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이동욱 LOW TIDE
2016.12.29~7.9 아라리오뮤지엄 제주 동문모텔Ⅱ
하진희 | 제주대 미술학과 강사
우리는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모든 것이 속도와 빠름의 미학으로 포장된다. 인간이 존재 의미를 사색하고 사유의 시간을 보내며 느림의 미학을 즐기면서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그 산더미 같은 정보의 환영에 의해 산산이 부서진다. 가슴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에게 이동욱의 작품은 ‘왜’라는 의문을 던진다.
이동욱의 작품 앞에서는 좀 더 찬찬히 그 작품을 들여다보고 음미하고 싶어진다. 그의 대학시절의 작품, 두 남자가 바퀴를 돌리는 주제를 시작으로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그의 고민은 시작된다. 크기가 다른 두 남자가 끊임없이 바퀴를 돌린다. 두 남자의 크기나 돌리는 속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둘 중 누구든 돌리기를 멈추면 안 된다는 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그 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일상의 바퀴를 끊임없이 돌리면서 각각의 하나는 다른 하나의 존재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어 슬픈 현실이다.
이동욱의 인간과 인간이 처한 현실에 대한 탐구는 그가 선택하는 주제, 재료와 기법에 의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금속의 강인함과 차가움을 달콤한 벌꿀의 부드러움으로 스르르 무너뜨린다. 그래서 결국은 형태가 없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녹여버리는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또한 전쟁의 수많은 죽음을 넘어 얻어진 승전 트로피에 흘러내리는 벌꿀은 전쟁의 살생을 감추는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그 달콤함에 취하는 순간 어느새 우승의 영광은 녹아 없어진다. 또한 유리병 속에 갇힌 남자의 섬뜩한 모습에는 이동욱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암시와 함께 끊임없이 바퀴를 돌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이동욱의 인간에 대한 탐구는 서슬 퍼런 장도 위에 드러누운 누드의 남자, 때로는 유리병 안에 갇힌 기이하면서도 미숙한 남자, 벌꿀로 속이 채워진 도금된 금속 위에서 총을 쏘는 남자, 원반을 던지는 남자, 장도를 끄는 남자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동욱은 이처럼 다양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과 삶의 무게를 가차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재료인 금속, 폴리머클레이, 유리 등은 작가의 생각과 기법을 유기적으로 연관시키기보다는 서로 다름을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묶는 역할을 한다. 작가가 이러한 자신에게 익숙한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어 주제의 순수성을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택하는 작가의 실험을 기대해 본다.
이동욱이 ‘모두 다 흥미로운’ 을 위해 수집한 다양한 원석들을 보며 그의 부지런함과 인내심에 놀라게 된다. 또한 그가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와 허무를 뛰어넘어 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오르려 시도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연의 개체들이 지닌 길지 않은 거친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의 몸짓은 한없이 작고 초라할 수밖에 없음에 대한 암시가 아닐까. 그러나 이동욱이 처음 암시했던 것처럼 그는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비상을 위해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바퀴 돌리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위〈Amor〉 혼합재료 15×10×10cm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