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OOK

사유할 수 없는 유령의 공간

조르조 아감벤 지음/윤병언 옮김《행간》자음과 모음 2015

금세기 테크놀로지로 명명된 판타지의 세계는 무한으로 열려 있다. 결코 의심치 않는 기술적 형이상학의 (비)현실적 공간 속에서 우리는 인간 주체로서의 존재와 위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거대한 기술의 환영 속에서 우리는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를 만나며 자본주의의 페티시즘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모든 (비)현실은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에게는 결코 사유될 수 없는 빈 공간이다. 그에게 모든 (비)세계는 유령이자 오드라덱의 모습으로 현시된다. 아감벤은 《행간》에서 유령이라는 주제를 통해 왜 우리가 비현실적인 것에 주목해야 하는지 묻는다. 《호모 사케르》, 《아우슈비츠의 남겨진 것》등의 저자이자 정치철학자로 유명한 아감벤의 《행간》은 예술에 대한 비평과 고대와 중세, 현대를 넘나드는 철학적 분석과 방대한 문헌학적 조사를 통한 예시와 수사로 가득 차있어 해석하기 만만치 않은 책이다. 행간(行間)으로 번역된 스탄차(Stanza)는 시(詩)의 거주지이자 피난처가 되는 공간으로, 행과 행 사이의 경계를 의미하며 이 경계공간에서의 비평이 곧 이 책의 핵심이다. 그는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판타지이자 비현실, 비장소의 이미지인 유령에 대해 4부에 걸쳐 설명하며 소유할 수 없는 것의 향유(시, 예술)와 향유할 수 없는 것의 소유(철학)에 대한 미학적 통찰을 잘 보여준다.
1부 ‘에로스의 유령’에서는 중세시대 정오의 악령으로 대변된 나태와 게으름이 어떻게 사랑의 열정인 에로스로 연결되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뒤러의 <멜랑콜리아>는 단지 중세의 금기된 상징인 우울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상실과 연관된다. 우울증은 뿌리칠 수 없는 성적 욕망과 닮아있는데 그는 이 우울, 멜랑콜리아가 가질 수 없는 대상을 마치 잃어버린 대상처럼 보이게 하는 상상력에 가깝다고 보았다. 영혼의 촉수로서 우울은 유령과 줄곧 함께해왔으며 꿈과 사랑, 그리고 고귀한 창조 행위에 깊게 관여해 왔다는 것이다. 2부 ‘오드라덱의 세계’는 자본주의의 상품과 페티시즘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여성(어머니)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남근의 부재가 바로 특정한 물건에 대한 페티시즘(주물)이 되며 이것이 자본주의의 추진축이 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의 생산품이 사용가치를 벗어나 단지 껍데기인 비물질적 환영의 기호가 되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주물이 된 것처럼 상품은 이미 이미지로서만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품의 주물화(페티시즘)가 만국박람회를 통해 예술작품과의 경계를 허물어 예술이 20세기 모더니티를 위한 대가로 자기부정을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상품이 단지 교환가치에 머물지 않고 댄디와 같이 사용가치를 넘어 우아함과 과분함을 목적으로 하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 즉 비현실의 전유를 가능케 하는 초월적 대상인 예술적 장난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3부 ‘말과 유령’에서는 1200년대 궁정연애시에 나타난 피그말리온과 나르시스를 통해 페티시가 어떻게 이미지가 되었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한다. 피그말리온과 나르시스가 사랑한 이미지는 욕망의 기호 아래 놓이는 것으로 인간의 영혼 속에 기억된 흔적이다. 이미지는 심장이 아닌 뇌실, 즉 뇌 속에 위치한 환상적인 영(fantastikon pneuma)으로부터 나온다. 인간의 육체인 심장과 정신인 뇌를 직접적으로 매개하는 즉각적 감각기관인 프네우마(정령으로 생명체인 정자와 정기를 의미함)는 자연의 영과, 생명의 영, 감각의 영을 연결하여 물질적이면서도 비물질적인 유령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 환상적인 영인 프네우마를 통해 에로스가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사이를 오가며 우울증과 에덴의 순수한 사랑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프네우마의 ‘영’은 단지 육체의 대척점으로서의 영혼이 아닌 두 세계, 형이상학적인 파열의 결합을 시도한다. 4부 ‘퇴폐한 이미지’에서는 기호학을 통해 스핑크스를 분석한다. 수수께끼의 상징은 기의를 갖지 않는데 오이디푸스가 그 수수께끼를 풀었기에 그 자체로 언어적 파열과 혼돈, 카오스를 가져다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감벤은 기호학이 기표와 기의에 대한 낡은 경계에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예술이 오이디푸스(지성)가 아닌 페티시즘과 상징의 은유인 스핑크스의 판타지로 인도한다고 보았다.
사유할 수 없는 빈 공간을 사유하고자 한 아감벤의 대(大)여정은 주체와 세계 모두 결핍된 판타지의 세계에서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테크놀로지의 판타지에 달라붙은 기계-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아감벤이 이미 1977년에 예견한 대로 유령의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에서 우리가 과연 비현실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물음이 마치 유령처럼 여기저기로 떠다닌다.
백곤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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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6)겸재 정선, 붓으로 조선을 그리다
이석우 지음
겸재 정선의 삶과 작품세계를 대표작 16점을 테마로 조명했다. 책에서 저자는 정선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미술가로 지칭하며 서양화법을 국내로 들여와 진경산수화풍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북촌 336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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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5)예술가의 뒷모습
세라 손튼 지음/배수희 옮김
‘미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제프 쿤스, 아이웨이웨이, 데미안 허스트 등 현재 전 세계 미술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33인의 작가를 통해 살펴본다. 정치, 친족, 숙련 작업이라는 3개의 표제로 접근해 미술가들을 비교·대조한다.
