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 강 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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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박홍순⠀⠀⠀⠀⠀⠀⠀⠀⠀⠀⠀⠀⠀⠀⠀⠀⠀⠀⠀⠀⠀⠀⠀⠀⠀⠀⠀⠀⠀⠀⠀⠀⠀⠀⠀⠀
강 서 경 | Suki Seokyeong Kang
1977년 출생했다. 이화여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회화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검은자리 꾀꼬리 Black Mat Oriole〉를 비롯해 개인전을 여러 차례 가졌고, 제12회 상하이비엔날레와 새너제이 미술관에서 열린 〈OTHER WALKS, OTHER LINES〉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2년 영국 Bloomberg New Contemporaries 작가로 선정됐으며 2013년 제13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2018 아트 바젤 발루아즈 예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 중이다.
좋은 작가에는 두 부류가 있다. ‘작업이 좋은 작가’와 ‘좋은 작업이 기대되는 작가’. 그런 점에서 강서경은 후자에 속한다. 회화의 기본적인 조형 요소와 방법론을 오브제 설치작업으로 확장한, 일명 ‘페인톨레이션(paintallation)’이 그의 작업을 설명해주는 근간이었다면, 새로 선보인 근작은 재료와 형식, 규모 등 외양적으로 거듭 도약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개념적으로도 보다 성숙해졌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강서경의 작업을 보면 긴밀하지만 적당히 밀접하고, 일시적이지만 존재감은 지속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그의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비(非)가시적인 공간과 그 공간이 함축하고 있는 시간을 자신만의 언어로 써내려가는 그를 만나보자.
공간은 무한하여, 모서리는 서로 닿아 있고, 움직임은 지속되며
글 : 안소연 | 미술비평
강서경의 작업은 지속적으로 다종의 행위를 함의해왔다. 그것은 미술사 안에 동결되어 있는 작가의 영웅적인 “액션”과도 다르며, 급진적인 신체의 “수행”과도 다르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행위의 모양” 같은 것으로, 어떤 것의 “움직임”을 좇는다. 최근 그의 작업은 오래된 전통 춤과 음악(악보와 소리)과 공예의 미학적 질서 안에서 만들어지는 행위와 그것의 움직임에 깊숙이 다가가 있다. 행위와 움직임에 대한 미학적 함의는 대략 〈GRANDMOTHER TOWER〉(스페이스 캔/오래된 집 2013)를 거쳐 〈치효치효 : 鴟鴞鴟鴞〉(갤러리 팩토리 2013)와 〈매매종 邁邁鍾〉(송은아트스페이스 2013)으로 이어지면서 구체적인 서사와 만나 조형성을 획득했고, 이어서 〈발과 달〉(시청각 2015)이나 〈검은자리 꾀꼬리 Black Mat Oriole〉(광주비엔날레 2016)를 거치면서 최근까지는 매우 확장된 추상성을 통해 모색되고 있다. 한편 최근에 열린 동명의 전시 〈검은자리 꾀꼬리 Black Mat Oriole〉(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 2018)와 〈Land Sand Strand〉(리버풀 비엔날레 2018)에서는, 기존의 작업에서 꾸준히 다뤄온 정간보의 형식적인 원리를 화문석의 구체적인 형태와 긴밀하게 교차시킴으로써 작업의 층위를 보다 추상적인 조형성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더해준다. 예컨대, 조선시대의 정간보를 참조한 〈정(井)〉 시리즈와 자신의 회화 언어의 기본 단위로 임의 설정한 〈모라(Mora)〉 시리즈는, 정간보와 화문석의 체계 및 질서 안으로 들어가 더욱 다양하고 구체적인 움직임을 확보하면서 조형적인 형태와 개념적인 구조의 스케일을 한껏 키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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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경 〈予室翹翹 여실교교〉(사진 가운데) 수석, 철, 실, 부엉이, 오브제설치 가변크기 2013 갤러리팩토리에서 진행된 개인전 〈치효치효: 鴟鴞鴟鴞〉(2013.6.5~7.5) 광경
그렇다면, 현재의 잘 구축된 체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그 깊숙이 서로 맞닿아 어떤 형태와 움직임을 변화시키거나 지속시킨 오래된 회전축들(정(井), 모라, 탑, 자리 등)을 찾아내 지금의 거대해진 구조를 다시금 해체해보면 어떨까? 현재를 다만 흔적으로 갖게 될 과거의 낯선 형태를 마치 움직임이 예견된 새로운 미래처럼 살펴보는 것은, 어쩌면 강서경이 작업에서 내내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조금 더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때로 어떤 맥락 안에서 자신이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다룬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정(井)”에서 파생된 “검은자리”가 그것인데, 정간보의 한 칸에 해당하는 떠도는 자리이기도 하다. 강서경은 그렇게 각각의 모호한 위치들이 느슨하면서도 긴밀하게 결합해 일시적으로 만들어내는 연속적인 시공간의 체계를 기획한다. 그는 중첩과 중복과 겹구조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은 동시적이면서도 개별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이제 우리가 그것을 다시 해체해봄으로써 현재의 연속되는 시공간의 구조를 살피는 일은, 일단 그의 작업에서 드러난 움직임에 대한 안무적 동력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시간과 공간 재배치의 무한한 가능성을 새롭게 기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기약이 반드시 실현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검은 자리로서의 시공간처럼 “열려있는 정지상태”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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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자리의 자리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검은자리 꾀꼬리〉에서, 강서경은 검은 자리를 하나의 기본 축으로 삼아서 확장시킨 특유의 공간 설치와 비디오 영상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같은 이름의 전시가 201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먼저 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검은 자리가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공간과 비디오 영상의 연속하는 검은 화면이 기록하는 행위의 실체를 정간보와 춘앵무에 기반을 둔 하나의 구조적인 쌍처럼 제시했다. 강서경은 검은 자리를 중심축으로 확장된 공간과 그 안에서 연속하는 움직임의 조응을 내내 살피다가, 다시 그 검은 자리 위에 올라간 몸의 정제된 움직임을 통해 긴 움직임의 시간을 지탱하고 있는 검은 자리의 역동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때, 검은 자리를 감싼 또 다른 자리로서 화문석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검은 자리와 동격이면서 그것에서 파생된 구체적인 자리로서 화문석의 함의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고 있어서 몸의 움직임을 통해 시공간의 층위들이 열리는 사유를 담고 있다.
