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선의 달콤한 작업실 7
봄밤, 연애소설 읽는 사람들
봄이라서인가, 서점 신간코너에 연애소설들이 수두룩하다. 이 분홍빛 장르는 진부하도록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데도 변함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란 걸 모르지는 않는데, 그래도 뭔가 그 앞에 두어야 할 것이 많다고 믿고 있는 게 일반적인 성인들이 아닌가 싶다. 한창 사랑을 찾아 헤맬 때도 연애소설엔 손을 댄 적이 없건만, 요즘은 이런 책들을 슬쩍슬쩍 들춘다. 어떤 밀어들이 연애라는 중차대한 행위를 이끌어가나 힐끗거리면서.
그 이유는 연애소설 읽는 모임을 1년째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애’를 주제로 한 소설을 선정해서 2주에 한 권씩 읽고 격주 월요일마다 작업실에서 모인다. 밤은 이야기와 함께 더욱 짙어진다. 연애를 이야기하는 밤이라니, 다시 못 올 시절이다. 참가인원은 모두 넷이다. 소설 쓰는 남자와 소설을 쓰고 싶은 두 여자, 그리고 연애가 하고 싶은 한 여자. 이들이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사랑이 간절하거나 사랑에 대해 쓰거나 썼던, 사랑이 더 이상 없다고 믿고 있거나, 사랑보다 더 다급한 게 있다고 믿는 정도.
작년 3월말부터 시작했으니 딱 1년을 맞았고, 그 사이에 스무 권의 소설을 읽었다. <롤리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휴먼 스테인>, <개선문>, <순수박물관>, <나를 보내지마>, <슬픈 짐승>, <단순한 열정> … 이런 소설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읽는 소설은 거의 대부분 연애소설이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 그리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면 그걸 빼놓고 어떤 소설이 성립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소설에서 인간의 태도와 심리, 선택의 문제 등을 환기할 수 있는 드넓은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하지만, 그 정도로 깊이 있게 쓴 연애소설은 손에 꼽힌다. 책을 읽어갈수록 다음에 읽을 책을 선택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일 년 동안만 해보자던 모임을 당분간 더 지속하기로 했다. 시즌2를 위한 열 권의 책을 선정하면서 모르긴 해도 심중에서 꿈틀거림이 있지 않았을까? 쓰는 자로서 사랑의 본질을 직시하려 했던 1년 동안, 나는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되새겼다. “정말 내가 그때 죽었다면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평생 가져갈 것 같다.
작업실에서는 연애소설 읽는 모임 외에도 ‘소설클럽’이라는 독서모임이 진행된다. 이 모임도 15회를 넘겼으니 벌써 1년 반을 함께해왔다. 한 달에 한 권의 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인 것은 같지만 소설클럽은 참가자들이 번갈아가며 발제를 맡는다. 각자 개인적인 관점에서 책을 읽고 토론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함께 소설을 읽고 책 이야기하는 모임을 소설 애호가들의 유별난 취미라고 치부할 법도 한데, 소설클럽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많은 사람이 흥미로워했다. 자신에게 잘 맞는 독서 모임을 찾는다면 꾸준히 참가하고 싶다고 말이다. 소설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출판계는 만날 우는 소린데, 이토록 열렬히 독서에 몰두하고 싶은 사람 또한 많다는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요즘은 ‘함께’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한다.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는 것, 함께 여행을 가는 것. 분명, 혼자 하는 행위와 다르다. 처음 독서모임을 준비할 때는 반신반의의 마음이 있었다. 시간 낭비는 아닐까,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고역이랴, 취향도 관점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일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될까, 독서모임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하는데, 경험이 전무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등등 염려는 끝도 없었다.
1년이 지난 후 모임의 행로를 더듬어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건 ‘함께’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서 두 시간이건 세 시간이건 집중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일상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혼자 하는 독서라면 혼자 납득하고 감동받은 데서 끝났을 테지만, 여럿이 모였을 때 정보와 경험과 해석과 감성은 사람 수만큼 배로 커졌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이렇게 재밌구나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한편, 문학과 삶을 논할 때는 일상에서 긁힌 감정들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책은, 언제나 많은 덤을 주었다. 함께 읽는 건 ‘세 번의 독서’다. 책을 세 번 읽는 것이다. 책을 펼치고 혼자 읽어가는 첫 번째 독서, 함께 이야기하면서 확장되는 두 번째 독서 외에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찾아온다. 바로 독서모임을 하고 난 다음 날이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들 ?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나 감정, 혹은 내가 집중했던 소설 속 디테일 등 – 이 가볍게 정리되면서 나만의 작은 결론에 이른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샘물처럼 솟는다. 손이 근질거리는 그 느낌이 좋다. 소설의 깊은 곳에서 내 삶이 만개하는 것 같다.
어쨌건 이야기한다, 우린. 소설에 대해. 이 소설로 인해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해지고 예민해졌던가. 소설이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임을 함께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복잡한 층과 결의 삶의 영역에 말없이 귀 기울이는 것이었다. 귀를 기울이면 속닥속닥 들려온다. 목청 높여 밀려들어온다. 누군가에겐 캐시미어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되는 이야기들. 배꼽 잡고 웃게 만들다가 글썽글썽 눈물짓게 만드는 이야기들. 내 곁에 고여 있는 이야기의 강물에 조심스럽게 발을 담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