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shin’s design essay 4]

장식이 된 근육

김신  디자인 칼럼리스트

예전에는, 그러니까 19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남자배우 몸이 지금처럼 근사하지 않았다. 스크린에서 남자배우가 옷을 벗었을 때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얻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옷을 많이 벗지도 않았던 거 같다. 반면에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남자 배우들이 얼굴은 물론 몸매에서도 눈부신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내가 대학생 때, 그러니까 1980년대 말쯤에 본 <탑건>이란 영화에서는 전투기 조종사로 분한 남자 배우들이 웃통을 벗고 비치발리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톰 크루즈를 비롯한 남자들이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근육질 몸매로 배구를 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그리고 잘게 편집된 화면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사실 영화의 줄거리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아예 사라져도 아무 상관없는 장면이다. 순전히 관객에게 눈요깃거리를 제공할 뿐이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수영복 심사처럼 순수하게 예쁜 남자 몸 감상하는 시간인 거다. 그렇지만 이 장면은 굉음을 내는 전투기들의 화려한 공중전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1980년대뿐만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도 할리우드 남자배우의 몸은 늘 근사했던 거 같다. 어릴 때는 미국 남자들 몸이 다 그런 줄 알았다. 남자 몸이 그렇게 근육질의 광택이 나게 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남자인 나 자신이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남자, 보통 사람 말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젊은 연예인이라면 근육질 몸매를 가져야 하는 게 기본이 된 거 같다. 배우는 당연하고 가수, 이른바 아이돌 스타들, 심지어는 개그맨까지 빨래판 복근 자랑하는 걸 TV나 잡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한국 영화에서도 남자들이 웃통 벗는 장면을 예사로 볼 수 있다. 톰 크루즈 부럽지 않은 시대가 된 거다. 사실 젊은 남자 배우들이 죄다 조각 같은 몸을 자랑하는 건 영화의 리얼리티에 흠집을 낸다.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신의 한수> 예고편을 보았다. 고수 두 명이 얼음창고에서 웃옷을 벗고 바둑을 두는 장면은 현실성이 너무 떨어져서 영화를 보고 싶단 마음이 달아나게 할 정도다. 옷 벗고 얼음창고에서 목숨 걸고 바둑 둔다는 설정보다 고수들의 몸매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서다.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 내가 아는 바둑 고수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이미지는 몸매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바둑은 가슴을 처지게 하고 배를 나오게 할 수는 있어도 근육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관객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리얼리티의 결함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흥행이 먼저 아니겠는가.
영화와 TV, 잡지에 근사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자꾸 노출되는 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 같다. 보통 사람들도 그런 몸매를 갖고자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은 물론 40~50대, 심지어는 60~70대 할아버지들까지 복근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디어는 이들을 자꾸 노출시키고 이들의 자기 관리와 절제, 의지력을 칭찬한다. 마치 한국 사람 전반이 미학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거 같은 분위기다. 체육관에서 몸을 단련한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TV에 나와 어떻게 그런 몸매를 갖게 되었는지 증언한다. 그런 몸이 화면에 등장하면 방청객들이 ‘우와’ 하고 탄성을 지르는 건 이제 진부한 장면이다.
나는 남자들의 아름다운 몸을 대할 때마다 그게 장식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의 몸은 노동으로 단련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냥이나 전투와 같은 기능을 위해 자연스럽게 근육질 몸이 되었다. 대부분 사무실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일하는 현대인은 바둑의 고수만큼이나 건강하고 보기 좋은 몸을 만들 기회가 없다. 그런 몸을 가지려면 억지로 시간을 내서 체육관에 가야 한다.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얻은 탄탄한 가슴과 복근은 쓸 일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애써 단련한 근육의 힘으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용도가 생겼다. 남들 눈에 보여주는 거다. 그냥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시다. 굳이 맨몸이 아니더라도 잘 단련된 몸은 옷을 입었을 때 맵시가 나게 만든다. 이건 무슨 뜻인가? 근육은 그 기능에서 해방돼 순수한 장식이 된 거다.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는, 즉 수유 기능을 제거하고 미적 감상만을 남긴 여자의 가슴과 똑같다. 한마디로 근육은 더 이상 어떠한 기능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예술이 되었다.
이 예술품을 만드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혹독한 훈련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이 예술품은 단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건강을 덤으로 준다. 그런 혜택을 알지만 대다수 사람은 박약한 의지와 바쁜 일정으로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그런 몸을 얻은 사람들이 위대해 보이고 미디어의 각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각광을 받는가? 첫 번째는 연예인. 몸이 재산인 직업인이다. 두 번째는 좀 연세가 든 분들. 이 분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다. 세 번째는 돈 많은 여성들. (요즘은 여자들도 근육을 단련한다.) 이들이 근육을 얻는 데 필요한 핵심 요소는 의지보다는 돈이다. 개인 트레이너를 살 수 있는 돈이 있어야 박약한 의지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디어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몸이란 기능과 무관한 장식이며, 의지보다는 돈의 결실이다.●

속옷광고

속옷 광고 속 남자 모델의 근육은 노동의 의미를 제거하고 순수한 장식적 아름다움을 과시하도록 연출된다.
맨즈헬스

《맨즈헬스》와 같은 남성 잡지는 아름다운 몸매를 단련하고 과시하는 것이 현대 남성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음을 반영한다

위·최수앙 <Condition for Ordinary–colonization> Oil on Resin, steel 45×52×103cm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