세미콜론 584쪽·2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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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4)나를 설레게 한 유럽 미술관 산책
최상운 지음
유럽의 대표 미술관에서 살펴봐야 할 작품을 소개하는 예술기행서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서 시작해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통해 유명 미술 작품의 매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소울메이트 428쪽·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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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0)이주헌의 ART CAFE
이주헌 지음
미술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자유롭게 써내려간 에세이 책이다. 《ART CAFE》라는 책 제목에 보다 충실하기 위해 기존 책에 있던 긴 호흡의 글들을 빼고 단상 형식의 글 19편을 한 장으로 엮어 개정판을 발간했다.
미디어샘 300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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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4)코끼리의 방
전영백 지음
‘건축-공간-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설치작업이 관람자에게 시각적 차원을 넘어 몸으로 체현되는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공간을 다루는 작가 10인의 작업세계를 5가지 테마로 나누어 집중 탐색하였다.
두성북스 292쪽·2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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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9)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
DW 깁슨 지음/김하현 옮김
뉴욕 맨해튼 일부 지역과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시민 28명을 직접 만나 젠트리피케이션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뉴욕이 겪어온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눌와 408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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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3)디자인 뮤지엄, 여기
이현경 지음
한 나라의 디자인 역사, 성격, 이념을 배울 수 있고 일상생활의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디자인뮤지엄을 소개한다. 뮤지엄 건축의 배경 및 교육프로그램에 관한 정보, 뮤지엄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안그라픽스 312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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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1)철학이 있는 도시
우석영 지음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미술작품 50여점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왜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다룬다. 그림 읽기를 매개로 휴전 후 한국사, 당대의 한국, 도시, 집단과 개인의 문제를 논의한 사회비평서다.
궁리 328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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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예술 판독기
반이정 지음
예술은 현실의 거울이라는 관점으로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을 깨고자 했다. 판독 대상은 언론 보도, 영화, 광고, 상품 등으로, 그 안에 나타난 예술적 속성을 찾고 그에 따른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본다.
미메시스 360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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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7)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마틴 베일리 지음/박찬원 옮김
1980년대부터 반 고흐를 연구해온 저자가 소개한 해바라기 정물 연작의 새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1부에서는 작가 생전에 해바라기 연작이 탄생한 과정을, 2부에서는 사후 그 작품들이 현재의 장소에 옮겨지게 된 여정을 살펴본다.
아트북스 322쪽·3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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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2)쉽게 읽는 서양미술사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이연식 옮김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으로, 미술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서양 미술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려준다.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까지의 미술사를 순차적으로 설명했다.
재승출판 27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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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8)비밀의 미술관
최연욱 지음
블로그에 ‘서양화가 최연욱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미술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서양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화가와 그의 작품 주변의 이야기들을 모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생각정거장 288쪽·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