강서경이 〈검은자리 꾀꼬리〉에서 제시한 공간 설치의 구조는 그 가장자리에서 커다란 전경(全景)으로 먼저 지각된다. 사방에 펼쳐놓은 개별적인 형태들은 전체의 윤곽과 구성적인 관계 안에 묶여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지각되는 전체 풍경은 언제나 큰 예외 없이 내게 한 폭의 동양화 같다는 인상을 주곤 하는데, 전경(前景)에서 중경을 지나 후경으로 휘돌아가 마침내 공간 속으로 사라지는 시선의 움직임은 공기 흐름의 통로처럼 공간 사이사이를 벌려놓은 비어있는 자리 때문에 한결 수월한 보폭을 가지게 된다. 이는 사실 〈치효치효〉에서도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동양의 전통 서화를 떠올리게 했던 형식적인 요소와 공간의 배치가 일련의 상황에 대한 품평을 옛 그림의 조건들과 견주게끔 했다. 한편 〈치효치효〉나 〈매매종〉에서 서(書)를 구축하기 위해 사물의 연쇄적인 중첩을 꾀했던 것처럼, 〈검은자리 꾀꼬리〉에서는 움직임을 포함한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한 폭에 “행위의 모양”을 담고 있는 추상적인 공간 개념의 중첩을 시도했다. “검은자리 꾀꼬리”라는 제목이 환기시키듯 독무가의 절제된 춤사위가 일어나는 검은자리에 대한 추상적인 접근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강서경은 조선시대 유량악보인 정간보와 춘앵무라는 궁중 독무를 위한 화문석을 참조해 회화에서 출발한 사각 공간을 해석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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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자리 꾀꼬리〉에서 정교하게 고안된 거시적인 공간은 그 안에서 미시적인 형태와 움직임들을 조율하게 되는데, 그것은 일종의 무보(舞譜)처럼 연속하는 움직임을 예측하는 개별적인 사각의 틀을 추상화한다. 그리고 그 전체를 다시 포괄하는 형태가 공간 안에 들어가 아담하게 펼쳐 있는 화문석으로 역전된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사라진 검은 자리로의 복귀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정井이라는 텅 빈 사각 공간으로의 복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설적인 되풀이는, 거시적인 안목과 미시적인 눈빛이 서로를 향해 내달리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이는 화문석 위에서 춘앵무를 완성하는 무용수의 움직임처럼 한 몸을 겨우 올릴만한 자리 위에서 365일 4계절의 시간과 8방(方)의 공간으로 끝없이 확장해나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춘앵무 무보의 구조와도 닮아있다. 그것이 춘앵무에서 움직임을 지시하는 화문석의 원리다. 강서경은 이렇게 정간보와 춘앵무의 화문석을 가져다가 거대한 전경을 이루는 회화의 사각 공간에 나란히 중첩시켰다가, 그 공간 안에서 작고 개별적인 움직임들의 보폭을 담은 한 사람의 자리로 그걸 다시 옮겨놓기도 한다. 한편 그는 그 둘을 매개하는 것으로 움직임에 대한 지침이 되는 무보를 직접 만들었는데, 공간 설치에서 검은 자리를 감싸고 있는 화문석처럼 정간보의 한 칸을 춘앵무의 화문석과 일치시켜 “검은자리 꾀꼬리”의 〈움직임 매뉴얼(Activation Manual)〉을 제작했다. 무보의 형태를 띤 이 매뉴얼에는 아홉 개의 칸에 연속하는 움직임이 배치되어 있으며, 총 여든한 가지 동작이 제시되어 있다. 이때, 아홉 개의 칸은 화문석 위 한 사람을 위한 한 폭의 공간이면서 그의 움직임이 포괄하는 시간임을 모두 함의한다.
