것, 그 결과물 자체가 어떤 결론을 향해 가기보다는, 그리하여 어떤 결론에 도달한 완성의 지점이라기보다는, 끝없는 과정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삶의 과정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위 샌정 <무제>(맨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