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광장

contents 2014.2. 모니터 광장
문화재 환수-뜨거움과 차가움으로
몇 년 전,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 한 취객의 방화에 맥없이 훼손되었다. 온 국민의 가슴을 아리게 했던 그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던 그 일이 또다시 일어나고야 말았다. 사리사욕으로 복원된 불완전한 국보 숭례문. 그것을 복원하는 데 수천 시간과 천문학적인 세금이 다시금 들어야 한단다. 이 어이없는 뉴스에서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위치를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자부할 만한 역사와 문화재를 지녔음에도 지켜내질 못했다. 안타깝다. 36년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급급했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얼을 되찾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겸재정선화첩》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된 과정은 좋은 미담이다. 어느 학생의 끈질긴 연구, 한 한국신부와 독일 신부의 우정. 한 화첩을 사이에 두고 훈훈한 이야기가 피어난다. 그것은 정치, 외교, 학술의 협업으로 이루어낸 값진 성과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의 뜨거운 관심이 있어야한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또다시 숭례문 사건과 같은 참혹한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고궁박물관으로 달려가 겸재정선의 화첩을 만나봐야겠다.
권은영
소통에 대한 의문과 제언
본인의 지난 모니터글에 원고에 쓰지 않았던 표현이 들어가 의도치않은 해석이 가능한 서두가 된 데 유감이었다. 실은 분량상 짧더라도 모니터글은 무진 고심과 과감함이 요구되는 일이다. 잔뼈 굵은 전문인과 언론인의 글을 여러 구독자를 대표해 평하고, 그것이 바로 그 해당매체에 영구히 게재된다는 것은 영광인 동시에 책임이 무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이지만 필요 이상 수정된 바가 보이고 웬일로 정렬이 맞지 않았던 지난 지면이었다. 한편, 열혈 독자를 인터뷰하는 코너가 신설되어 소통의 의지가 보였는데 개선안에 우호적인 데 앞서 몇 가지 의문과 제언이 있다. 독자 의견의 활용을 매체 스스로 얼마나 기대하고 귀 기울이는가? 그간 제출했던 아이디어에 피드백이 없었으므로 모르겠다. 터놓고 말하는 통로가 되기에 ‘monitor’s letters’ 같은 지면은 제약이 따를수밖에 없다. 또한《 월간미술》이 생각하는 독자층-전문가와 대중,대중이라면 어떤?- 포지셔닝이 궁금하다. 특집기사의 구성면에서나 마케팅 면에서나《 월간미술》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오가는
경우가 있었다. 기사가 너무 전문적이라 어렵다 해야 할지 보편정보라 희귀성이 없다 해야 할지 모니터 역시 엇갈리고는 했다. 마지막으로 기고자의 다층다양에 쇄신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지 묻고 싶다. 자사 비평을 지면상에 수렴했던 결단과 과정에 점검이 있기를 애독자로서 바란다.
오정은
풍성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고민들을 담아
개인적으로 2014년《 월간미술》의 첫 권은 진정으로 풍성한 새해을 맞이하기 위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던 호라고 생각한다. 우선 국외문화재 환수관련 특집은 기사의 구성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다각적 접근을 통해 지난 환수사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앞으로의 과제까지도 생각해보도록 구성되어 있어 인상깊었다. 단순 정보뿐 아니라 생각과 관심을 이끌어내는《 월간미술》 특유의 시선이 돋보였다.
또한 개인적으로 ‘Devoted Reader’란이 흥미로웠다. 모니터 요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오랜 기간 《 월간미술》을 사랑해 온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월간미술》에 바라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려 한 점은 독자와의 소통에 귀 기울이는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더불어 같은《 월간미술》 독자로서 간접적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지면이 풍요로워졌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번 달에 이어지는 서울관 개관전 관련 기사에서는 호를 넘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집중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고, 해외미술시장과 국내 미술계 전시소식에 관해서도 훨씬 다채롭고 풍부한 정보와 시선을 엿볼 수 있는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야심차게 풍성한 내용으로 시작한 1월호를 통해 앞으로의 《 월간미술》을 기대해 본다. 
강한라
소통은 발전의 초석
이번 달부터《 월간미술》엔 ‘Devoted Reader’가 신설되었다. ‘Monitor’s Letters’가 매 달의 지면에 대해 간단한 코멘트를 남기는 근시안적인 접근이라면 는 오랫동안 《 월간미술》을 읽어온 애독자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좀 더 넓은 범위이자 원시안적인 시각으로《 월간미술》을 바라볼 수 있는 꼭지라고 하겠다. 이는 매달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본연의 임무에만 머무르지 않고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 방법으로 듣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소통은 발전의 초석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Devoted Reader’ 꼭지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번달 ‘Devoted Reader’ 꼭지 인터뷰에 응해주신 두 분의 이야기를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한 분은 일반인과 좀 더 폭넓게 소통하는 《 월간미술》이 되길 요청했고, 다른 한 분은 전문성을 띤 지면이 줄어드는 점을 아쉬워 했다는 점이다. 독자층이 두꺼운만큼 다양한, 어떤 면에선 상반된 의견들이 제시된다는 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부분이었다. 이 안에서《 월간미술》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물론
소통을 한다고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모두의 입맛을 맞출 수는 없겠지만, 일단 독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 월간미술》에 응원을 보낸다.
신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