이어서 〈Land Sand Strand〉에서는 무보로 제시된 움직임의 매뉴얼이 작업의 중심축으로 더 가까이 들어왔다. 그는 춘앵무의 서사에 대한 표상으로 계속 끌고 온 “검은자리 꾀꼬리”의 구체적인 형태를 깊이 가라앉혀 두고 무보와 화문석이 함의하는 추상적인 움직임 자체를 더욱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거의 모라와 정(井), 검은자리와 화문석만 남겨둔 채 그것들로 다시 어떤 움직임들이 공유되는 자리를 마련해두려 했다. 마치 이전에 모라를 감싸고 있던 정(井)의 다양한 움직임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추상적인 구조를 만들거나 아니면 모라의 표면을 감춘 채 탑을 이루었듯이, 정간보 형식을 차용해 표면에 일정한 구멍을 남기면서 변화해온 검은자리의 형태가 춘앵무의 화문석과 모서리를 마주하여 결합함으로써 마침내는 모라와 동일한 크기의 “자리(Mat)”가 만들어졌다. 벽에 그림처럼 걸어놓은 〈자리(Mat)〉(2017~2018) 연작은 정간보를 변형시킨 무보와 춘앵무의 화문석이 공동으로 도모하는 움직임에 대해 환기시킨다. 이러한 정황이라면, 결국 그의 작업 안에서 무수한 사각의 공간들은 끊임없이 그 모서리를 마주함으로써 깊은 공간 안에 움직임을 그려 넣는 한 폭의 추상적인 회화(Mora)로 수렴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서경의 작업에서 모라로 설명되는 회화 단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가 사전에서 “단음절 하나의 단위” 혹은 “단모음 길이의 단위”로 정의되는 모라 개념을 가져와 그것을 자신의 회화 단위로 설정한 이유를 내내 가늠해 보니, 이 단어의 정의에 붙어 있는 “길이”라는 말이 먼저 눈에 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측정한다. 따라서 모라는 사각의 종이 안에 시간과 공간의 길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가로 55cm와 세로 40cm 크기의 종이 한 폭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강서경에게 회화는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는 사각의 깊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 출발한다. 모라는 사각형 내부에 깊은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바깥으로 하나하나 쌓아올려지거나 어떤 형태와 결합함으로써 외부에 큰 공간을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 이렇게 회화가 옛 그림이나 전통 서화처럼 시간이자 공간으로 풀이된다면, 정(井) -검은자리- 화문석으로 이어지는 “자리”의 형태들은 스스로 회화의 가능성을 발 빠르게 얻게 된다. 이를테면 〈자리 검은 자리(Mat Black Mat)〉(2017~18) 연작은 정간보의 구조를 화문석의 짜임과 결합시킨 형태로, 사각 공간 안에서 일련의 연속적인 움직임을 추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회화의 기본 단위인 모라처럼 한 몸을 지탱시키는 최소한의 공간으로서의 자리는, 특히 〈Land Sand Strand〉에서 하나의 전경(全景)으로 잘 구축된 체계가 과시하는 균형을 떠받치는 단단한 “땅”으로 비유된다. 때문에 강서경의 작업에서 모든 것을 다시 해체해서 덜어내면 남는 것이, 바로 모래 알갱이처럼 소박한 보폭을 담은 “검은자리”가 될 게 분명하다.
이제, 검은 자리의 옛 주인을 떠올려 본다. 몇 해 전, 성북동 오래된 집 가장 안쪽 넓은 방에는 〈GRANDMOTHER TOWER〉(2013)가 조명을 받으며 놓여 있었다. 바닥으로부터 차곡차곡 똑바로 세워져서 한쪽 벽에 머리를 살짝 기대고 있던 탑은, 그녀의 할머니가 서 있던 자리를 추상적으로 그려냈다. 추상은, 강서경에게 모든 암담함을 덜어내고 단단한 땅 아홉 칸을 마련했을 때 그 위에 홀로 서게 될 검은자리의 미학이다. 그는 〈GRANDMOTHER TOWER〉를 다시 단단한 검은자리 위에 불러냈다. 〈GRANDMOTHER TOWER-tow 〉(2018)는 검은자리와 둥근계단 위에 서서 제 발로 스스로의 움직임을 견인한다. 이렇듯 강서경은 정간보와 춘앵무와 화문석 등으로 우회해 오면서 검은자리의 모서리를 무한한 공간 속에 갖다 대어 보더니, 이제 제 움직임과 보폭을 담아낼 적당한 자리를 하나 둘 찾아낸다. 이때, 그는 이 검은자리를 모두의 공유물로 옮겨다 놓는다. 그는 자신의 단단한 땅인 검은자리에서 자신의 보폭으로 가장 정체된 추상적인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모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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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미술 > vol.407 | 2018.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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