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년, 그러나 10년은 된 듯한 고단함이 묻어나는…
11월 13일이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한 지 1주년이 된다. 하지만 1주년을 축하한다고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글을 쓰게 되어 마음이 착잡하다. 적어도 개관 시점에는 고립된 섬처럼 자리하던 과천 시대를 뒤로하고, 명실공히 국립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도심형 미술관이 탄생했다는 생각에 기쁘고도 뿌듯했다. 과천에서는 기대하지 못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관람객 증대, 그리고 장소성을 살려 낮고 열린 공간으로 설계된 건축 언어의 매력과 함께 오랜만에 미술관 문화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관전 이래 이런저런 잡음으로 위태한 상황을 보이더니, 결국 학예사 부당 채용 의혹과 관련하여 정형민 관장의 직위 해제로 결론이 난 지금의 모습은 심히 곤혹스럽다.
그동안 정형민 관장이 보여준 행태는 한마디로 디렉터십의 곤궁함이었다. 아니 디렉터십 이전에 국립 기관의 수장으로서, 사회적 공인으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갖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개관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이미 미술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곤욕을 치렀지만, 사실상 정형민 관장은 2012년 1월 취임한 이후 소장품 구입이나 운영 방식 등에서 본인이 재직하던 서울대와 연관된 의혹을 꾸준히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기야 전시 기획자 선정에서부터 작가 선정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편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가운데, 제자 및 서울대 박물관장 시절 함께 일한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채점 결과 조작 및 면접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공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곧 권력 남용에 다름 아니고, 이는 우리 미술계에 오래된 전근대적 관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전 지역에서 미술관이 건립되고 있고, 그래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절실한 때이다. 하지만 관장 선임이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관계로 얽혀있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점차로 나아질 것이고 또 어떤 지역은 나아진 곳도 있지만, 지역 미술관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되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주목하면서 리더십을 보이는 관장의 디렉터십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제도와 인프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미술계 내부의 역량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럴 경우 미술계 출신 인력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결국 이해관계로 움직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유례없는 기업 후원의 세례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그동안 미술관에 기업 후원이 거의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행이라 여겨 이를 단순히 실적과 성과로 자화자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먼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체제가 책임운영기관제인 만큼 후원에 따른 예산 운영에 한계가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 재단을 설립하여 식당과 커피숍, 아트숍 등을 위탁 관리하고 있지만, 그 자체의 수익금이 미술관으로 오지 않고 국고로 환수되는 시스템이다. 미술관 재정 자립도에 도움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변 상권 침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굳이 과도하게 상업시설을 유치할 필요가 있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다른 한편 기업 후원을 어느 지점까지 받을지도 문제다. 지난 국감에서 현대카드 소지자에 대한 입장료 무료 혜택이 지적된 바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만 입장료를 낸 셈이 되면서 논란이 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견해나 입장은 다양할 수 있지만, 사실상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업 후원을 받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은 제기돼야 할 것 같다. 부족한 예산에 전시회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인가? 워낙 전시회 기획력이 뛰어나 기업 후원이 절로 이루어진 것인가? 기업 후원 자체가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쟁력 지표가 된다고 믿어서인가? 기업은 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후원하는가? 혹시 유명 작가에 집중하면서 브랜드 효과를 노리는 것은 아닐까? 후원 열풍은 서울 최고의 장소인 북촌에 입지하면서 일종의 상승세를 탄 결과는 아닐까? 추후 다른 미술관에도 기업 후원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이제 개관한 지 1년, 그러나 마치 10년이 지난 것 같은 피로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갑작스러운 상승세에 비해 우리 미술계의 내적 역량과 문제의식이 준비되지 못한 데에 따른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박신의・미술비평, 경희대 교수