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권진규미술관 개관 기념전
〈권진규와 여인〉권진규미술관 2015. 12.5~5.31
괴짜 컬렉터가 사랑한 조각가
5월 4일은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기일(忌日)이다.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짧은 글귀를 남기고 자신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인 것이다. 함흥에서 태어난 권진규는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조각을 배웠다. 이런 인연 때문일까? 강원도 춘천시에 권진규미술관이 건립됐다. 지난해 12월 정식 개관한 권진규미술관은 개관기념전으로 〈권진규와 여인〉(2015.12.5~5.31)을 개최한 데 이어 한국근대미술 11인선 유작전 〈歸巢, 그리고…〉(4.4~6.30)를 연달아 선보인다.
권진규미술관을 설립한 주인공은 김현식 월곡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춘천 토박이 사업가(옥광산 대일광업 대표)인 김현식 대표는 권진규 작품뿐만 아니라 옹기, 장난감, 로봇, 만화책, 슈퍼카 등 오랫동안 다방면에 걸쳐 특색 있는 컬렉션을 해왔고, 《새드 무비 69》라는 장편소설을 쓴 문학인이기도 하다. 특히 권진규 작품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김현식 대표가 미술관까지 개관하게 된 데는 권진규의 여동생 권경숙 여사와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권경숙 여사는 오빠 권진규의 조각과 부조 100여 점과 드로잉 500여 점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한 독립된 미술관 건립을 몇 년 후로 미루고, 일단 김 대표의 주요 사업터전인 옥광산타운에 건설 중이던 건물을 활용해 미술관을 개관했다. 건물 이름은 미술관이 위치한 월곡리(月谷里)의 순우리말 지명인 ‘달아실’이라고 지었다.
개관기념전으로 기획된 전시 〈권진규와 여인〉은 크게 세 주제로 구성되었다. ‘자소상’과 ‘도모’(일본 유학시절 결혼한 일본인 부인 가사이 도모), 그리고 ‘여인의 조각’이 그것이다. 권진규는 유난히 많은 자소상을 제작했다.
이 자소상은 영원의 시선과 구도자의 내면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그가 사랑한 여인 도모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리즈는 몇 점 되지 않지만, 신라 석공의 혼과 조형의 본질을 담은 불상을 연상시키며 그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인의 조각’은 귀국 후 서울에서 제작된 여인상을 모았다. 사랑하는 아내 도모를 그리워하며 제작된 여인들의 모습은 작가의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무사시노대학 박형국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권진규는 내면의 정신성까지 조형화”하려 했다. 그의 조각은 인물의 외형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인격과 정신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것.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힘으로 가슴속 깊이 진한 감동을 주며 전율을 느끼게 한다. 권진규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을 통해 그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규형 ART PARK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