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2015 한국현대형상회화전
갤러리 팔레드서울 7.29~8.11
최금수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소장
“해방은 도둑처럼 왔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 가슴을 울리는 광복 70주년의 8월이다. 이를 축하하기라도 하듯 남과 북은 총부리를 겨누며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를 조장하고 있다. 이제는 상당수가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들이 살아가고 있는 반도에서 해방 또는 광복이라는 기쁨은 분단의 그늘 아래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광복 70주년 불꽃놀이 행사와 맞물린 남북의 피 말리는 대치 상황은 21세기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중에게 ‘극과 극을 달리는 20세기형 블록버스터 판타지’를 선사했다.
주지하다시피 ‘남한의 형상회화’는 1980년대 미술운동을 뿌리로 하고 30여 년이 넘게 현장에서 쓰이는, 필요에 의해 고안된 실용 개념의 단어이다. 즉 ‘우리의 역사와 시대현실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되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회화의 한 경향’이기에 그 투박함과 애매함만큼 무궁무진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바로 그 현실 환원적 덩치 탓에 때로는 형상회화가 변혁운동에 복무했던 민중미술 또는 자연적 재현에 몰두한 구상회화와 구분되지 못하고 혹은 현란한 감각으로 치장한 팝 내지는 감정에 호소하는 심상회화로 오인되기도 하며 짧지 않은 시간들을 흘려버렸다. 지금에 와서 그 범주의 불명확성의 원인을 따져보자면 그것은 바로 ‘자각과 자생’이라는 현실과 맞닥뜨린 궁색한 창작환경과 연동된 탓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솔직히 형상회화란 설익고 어설픈 남한 미술계의 특수성에 기반을 둔 좀더 효율적이고 유연한 성격을 지닌 전문 시사용어에 다름아니다.
그렇기에 혹자는 남한 형상회화를 성급히 해방 전후의 이념적 회화 또는 외국 사회운동 성향의 회화 등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물론 이는 가능하고 유효한 되짚음이다. 하지만 전자 후자 모두 현장과 거리를 둔 다른 환경의 학습에 기인하여 남한 형상회화의 키워드인 ‘자각과 자생’의 의미를 놓치기 십상이다. 남한 형상회화에 좀 더 밀착하기 위해서는 1980~1990년대라는 시대상황과 더불어 창작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야만적 군부정권의 폭압이 일상이었고 미숙한 미술제도하에서 ‘몰개성적 집단적 회화’에 의한 표백된 창작환경은 창작자 개개인의 상상력을 고사시켰다. 이에 따른 필연적인 움직임으로 기존 환경에 반기를 들고 현장으로 뛰쳐나와 변혁운동에 복무한 민중미술 또한 그 시기적 다급성과 도구적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에 ‘대항에서 대안으로’ 방향을 바꾸기는 했지만 새천년 이후 가속화된 ‘대안의 제도화’는 결국 좀 버겁지만 ‘공공미술과 국제화’라는 거대한 요구에 적응하기 바쁘다.
한편으로는 새천년 들어 지자체 기반의 대형 국제미술행사들과 더불어 국공립미술관들이 과거와 사뭇 다르게 약진하고 각종 레지던시 등을 비롯한 창작환경 개선사업이 펼쳐졌으나 미술의 영역도 그만큼 넓어져 그 많은 요구에 부합하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와 비슷한 시기 미술시장은 일희일비이지만 블루칩 젊은 작가들을 출시하며 상승세를 보였으나 오히려 남한 형상회화의 호흡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남한 형상회화의 핵심인 ‘자각과 자생’은 ‘창작과 환경’에 다름아니다. 즉 전달받는 향유자적 입장이나 집단적으로 제도에 의해 학습되고 기안되어 유포되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창작환경에서 체득한 동시대적 자각을 바탕으로 한 개별 창작자의 고유한 자기진술인 셈이다. 물론 뭇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생산’ 이후의 문제들은 현실만큼이나 들쑥날쑥하다. 그래서 다시금 길고 깊은, 다소 불안정한 호흡을 즐겨야 한다.
위 신학철 <한국현대사-광장> (사진 맨 왼쪽) 캔버스에 유채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